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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Oct 21. 2023

흐린 유리창을 닦듯이 써라

울리는 문장을 써라 7

달이 빛난다고 말하지 마세요.
깨진 유리에 반짝이는 빛을 보여주세요
-안톤 체호프

유리창은 흐려도 잘 보인다. 그렇지만 닦으면 더 잘 보인다.

눈도 늘 흐린 유리창에 적응했던지 원래 이토록 선명했나 싶을 정도로 잘 보인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저 이만큼이 최선이려니 하다가 조금 더 무언가를 했으나 이전과 다른 그 결과에 놀라는.


글 쓰는 방법 중에 하나로 '구체적'으로 쓰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이 '구체적'이라는 말도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만의 기준이 다르다.

유리창이 흐린 줄도 모르고 잘 보인다고 생각하듯이 자신은 정작 구체적으로 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구체적이란 말을 '정확하게, 명료하게 써라'로 바꿔 얘기한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정확한 표현을 많이 쓴다.


예를 들면 '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이렇게 쓰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상태가 흐린 유리창이다. 보이기는 하지만 선명하지 않다. 그리고 독자도 별생각 없이 넘어간다.

혹은 '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소설책을 읽었다.' 이런 경우도 있다.

이 정도면 구체적일까? 아니다.

'나는 하이든의 현악 4중주 황제를 들으며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이 문장에서는 음악이란 단어도 책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 이유는 정확하기 때문이다. 음악이라면 누구의 어떤 음악인지, 책이라면 어떤 제목의 책인지 쓰는 것이 바로 유리창을 닦는 일과 같다.


그러면 작가란 클래식 음악도 알아야 하고 소설 제목은 다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작가라서가 아니라 생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들을 때 듣기 좋은 음악이라면 제목을 찾아보고 누가 작곡했는지 알아보며 기억해 두는 것, 책은 자신이 읽은 책이라면 제목과 내용 정도는 기억해야 하며 당연히 많이 읽어야 한다.  

자신의 주변의 사람들, 물건들, 예술들에 대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찾아보고 기억해 두려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노력이 글을 쓸 때 정확하게 쓸 수 있게 해 준다.

이 정확함이 곧 구체성으로 나타나고 구체적일 때 독자들의 마음에 울림을 남긴다.


사람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제저녁에 어떤 여자가 나를 지나갔다.'

이렇게 쓴다면 세계 인구의 반이 여자인데 그중 한 명이라는 아주 모호한 표현이 된다.

물론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를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본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어제저녁에 머리가 길고 걸음걸이가 경쾌한 여자가 나를 스쳐갔다.'

이렇게 쓴다면 세계의 반인 여자가 아니라 적어도 어제 내가 본 특정 여자가 된다.


인류에 대해서 쓰지 말고 인간에 대해서 쓰란 말이 있다.

이 이야기는 소재의 구체화가 사람들에게 와닿는다는 이야기이겠지만 그만큼 정확하게 쓰라는 얘기이다.

이웃집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위층 사람인지 아래층 사람인지 아니면 옆동 사람인지에 따라 인물에 대한 생동감이 생긴다.


모호한 표현의 문장들은 스쳐간다. 그렇지만 정확한 표현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고 마음을 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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