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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Mar 21. 2022

아버지의 일기장(1977년 6월 어느날)


“내다. 바쁘나?”

“아니에요, 아빠, 말씀하세요.”

“내가 요즘 마음이 너무 불안하다. 너그 엄마도 병원에 있고 혼자 지내다 보니 공황장애가 오는거 같다.”

“아버지,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엄마는 어쩔수 없지만 병원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 그리고 니 어릴 때 적어 놓은 일기장이 있다. 그거 이번주말에 ㅇㅇ이오면 보낼게. 잘 간직해라.” 


지난 9월 말 엄마가 고관절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아버지는 시골집에 혼자 계십니다. 

그전까지는 우리 6형제는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한 엄마를 돌보기 위해 주말이면 차례를 정해 부모님집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평일 엄마의 힘든 병간호에도 우리를 본다는 즐거움에 너무 행복해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에 신경을 쓰다보니 매주 아버지를 방문하지는 못했습니다. 

가끔 가까이 살고 있는 작은언니와 막내동생이 주말이면 아버지와 식사를 하곤 했지만 평일에는 텅빈집에 혼자 지내셔야 하는 겁니다. 


엄마가 몸은 불편해도 24시간 같이 있고 엄마를 돌보던 요양보호사도 상주하고 있었기에 늘 따듯한 집안과 3끼의 식사가 보장되었기에 아버지의 정서도 안정이 되어있었습니다. 

비록 아픈 엄마였지만 그렇게 떠나간 집은 쓸쓸하고 외롭기 그지 없는겁니다. 


아버지는 남자이지만 섬세하고 예민한 분입니다. 

그러니 점점 힘들어져 가는 정서가 남들보다 더 어려운 것입니다.

일요일 오후가 되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아버지를 보러갔던 동생들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선회와 일기장 하나를 가져다 주고 갑니다. 

경남 고성의 생선회는 남해안의 신선함을 입어 그 맛이 일품입니다. 

게다가 너무도 딸들이 반갑고 그리운 아버지가 정성으로 보낸 것이다 보니 울컥이는 감정까지 더해져 더 달큰합니다. 남편과 소주 한잔을 마십니다. 


시원한 목 넘김이 짜릿합니다. 

아버지가 보낸 일기장을 꺼내 봅니다. 

힘차게 꾹꾹 눌러쓴 글씨가 또박또박 자리잡고 있습니다. 


1977년 6월, 제 나이 5살 어느날의 일입니다. 

이유도 없이 하룻밤 자고 일어난 아이가 움직이지 못하는 사지마비가 되어 버린것입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안타까움과 당황스러움이 고스란이 묻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할머니를 제 입장 그대로 할머니라는 표현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릴적 제 집에서 불리우는 이름이 혜정이였습니다. 


‘성모의원에 가서 진찰을 받는데 나는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의사가 혜정이를 엎드려 놓고 다리를 구부리고 접고 때리고 하여도 혜정이는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반응이 없다. 감각이 없었다. 

뼈가 부러질것만 같이 구부리고 비틀고 하여도 혜정이는 아픈 줄도 만지는 줄도 몰랐다. 

나는 정신이 아찔함을 느꼈다. 하느님이여 맙소사. 저 어린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리고 내가 누구에게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남에게 무슨 지악스러운 행위를 하였다고 저렇게 큰 벌을 내리십니까?’

 

‘할머님은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라고 어디든지 가자고.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마산에서 안 되면 부산이라도 가서 혜정이를 낫게 하라고. 

나는 다만 할머님이 하라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말씀하시는 할머님이나 그 말을 듣고 있는 나는 다같이 목이매여 말을 잊지 못하였으며 눈에는 흐르는 눈물이 자욱한 안개로 변하여 앞을 보지를 못하였다.’ 


‘ 그후부터 매일같이 오후 6시에 고성 직장에서 퇴근하여 부산 버스를 타고 대학병원에 도착하여 사랑스러운 혜정이를 위하여 정성껏 간호하게 되었다. 

혜정이는 밤이 되면 누워있지를 못하였다. 누워있지 못하는 혜정이를 할머니와 나는 번갈아 가면서 

새벽 4시까지 혜정이를 업고서 밤을 새우게 되었고 새벽 4시가 되어야 겨우 잠들게 되었다. 

겨우 잠들어 자고 있는 혜정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서 아침 6시에 고성 오는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한 장씩 넘어가는 페이지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제가 소중하고 사랑받던 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글로 표현된 아버지의 일기를 보니 알수 없는 감정이 올라옵니다.  

내가 엄마가 되고 아이들을 기르며 그렇게 가슴이 부서지도록 두드리며 울었던 감정의 실체가 그저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받은 사랑으로 나는 또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참으로 안타까움과 사랑과 희생으로 완성된 결정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절대 허투루 살수 없고 대충도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이 듭니다. 

왜 그리도 타 오르도록 삶이 아까운 아이스크림같은 갈증이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날씨가 영하 10도를 오르내립니다. 

새벽알람으로 5시에 일어나 간단한 선식과 과일을 먹고 독서를 하다보니 수만가지 생각이 올라옵니다. 

따듯한 바지를 꺼내입고 따듯한 윗옷을 몇겹 껴입고 장갑까지 끼고 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갑니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따끔거리지만 그 추위와 싸워 이기려는 몸에서 후끈한 열기를 보내 몸에서는 따듯한 땀방울이 타고 내립니다. 

헐떡이는 호흡과 빨라지는 심장에 내가 살아있음이 뚜렷이 자각됩니다. 


지난밤 읽었던 아버지의 일기가 떠올라 쓸쓸하고 차가운 공원 한 복판에서 눈물이 터져 버립니다. 

이렇게 살아있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미치도록 아름다운 나의 삶이 그저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리도 누군가의 가슴도려 나가는 시간을 매개체로 살아난 제2의 삶이었습니다. 

1977년 그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조금만 무심한 부모님들을 만났더라면 나는 영원히 사지마비가 되어 살았거나 지금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적극적인 마인드와 정성으로 지금 나는 세상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도 행복하고 싶었나 봅니다. 

매일을 미친 사람처럼 행복이라는 것을 그렇게도 찾아다녔나 봅니다. 

이게 기적이고 감사가 아니면 무엇을 칭할까 싶습니다.

현재 내게 너무도 소중한 가족과 인연들, 아버지의 사랑이 있어 가능했던 인생의 선물입니다. 


 어제와 같은 하루이지만 오늘은 더욱 정성스레 밥 한 숟가락을 입어 넣어봅니다. 

짜고 달콤한 비빔고추장이 입맛을 자극합니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도 차갑습니다. 

살아있으니 만나는 행복이고 느끼는 감각입니다.


진심 행복을 고민해 봅니다. 어느 신부님의 글귀가 생각납니다.

“어떻게 먹고살지가 아니라 어떻게 행복할지를 고민하세요.”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진심 감사합니다. 또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전 01화 잘살기 위해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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