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앵두 Oct 31. 2019

엄마에게 가는 길 #10 엄마, 이젠 같이 가.

#10  엄마, 이젠 같이 가.

내가 결혼 전까지 살던 집 전세 기일이 다 돼서 엄마는 집을 다시 구해야 했다. 여기저기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러더니 마음에 쏙 드는, 햇볕이 따사롭게 드는 집을 찾았단다. 방 두 개에 거실과 주방이 있는 자그마한 빌라. 엘리베이터도 있는 신축 빌라. 문제는 돈이었다. 엄마 수중에 있던 돈은 전에 살던 집의 전세금. 엄마 마음에 드는 집을 사기에는 돈이 모자랐음에도 엄마는 그 집을 꼭 사고 싶어 했다.  조금이라도 보태주고 싶었던 건 마음뿐.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던 우리 부부도 대출금이 많아 여유가 없이 빠듯했다. 엄마는 대출을 받아 그 집을 샀고, 이사를 갔다. 대출금은 계속 벌어서 갚아나간다 했다. 금방 갚을 거란다.

"엄마가 나보다 집을 먼저 샀네. 좋겠다"

"그래. 좋다." 엄마는 환한 웃음을 짓는다. 엄마가 웃으니 나도 좋았다.


기나긴 터널을 다 지나왔다고 안도하던 날들이었다. 우리 세 남매는 각자의 가정에서 자기 자리를 지켰다. 각자의 아이들은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났다. 엄마와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다. 엄마와 내가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일상이었다. 엄마가 암 선고를 받기 전까지는.


내 엄마는 또 다른 시련을 마주하고 있다. 건강검진에서 엄마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결과를 알려주며 바로 암환자 등록을 하더란다. 처음 그 소식을 듣던 날.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했다. 암이라니. 우리 엄마가 암이라니. 믿을 수도 없고, 절대로 믿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몹시도 무서웠다. 이 세상에서 엄마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지. 두려웠다. 우리 엄마 잔뜩 고생만 했는데, 그 세월 홀로 버텨내느라 진이 다 빠졌을 텐데, 너무너무 외로웠을 텐데. 우리 엄마가 무슨 죄를 그리 졌다고 이리 큰 형벌을 또 내리나. 신들이 원망스러웠다. 그 모진 시절 엄마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고 상처만 주었던 나는, 엄마 희생 밟고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이제야 철이 들었는데. 이제야 엄마랑 마음을 나누게 되었는데. '왜 하필 우리 엄마야! 왜!'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국립암센터로 옮겨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불행 중 다행으로 위암 초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암세포를 떼어내는 시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했다. 엄마에겐 위암과 함께 우울증도 같이 왔다. 고생 끝나고 이제 손주 재롱 보면서 웃고 살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덜컥 큰 병에 걸리니 인생이 허무하다 했다. 온종일을 울기만 했다. 손주의 덜렁거리던 유치가 빠졌다는 소식에 울고, 딸내미 얼굴살 빠졌다고 울고, 비가 온다고 울고, 손주 학교 갔다는 얘기에도 울었다. 무슨 말만 하면 울었다. 심지어는 여수 계시는 우리 시어머니가 보고 싶다고도 울었다.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고, 위암 약에 우울증 약까지 추가되었다. 약만 한가득이었다.


엄마가 시술을 받으러 들어갈 때, 엄마 옆을 지켰다. 속으로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세상의 온갖 신들에게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우리 엄마 지켜만 달라고. 우리 엄마 잘못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협박도 했다.


엄마가 나왔다. 시술은 말끔하게 잘 되었다고 했다. 이제 6개월마다 한 번씩 정밀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암이라는 게 순식간에 재발이 되고, 전이가 되는 거라서 5년간은 계속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우울증도 호전되었다. 암 진단으로 인한 일시적인 우울증이라 했다. 우울증 약 복용은 중단되었다.


엄마는 퇴원을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엄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엄마의 집  벽은 엄마가 써놓은 좋은 글귀로 가득하다.

우리 엄마 집에 걸린 좋은 생각
엄마가 키우는 예쁜 화초들


엄마는 구청 청소일도 계속하고 있다. 내년이 정년이라 퇴직할 때까지 청소일은 계속 다닐 거란다. 사람들도 만나고, 일도 하고 해야 잡생각도 안 나고 우울증도 안 온다고 고집을 부린다. 말려봤지만 소용없었다. 도시락 싸들고 따라다니며 말린대도 말려질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 자식에게 부담 주면 안 된다는 게 우리 엄마에게 남은 마지막 사명이다. 난 이제 날이 더우면 더워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추우면 추워서 노심초사한다. 청소일 하는 엄마 힘들까 봐.


"엄마. 병원 정기검사 꼬박꼬박 잘 받자. 그리고 엄마. 엄마 딸도 엄마 손맛 닮아서 음식 잘해. 나 이젠 대충 만들어도 예전에 엄마가 해줬던 그 음식 맛이 나. 손도 되게 빨라져서 반찬도 뚝딱 만들어. 그니까 이제 반찬이랑 김치 해주지 마. 엄마 딸 뭐가 이쁘다고 그렇게 하냐. 맨날 툭툭대고 말도 안 듣는 딸인데. 이젠 내가 다 해줄게. 이젠 내 차례야. 엄마한테 빚진 거 내가 갚을 차례.

엄마. 그동안 엄마 혼자 힘들게 해서 미안하고, 엄마 외롭게 해서 미안하고, 그럼에도 지금까지 잘 버텨줘서 고마워. 이제 남은 인생 재미있게 살아보자. 엄마 해외여행 가보고 싶다고 했잖아. 코타키나발루가 참 근사하다던데  우리 거기 꼭 가보자. 아. 맞다. 엄마 여수도 가보고 싶다고 했지. 우리 시댁이라 내가 여수는 쫌 잘 알지. 여수 가서 맛집 투어도 하고, 낭만포차에서 바다 보면서  맥주도 한잔 마셔보자.

엄마. 지금까지 엄마한테 받은 거 내가 다 갚을게. 그때까지 내 옆에 꼭꼭 붙어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엄마.  미안하고 고마워. 사랑해."

 

엄마와 나. 참 먼길을 헤매다가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앞으로 내 엄마에게 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어떤 시련이 올진 알 수 없다. 어떤 일이 닥치든 이번엔 엄마 곁에서, 엄마손을 꼭 잡아줘야지. 엄마랑 나는 이제 함께다.

이전 09화 엄마에게 가는 길 #9 엄마니까 괜찮은 줄 알았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