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이유는 나의 자율적인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이었다. 2년 전부터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조금 나아질까 기대하며 부족한 부분은 대출로 메웠다. 하지만 대출 한도는 금세 다 차버렸고, 지출을 충당할 만한 수입은 근로자의 급여로는 감당할 수 없어 컨설턴트로 직업을 바꾸려 이곳저곳 이직을 하였지만, 경제가 어려운 건 나뿐만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로 어려웠기에 성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고, 수입은 근로자의 급여보다 못한 수준이 되었다.
기업의 회계에서는 사용하여 없어지는 돈을 '비용'이라고 하고, 미래에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돈을 '자산'이라고 한다. 나는 지난 2년간 한 푼도 남기지 못한 채 돈을 써왔으니, 결국 내 지출은 비용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매달 나가는 돈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처음에는 기록을 하지 않고, 납부금액 문자만 확인하고 통장에 입금했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과 달리 지출되는 원리금이 늘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감으로 대출을 관리했지만, 그 감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왔다. '정확히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 걸까?' 불안한 마음으로 내가 대출받았던 금액과 매월 지출되어야 하는 금액을 엑셀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보증금 담보대출, 사업자 대출, 신용대출, 차량 할부금, 카드값까지. 자동 계산된 숫자를 보자 숨이 턱 막혔다. 지금껏 무심코 이체했던 돈들이 한눈에 보이니, 현실이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단순히 매달 조금씩 갚아가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남은 기간을 계산해 보니 10년 안에도 이 빚을 다 갚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1. 채무조정(신속 채무조정)
수입은 한정적이었다. 아니, 자영업자로서 수입이 계속 줄어들었고, 지출은 매달 늘어났다. 생활비 대부분을 카드로 결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채무조정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전에 개인회생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께 물려받은 상속 재산이 있었고, 공동명의로 되어 있는 그 재산 때문에 개인회생을 하려면 그만큼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결국, 개인회생은 의미가 없었다. 신속 채무조정을 신청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이율이 낮아지지는 않았다. 연체 전에 신청하는 방식이라 9% 이상이면 9%로 조정되었고, 결국 그 이율을 10년 동안 갚아야 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최소한 이대로 두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게 뻔했다.
2. 채무조정 유예
채무조정으로 월 상환금이 줄었지만,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웠다. 6개월간 꾸역꾸역 갚아 나갔다. 하지만 소득이 더 줄어들었고, 어떤 달은 아예 벌지 못한 적도 있었다. 결국 6개월 유예를 신청했다. 그동안 이자만 납부하면 됐다. '이렇게라도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텼다.
3. 최소한의 생활비를 파악하고, 그만큼은 벌어야 했다.
돈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것이었다. 하지만 채무가 있으면 그 불편함은 압박으로 바뀐다. 채무조정을 했어도 해결되지 않는 고정 지출이 있었다. 렌탈료, 아파트 임대료, 관리비, 보증금 담보대출 이자. 적어도 이 금액만큼은 연체되지 않도록 했다. 렌탈료를 내지 않으면 차량을 빼앗길 수도 있었고, 임대료를 내지 못하면 퇴거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최소한의 생존선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이 금액은 마련해야 했다.
4. 당근마켓, 중고마켓에서 부수입을 만들었다.
과거의 나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교육지원서비스업을 운영하며 사무실을 꾸몄고, 책상과 의자, 전자칠판까지 들여놓았다. 하지만 폐업 후, 그것들은 고스란히 내 짐이 되었다. 사무실 물건이 집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집 안은 점점 창고처럼 변했다. '이걸 다 어디에 두지?' 고민 끝에 하나씩 팔기로 했다. 의류 스타일러, 아이패드, 전자칠판, 어쿠스틱 기타, 김치냉장고, 노트북. 한때는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이었지만, 막상 팔 때는 미련이 없었다. 만약 퇴거해야 할 상황이 오면 더 이상 짐을 들고 갈 수 없을 것이기에, 구입가보다 50% 이상 낮은 가격으로 내놓았다. 책장에 가득한 책들도 예스 24 바이백을 신청하거나, 안 팔리는 책들은 무료 나눔을 통해 정리했다.
5. 돈이 없는 건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것을 알게 해 준다.
물건을 하나둘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구입할 땐 그렇게 갖고 싶었는데, 처분할 땐 아쉽지 않네?' 결국 내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은 많지 않았다. 작은 곳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며 집을 비웠지만, 다행히 아파트 갱신 계약이 가능했고, 보증금 담보대출 연장도 가능했다. 신용 등급에 따라 이율이 변동된다는 게 걱정이었지만, 최근 금리가 낮아진 걸 보면 조금은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하면 비용이 든다. 버리는데도 돈이 들고, 제때 팔지 못하면 그냥 나눠줘야 한다. 이사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꾸준히 집을 비우고 있다. 다단계로 구입한 건강 보조 식품, 유통기한이 지난 비타민들. 왜 이렇게 많이 샀을까? 후회스럽지만, 이제라도 버려야 한다. 과거의 나는 '갚아야 할 돈'보다 '지금의 편안함'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돈은 조용히 사라지고, 갚아야 할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숫자로 현실을 마주하는 건 두렵다. 하지만 그걸 외면하면, 결국 그 대가는 더 큰 불안으로 돌아온다.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한다. 소득을 늘릴 수 없다면, 지출을 줄이고, 신용을 지키는 방법을 찾는다. 그래야만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