상처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by 감사렌즈

네 살 무렵,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고 엄마는 생계를 위해 일을 나섰다.
아이 둘은 친할머니 댁에 맡겨졌다.
배고픈 날이 많았다.
이따금 다른 집에서 풍기는 밥 냄새는 슬픔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그 집 식탁은 따뜻했지만, 이쪽 식탁은 술 냄새와 함께 뒤엉킨 밥알로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울음을 터뜨리면, 누군가의 손이 매서운 벌처럼 날아들었다.

사람의 눈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검은 눈동자를 마주치면, 위협적인 시선이 떠올라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마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라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데리러 왔을 때 아이는 그제야 그 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생은 여전히 거기 남아 있었다.
학교 대신 밭으로, 놀이터 대신 논으로 향했던 아이.
그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무거워진다.

그 무렵, 작지만 따뜻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한 사람의 미소, 다정한 목소리, 진심으로 들어주는 귀.
이모는 매일 밥을 지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랬구나.”
짧은 그 한마디가, 금이 가 있던 마음에 서서히 온기를 불어넣었다.

사람이 두렵기만 했던 시간 속에서,
‘사람 곁에 있어도 괜찮다’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누군가의 믿음과 사랑이, 상처 위에 작은 다리를 놓았다.

분명, 그 시절은 피해자였던 시간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만 머무를 순 없다.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이, 울타리 밖 세상을 보여주었으니까.
두려움을 넘어, 이제는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자란다.
과거는 여전히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지만,
그 안에만 갇혀 있지는 않겠다는 다짐.
상처를 지닌 존재에서, 상처를 품고 걸어가는 존재로 나아가는 길 위에서
이야기는 새로이 쓰이고 있다.

keyword
화, 목, 금, 토 연재
이전 16화흔들리는 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