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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Nov 16. 2021

잘살기 위해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11월 11일, 빼빼로데이라고 온라인 친구들로부터 선물 쿠폰이 오가는 날입니다. 

아직도 세상은 작은 이벤트에도 행복하고 서로 따듯한 마음을 주고 받고 아쉬운 한숨과 꺄르르 넘어가는 웃음이 뒤섞이는 시간들입니다. 


 1년 중 생일을 제외하고는 크게 챙기는 날이 없는지라 무심하게 퇴근을 했습니다. 

그래도 해마다 빼빼로데이가 되면 아들이 사주는 빼빼로를 받았는데 올해는 아들이 재수로 바쁜지라 그 작은 성의를 보여줄 존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는 길 눈앞에 마트의 불빛이 환하게 들어옵니다. 

뭔가 모를 정서에 끌려 발길을 옮기고 아이스크림과 아몬드 빼빼로 2통을 집어 듭니다. 

한 통은 남편, 한 통은 아들, 딸은 집에 없으니 열외입니다.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내가 주는 사람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들어오니 공부를 하던 아들이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얼굴로 빼꼼이 얼굴을 내밀어 귀여운 웃음인사를 합니다. 

“아들, 엄마가 너 주려고 빼빼로 사왔다. 올해는 네가 엄마한테 안 사주니까 가족중에 사주는 사람이 없어”

“허허, 내가 올해는 바빠서 어쩔수 없네. 아빠라도 사오겠지”

“아들아, 그럴 리가 있겠니? 그럴까?”

“생각해 보니 안 그럴 것 같아. ㅋㅋㅋ”


농담어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아들은 달콤한 막대아이스크림 하나와 빼빼로 한 통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나도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고 행복한 피로를 풀어냅니다. 

시간이 흘러 10시가 넘자 남편이 들어옵니다. 

음~~~ 역시 손에는 아무런 특이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 빼빼로 사왔어?”

“아니, 빼빼로는 남자가 사줘야 하는거야? 여자는 사주면 안돼?”

“되지, 그러니까 나는 사 왔잖아. 저기 있잖아.”

당연히 없을것이라 생각하고 당당히 말을 했던 남편은 다소 당황하는 얼굴입니다.  

“저거 당신이 진짜 산 것 맞어? 직원들이 준 것 아니야?”

목소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아니라고, 내가 샀다고. 2개 사서 당신 하나, 아들 하나 주는 거라고. 이 사람이 진짜~”

“아니, 내가 당신 주려고 마늘빵을 샀었는데 사무실에서 까먹고 안 가져 왔어. 진짜야.”

“거짓말 하지마라. 그걸 내가 믿겠냐? 역시 부부의 애정은 너무 연약해.”


 쓸모없는 부부의 말장난이 한참을 오고 갑니다. 

그러고는 정말 백지처럼 하얗게 잊고 잠이 들고 새벽이 되었습니다. 

새벽운동을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와 평소처럼 남편을 꼭 안아줍니다. 

“나, 운동간다. 회사 잘 다녀와.”

“내가 빼빼로 못 사줘서 미안하다. 그래도 진짜 빵은 사 뒀다.”

장난끼가 잔뜩 오른 얼굴로 남편이 말합니다.

“그럼 오늘 가져와. 누가 그러더라. 모르면 가르쳐서 살면 된다고. 내가 가르쳐 줬으니까 그대로 실행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ㅋ” 


문득, 진짜 나이가 들었나 싶습니다. 어린시절에는 정말 이런 사소한 일로 많이 삐치고 싸우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입으로는 남편에게 요구하지만, 마음은 전혀 아쉬움이 없는 무덤덤한 시간을 느낍니다. 며칠 전 시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야야, 에비가 엊그제 제사다녀가면서 비싼 인삼을 사왔더라. 그거 우리가 먹어봐야 소용없다. 내가 다시 택배 보낼테니까 공부하는 우리 준이 먹이라”


남편이 저 몰래 시어머니께 인삼을 사다 드렸나 봅니다. 그런데 눈치없이 시어머니가 저한테 전화를 한 것입니다. 또 옛날 같으면 ‘당신은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느냐? 내가 안 챙기는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하며 한바탕 다툼거리가 되었을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남편도 아들인데 자기 엄마가 좋아서 뭔가를 사준것인데 그것을 말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도 친정 부모님께 좋은 것이 있으면 사서 보내드리니까요. 


물론 남편은 친정 부모님을 전혀 챙기지 않고, 저는 시부모님을 매번 챙기고 있으니 사정이 다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우리 엄마, 아빠가 좋은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언젠가 딸이 그랬습니다. “나는 맛있는 것을 먹으면 엄마, 아빠가 생각나. 그래서 같이 오고 싶어.”

그때 저는 너무 감동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니 자녀에서 부모가 됩니다. 부모가 되니 또 부모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같은 사실 앞에 다른 감정을 만납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 제목처럼 세상의 진실은 수시로 변해갑니다. 다, 마음에 달렸습니다. 

내가 어떤 감정으로 대하는가에 따라 진실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남편이 작은 초콜릿 막대 과자 하나 사 준다고 사랑하는 것이고 안 사준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부부는 인생의 큰 파도와 폭풍을 지나 단단하고 굳은 마디 살처럼 쉬이 변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연약한 아이 같은 시간들이 이제 더는 나의 감정을 흔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리 보면 안달 낼 일도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숨 막히게 아파오는 시간은 어쩔 수 없지만 한순간 긴 호흡으로 나를 내려놓고 가만히 몸에 힘 빼고 기다리면 또 대부분 해결되는 것입니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행복하다 불행하다 하는 모든 기준은 우리 스스로 세운 허상의 기준에 얽매여 혼자서 울고 웃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어야 하고 출세해야 하고 자녀가 공부를 잘해야 하는 예뻐야하고 똑똑해야 또또또......

이 수많은 기준이 과연 진정 나의 기준이 맞는지 들여다 봐야 합니다. 

다 마음입니다. 내가 스스로 만드는 에고의 결과물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의 삶에 좀 더 책임감이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냥 흔들리는 갈대의 가벼움보다 누구도 범접 못하는 느티나무의 위용이 부러운 시간입니다. 

잘 살기 위해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남편! 당신이 나를 위해 마늘빵 사 뒀다는 거 믿는데이. 오늘은 잊지 말고 가져오래이~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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