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너: 그런 사랑 포기하니, 새로 열린 사랑

우리가 존재로 만날 때, 관계는 비로소 시작된다

by 파랑새의숲


관계가 먼저가 아니다.
온전한 ‘만남’이 있을 때 비로소 관계가 생긴다.
그 만남이란, 역할을 벗고
서로를 존재로서 마주하는 경험이다.
그때 ‘너’와 ‘나’가 ‘우리’로 변한다.

— 마르틴 부버


“원래 그래야지.”

"사랑은 원래 그래."

"다 너와 우리를 위한 거야."


나는 이 말들에 얼마나 오래 속아왔는지 모른다.

효녀라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하고,
며느리라면 시댁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고,
아내라면 남편의 삶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말들.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호흡이 막히고,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졌다.
남겨진 건,

‘딸’이라는 역할, ‘며느리’라는 틀, ‘아내’라는 의무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마르틴 부버의 말이 떠올랐다.


모든 진짜 삶은 만남이다.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는 ‘역할에 따른 관계’만 있었을 뿐, ‘

’진정한 만남’은 없었다는 사실을.




부모와의 경계


부모와의 관계는 언제나 당연한 의무처럼 주어졌다.

“부모 말 잘 듣는 게 도리다.”
“부모 마음은 다 자식을 위한 거다.”


하지만 나는 늘 그 기대 속에서

‘착한 딸’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야 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없었고,

말한다 해도 늘 죄책감이 뒤따랐다.


경계를 세운다는 건,

부모의 사랑을 거부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다만, 부모가 원하는 ‘딸’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나’라는 존재 그대로 서려는 몸부림이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와 갈등도 많았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서운한 표정 앞에서
수없이 흔들렸고, 무너지고 싶을 만큼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도 이해하게 된 듯하다.
경계를 그었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심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을.


시어머니와의 경계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더욱 복잡했다.
‘며느리’라는 자리는 나라는 존재보다 역할을 먼저 요구했다.
희생, 배려, 침묵. 그것이 덕목처럼 주어졌다.


나는 처음엔 맞추려 애썼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억울함과 분노가 차오르면서,

‘이건 사랑이 아니구나’라는 직감이 왔다.


그래서 또다시 경계를 세웠다.
기존의 관습이 요구하는 순종적 며느리를 거부했다.
그 대신 나로서 서겠다고,

내 감정과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을 택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못된 며느리.”
그 말이 내게 날아올 때마다 상처가 컸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 비난을 감수하지 않으면,

우리는 끝내 진짜로 만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 관계는 바뀔 것이다.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며느리’에서,
‘존재로 만나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역할이라는 의무 대신

서로에 대한 존중이 깃든 예의 있는 만남으로.


남편과의 경계


가장 가까운 관계인 남편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삶을 침범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너는 내 아내니까, 당연히…”
“넌 나 없이는 힘들잖아.”

“내 어머니니까, 네가 잘해야지.”


그 말들 속에서 나는 보호받는 대신, 작아지고 무력해졌다.
사랑은 보호와 통제 사이에서 쉽게 뒤바뀌곤 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사랑이라면, 내 존재가 사라지지 않도록,
내가 나로 설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거라고 믿는다고.


쉽지 않은 대화들이 오갔다.
때로는 싸움이 되었고, 때로는 침묵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제 내 울타리를 인정한다.
나도 그의 울타리를 존중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진짜 부부'가 되었다.



경계는 벽이 아니라,

서로를 잇는 다리다


사람들은 흔히 경계를 ‘차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의 경험에서 배운 것은 달랐다.

경계는 서로를 차단하기 위한 벽이 아니라,

서로를 효과적으로 만나도록 이어주는 '다리'였다.


내가 나로 서기 위해 그은 선은,
결국 너와 내가 건강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든 다리였다.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나쁜 딸, 못된 며느리, 이기적인 아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끝까지 나의 그 선, 경계를 지켜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짜 만남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만날 ‘내’가 있어야 했다.


진짜 만남, 진짜 관계를 향하여


이제 나는 안다.
‘내’가 있어야 ‘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진짜 만남은 역할이 아니라

존재로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에 시작된다.


그리고 그때 ‘너’와 ‘나’가 ‘우리’로 변한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숨기지 않는다.

가짜 친밀감을 내세우면서 가면을 쓰고 만나지 않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는다.


대신 서로를 허용하고, 곁에 머물도록 허락한다.

우리는 '각자 다른 존재'로서, 서로의 곁에 머무는 것이다.

그런 진정한 관계이자, 새로운 사랑의 길이 열렸다.


그런 사랑 보내니, 새로 열린 사랑


경계는 짓되, 마음은 이어지는 그런 관계.

네가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비난하는 것이 아닌,

서로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허용하는 사랑.


그런 만남을 할 때,

비로소 사랑은 통제가 아니라 자유가 되고,
속박이 아니라 진정한 존재간의 만남이 된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랑이 아닌,

그저 받지 않아도 상대의 존재를 허용할 수 있는

나와 너를 채우는 사랑.


각자의 자리를 벗어나거나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도

서로의 존재에 깊숙하게 머물 수 있는 사랑.


그리고 나는 이제 진심으로 믿는다.


모든 진짜 삶은 만남이다.
— 마르틴 부버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해 왔던 ‘그런 사랑'을 떠나보내니,

나를 자유롭게 하는 새로운 사랑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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