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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un 26. 2020

지금 '일'하고 있는데요?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늘 그렇듯 퇴근을 하고 자주 가던 카페에 앉아 오늘은 또 무슨 글을 써볼까 하고 앉아서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꽤 글이 잘 써진다. 괜찮다. 하며 좋아하던 중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오늘 쓰는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엄마가 나에게 그랬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니?” 


언제까지 이러고 있냐니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니 엄마는 언제까지 은행 경비원 하고 있을 거냐고 말했다. 이제는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결과물? 무슨 결과물을 말하는 거지... 그리고 은행 경비원이 뭐 어때서... 뭐 어떤데... 과연 엄마는 내가 은행 경비원이 아니라 은행원이었어도 저런 말을 했을까?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떠들어도 결국엔 돈을 많이 벌고 못 벌고에 따라 차이가 나는구나 그렇다고 무조건 돈만 잘 버는 직업 이어서만은 안된다. 그것 이상으로 남들에게 보였을 때 그럴듯한 직업이야 할 것이다. 번듯한 직장이어야 하고 명함을 내밀었을 때 뭔가 있어 보이는 회사나 직업이어야 할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 엄마는 “아이고 우리 장남 자랑스럽네~ 동네방네 자랑하러 댕기야지~” 했을 것이다. 그게 엄마의 낙이니까 어쩌면 난 엄마의 낙을 뺏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의 낙이 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니니까. 딱히 죄책감은 없다. 난 엄마가 시키는 대로 살아왔다. 그래서 그 결과가 이거니까. 딱히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스스로 정신 승리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의 말 한마디에 너무 크게 상처를 받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은행에서 일한다. 하지만 은행원은 아니다. 은행을 지키는 경비원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가 경비원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내가 하는 업무의 기준은 경비원의 것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다. 때로는 은행원들이 해야 할 일까지 내가 할 때도 많으니 사람들은 나 또한 은행원이나 다름없이 여기곤 한다. 하지만 나의 업은 어디까지나 경비원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것에 불만을 느끼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난 기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충분히 있다. 한 번도 일을 많이 시킨다고 불만을 가져 본 적은 없다. 또한 내가 비정규직이라고 불만을 느낀 적도 거의 없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계약 연장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굳이 나를 자르고 새로운 사람을 다시 일을 가리켜 가며 할 필요는 은행 입장에서는 없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하던 사람이 계속하길 원한다. 그래서 난 크게 불만 없이 일한다. 다만, 월급이 좀 많이 짜다는 것 이외에는 불만이 없다. 하지만 딱 하나 내가 크게 힘들어하는 부분은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들 때문이다.


은행원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대화를 하고 하루 8시간을 한 공간에서 보낸다. 같이 밥을 먹으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그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은행권 내의 이야기를 하면 나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공감할 수도 없고 그냥 묵묵히 밥을 먹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결혼, 출산, 집, 자동차, 여행, 휴가 등 사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나 로써는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같은 밥을 먹고 있어도 결코 같은 밥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같은 곳에서 일하지만 나는 그들과 늘 차이를 느낀다. 퇴근할 때쯤 은행원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손뼉 치고 환호한다. 그들만의 시상식을 하고 있다. 실적이 좋으면 가끔 상을 받는데 그런 것과 은행 경비원은 하나도 상관이 없다. 그냥 조용히 퇴근할 뿐이다. 이런 미묘한 차이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보통 은행 경비원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에 잠시 거처 가는 일로 많이 한다. 그 이유가 퇴근이 다른 직장에 비해 빠르고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근무 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도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대학생이 방학기간 또는 휴학기간에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해 10년이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는 정말 평생직장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경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다양한 경우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 입장에서만 말을 한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앞으로 무슨 일 할 거냐” 또는 “지금 뭐 준비하고 있는 거 있냐”는 말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다음 일을 염두 해 두면서 은행 경비원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오래 할 일은 못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평생 할지 아니면 내일까지만 하고 그만둘지 모르는 일이지만 어쨌든 난 지금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묻는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일로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은행원이었어도 앞으로 뭐 할 거냐고 물어봤을까. 심지어 같이 일 했던 과장은 그만둘 때 말하고 그만두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미 그만두는 것을 예상하는 듯이 말한다. 물론 일부 사람들이 말도 없이 그만두는 무책임한 모습 때문에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과 대하는 태도 그리고 우리가 받는 대우를 생각해 보면 말없이 사라지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무단으로 일을 그만두는 건 잘못된 행동이다. 


사실 비정규직을 힘들게 하는 건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다. 그게 나를 우리를 서서히 죽이고 말라 가게 한다.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이 또한 사회의 일원이다. 나는 톱니바퀴의 작은 톱니 하나다. 내가 없다고 해서 기계가 멈추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주 삐걱거리고 잔고장이 많아져 결국엔 다른 작은 톱니를 찾을 것이다. 작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사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말하고 싶다. 비정규직이든 뭐든 저는 지금 “일하고 있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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