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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ul 09. 2020

은행 경비원이 은행에서 하는 일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은행에서 나의 위치는 경비원이다. 경비원은 은행을 지키는 사람이다. 은행을 순찰하고 외부의 침입을 예방하며, 수시로 사람들을 감시해야 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딱히 경비원과 관련된 일은 하고 있지 않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강도가 은행을 침입하는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비원이기보다는 안내원의 일을 더 많이 한다. 처음 이곳으로 출근했을 때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받은 것들은 거의 다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었다. 따로 경비원으로 순찰이나 경계근무를 한다 던 지 하는 것들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난 그렇게 일하는 게 맞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하고 있던 거의 대부분의 일이 경비업법으로 금지된 불법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뒤늦게 그걸 알았다 한들 내가 어떻게 바꾸기는 어려웠다. 갑자기 하던 일을 안 하다고 하면 지점에서는 나를 좋게 보지 않을 거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어렵거나 힘든 일까진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에는 오래 일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실수였다.


은행에서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ATM 업무다. 내가 일하는 곳은 오래된 전통시장이 바로 옆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노인들이 많이 오신다. 그렇기에 어르신들이 기계를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면 거의 내가 다 도와드려야 한다. 공과금을 납부하고 계좌이체를 하고 입금과 출금을 하고 카드대출을 받는 것 까지 나의 주 업무이다. 내가 ATM기기에 가 있으면 지점은 비어있다. 그 순간 강도가 침입한다면 아마도 큰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전교환과 지폐 교환 그리고 스마트폰 어플을 까는 일 또한 나의 업무이다. 주변에 상인들이 많기 때문에 동전, 지폐 교환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린다면 아마도 은행원들은 손님들에게 상품을 판매할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빨리빨리 손님을 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원이 들어와 실적에 큰 불이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내가 직접 교환해 줄 수밖에 없다. 사실 은행 경비원이 지점의 시제(돈)에 손을 대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경비업법 제15조 2항 경비원 등의 의무에 보면 “누구든지 경비원으로 하여금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
경비업법 제7조 경비업법의 의무에 보면 “경비업자는 경비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하고, 도급을 의뢰받은 경비업무가 위법 또는 부당한 것일 때는 이를 거부하여야 한다.


은행은 실적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의 상품이라도 더 팔기 위해서 전략을 짜고 손님들께 권유를 한다. 상품은 여러 가지다. 신용카드가 있고 펀드가 있고 청약도 있고 보험도 있고 스마트폰 어플도 있다. 사실 이보다 더 다양하고 대출 쪽으로 까지 가면 무궁무진하게 많다. 그리고 CS라는 것도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 고객 서비스 점수(customer service)인데 본사에서 직접 손님으로 위장을 하고 지점을 방문해 점수를 매긴다. 인사는 잘하는지 손님 응대는 잘하는지 전화는 잘 받는지 복장상태는 양호한 지 등등 점수를 매겨 합산하여 순위를 매긴다. 그런데 이것을 은행 경비원들도 점수를 매긴다. 처음에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조회 때 팀장님이 모든 직원들이 다 있는 곳에서 청원경찰(은행 경비원)만 점수가 좋지 않다고 엄청 지적을 하셨다. 전임자는 점수가 좋았는데 그에 비해 점수가 너무 낮다고 하셨다. 난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라서 엄청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왜 경비원에게 까지 CS 점수를 부여하는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예 그럴 거면 그냥 은행 안내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그냥 안내만 열심히 하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내가 하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점에 손님들 중 어르신들은 전표를 작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으신다. 시력이 좋지 않아 앞이 보이질 않고, 손에 힘이 없어 글씨를 잘 쓰지 못하거나 어떤 분은 아예 한글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을 대신해서 내가 전표를 ‘대리’ 작성하는 경우도 있고, 서류에 손님 대신 내가 사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도 엄연히 불법에 해당한다. 은행원은 대리 작성을 하면 안 되고 경비원은 된다는 말인가. 그러다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잘못은 과연 누가 책임질까. 은행에서 나를 보호해 줄까? 아니면 업체에서? 아니다. 아마도 그냥 내가 독박을 쓰지 않을까 싶다.


가장 큰 것은 바로 ATM기기 마감이다. 이것은 다른 지점은 시키지 않는 곳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지점은 ATM기기가 총 6대 공과금 기계가 2대 총 8대가 되기 때문에 꽤 많은 편이다. 그리고 시장이 옆에 있다 보니 천 원 권과 오천 원 권 입금이 많다.  그렇다고 내가 마감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그냥 은행원들 일을 덜어주기 위해 그들이 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빨리 퇴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탁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명령이나 다름없다. 만약에 내가 하기 싫다고 한다면 업체에 연락해 나를 자르고 나보다 다루기 쉬운 사람을 다시 고용해 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비정규직인 이유이다.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점을 위해 헌신을 하고 내가 해야 할 일도 아닌 일 까지 하고 나면 나에게 남는 건 쥐꼬리 만한 월급 말고는 없다. 은행원들은 실적이 좋으면 포상금도 많이 받고 상여금도 많이 받고 뭐 상장? 이런 것도 받는다. 그런데 은행 경비원이 CS 점수가 좋아서 상을 받으면 꼴랑 수건 한 장이 전부이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월급 말고는 내가 받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돈은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은 왜 하지 않냐고? 서른세 살에 경력도 없는 내가 과연 어떤 회사에서 받아 줄까. 난 자신이 없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고 하지만 중이 절을 떠나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갈 곳이 없어 결국 다시 절로 돌아오지 않을까?


인터넷에 은행 경비원의 불법적인 업무를 고발한다는 기사가 났다. 그런데 댓글에는 주로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또는 ‘그런 일도 안 하면 은행 경비원이 하는 일이 뭐가 있냐?’ 같은 글들이 많았다. 맞다 도와줄 수 있다. 나도 돕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불법이라는 것이다. 좋을 때는 괜찮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곤란해지는 건 은행 측이 아닌 비정규직인 은행 경비원이다. 모르면 모를까 그들은 우리를 보호하기보다는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부당한 업무에도 참고 일하는 것은 그럼에도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는 은행원들도 작지만 나에 대한 고마움을 표해주는 몇몇 분 때문에 일할 수 있다. 그리고 자주 오시는 손님들과의 유대관계도 빠질 수 없다. 그런 작은 이유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한다고 계속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일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정해져 있다. 계약은 1년 단위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계약을 연장해 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과연 내년에도 일을 하고 있을까. 불안한 하루하루를 견디며 오늘도 일한다.


제목사진출처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69581&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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