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회가 아들을 믿지 못하는 불안한 엄마이야기였다면 30회는 전문가 엄마를 믿지 못하는 불안한 아들이야기랄까요?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탓도 많은 도전학생이야기 시작해 봅니다.
[도전학생 이야기]
내신괴물이 되고 싶어 티처스 문을 두드린 고등학교 2학년 승협학생.
중등 내신 197점으로 극상위권(전 학년 전 과목 올 A)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 후 성적이 계속 하향곡선을 그립니다. 특히, 수학은 첫 학기 2등급에서 1학년 2학기부터 4등급으로 내려가 올라오지 못하고 있어요.
이번 도전학생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은 '핑계'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공부나 노력이 부족했음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 틀리면 모두 '실수'라며 실수타령(왜 이렇게 실수를 많이 했지)을 하고, 시험 문제가 어려우면 문제 탓(문제에 낚였다), 풀이방식이 길면 방식 탓(혁신적인 방법이 없냐며 계산이 선을 넘은 거 아니냐) 등등 수려한 말발의 승협학생. 본인은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든 공부를 대충 하고 있었어요. 학원수업도 내신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수업은 숙제도 안 해가면서도 '매력적이지 않은 공부는 안 하게 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공부는 눈으로만 하고 입으로는 핑계가 정말 많습니다.
그런 도전학생의 엄마는 25년 차의 고등학교 영어교사이자 현 고3담임으로 진정한 입시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엄마에 대한 신뢰가 없습니다. 엄마가 강조하는 정석적인 공부방식은 옛날 것 같고, 그것보다 더 신박하고 혁신적인 방법이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 생각하는 듯했어요. 그러면서도 자신을 코칭해 주거나 티칭 해주는 선생님보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 '엄마'가 필요했다는 말에는 짠한 마음도 드네요.
이 연재글을 쓰기 위해 티처스 한 회분을 최소 3번, 많으면 5~6번을 보기도 합니다. 여러 번 보다 보면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학생의 표정이 보이기도 하고, 무심코 스친 엄마의 말이 다시 들리기도 하고,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 편은 그렇게 여러 번 본 효과가 가장 컸던 회차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이번화에서 같이 생각해 볼거리들을 추려봅니다.
1) 그 많던 중등 우등생은 어디로 갔을까?
"중학교 때 잘하던 아이인데 고등학교 가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고등 가서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이는 정확히는 고등에 가서 성적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중등시험 평가가 절대평가라서 생기는 착시현상일 수 있습니다.
물론, 중등 성적순 그대로 고등 성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서 중등을 점수로는 전교 1등으로 졸업했어도 전교 10등 20등이었던 친구들이 고등 가서는 더 잘하는 경우도 많기는 합니다. 그런데 중학교 때 올 A를 받았다고 해서 고등학교에서 1,2 등급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는 중등 성취도 A의 비율 때문입니다.
서울 어느 세 중학교 학업 성취도 - 학교알리미
학교알리미 사이트(학교알리미(초·중등 교육정보 공시서비스))에 들어가셔서 학교별 공시정보에서 학교를 선택하여 교과별 학업성취 사항을 검색하면 학년별로 과목별로 성취도 분포표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3개의 학교는 서울 내 무작위로 고른 세 학교의 2학년 1학기 성적분포도입니다. 한눈에 봐도 주요 과목에서 A를 받는 아이들이 적으면 20% 정도에서 50% 사이로 분포해 있습니다. 이 학교들만 봐도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의 경우 A의 비율이 40~50% 사이입니다. (그 외 과목은 대체로 더 높습니다.) 그렇다 보니 중학교 절대평가에서 A를 받은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 1등급(상위 4%)부터 5등급까지 분포되게 됩니다. 그래서 중등 학부모들은 A를 받아도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도전학생 같은 경우에는 공부 패턴을 보니 벼락치기로 시험직전에 다 욱여넣고 시험이 끝나면 싹 잊어버리는 식으로 공부를 해온 듯합니다. 입시 컨설팅을 위해 방문한 곳에서도 수학테스트를 지난 1학기 것까지 보려 하니 시험이 끝나고 공식도 기억이 안 난다고 2학기 진도인 수2를 보게 해달라고 요청하는데요. 이런 학생들의 경우 중학교 시험으로는 더더욱 판단이 어렵습니다.
2) 학생의 불안 그리고 정서
이번 도전학생의 경우 '시험울렁증'이라고 표현하는 '시험불안증세'가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손이 떨리고, 모의고사 성적이 더 좋은데도 하루에 모든 것을 거는 수능은 도저히 잘 볼 자신이 없어 정시는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하니깐요.
중학교 때 성적이 좋았는데 고등 가서 성적이 떨어지면서도 엄마를 비롯한 주변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 것도 안타깝지만, 아마 중학교 때 최상위권이었던 점과 어머니가 입시전문가라는 점등은 도전학생에게 더 부담이 되었을 것 같아요. 어머니도 성적이 떨어져서 아이의 멘털이 무너지니 성적을 올리려는 코칭만 하신 듯 보였는데, 어쩌면 정서적 안정감을 찾아 다시 차근히 공부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도전학생은 엄마가 베테랑 교사여서 좋은 점도 있지만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이랑 사는 기분이라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보다 그저 따뜻한 다독임을 원했었다고 속내를 비치더라고요. 그러나 전문가인 엄마는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다급하기만 해서 위로나 응원보다 코칭이 더 필요하고 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엄마가 전문가여서 생기는 아이러니네요. 법륜스님이 옛날 못 배운 어머니들이 '아이고, 내가 뭘 아나,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하시며 자식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아서 더 잘 키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특히 청소년기 아이들은 더욱더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입니다. 이번 편을 통해서도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며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아이와의 관계'라는 점을 다시 한번 더 확신하게 됩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중하위권의 특징중 하나가 80%만 아는 것. 그것이 오히려 저주다.) 부족한 개념과 연습을 꾸준히 채워 넣을 것을 주문하셨는데요. 승제샘의 코칭대로 한달간 열심히 달린 도전학생. 무려 40점가까이 성적이 수직상승하였습니다.
성적 상승도 기뻤지만 마지막 정말 환하게 웃는 도전학생의 얼굴이 아주 인상적이고 저도 덩달아 행복했습니다. 정말 '제대로' '열심히' 하니 '된다'는 것을 도전학생이 충분히 느꼈을 기회였을 듯합니다. 부디 이번 도전을 계기로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해나가길 시청자 이모도 두손 모아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