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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Feb 07. 2022

나는 매일이 1일입니다(이만하면 됐어→ 이겨야 한다)

의식이 덜 깬 주말 새벽, 아무래도 아직은 한참 새벽이라는 느낌이 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느껴 잠은 깼지만 생각처럼 육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지는 느낌에서 고질병처럼 올라오는 어지러움 병이 재발한 느낌입니다. 

머리가 아프고 손끝부터 발끝까지 한점 힘이 없이 온몸이 물먹은 솜뭉치 같습니다.

조금씩 자세를 변형하고 기어가다시피 화장실을 다녀와 털썩 다시 자리에 누워버립니다.      


“왜 그래? 어디 몸이 안 좋아?”

어둠속에서 잠결을 한참 담은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응, 힘이 하나도 없어. 너무 숨쉬기가 힘들다.”

“큰일이네. 당신이 너무 에너지를 많이 써서 그래. 내가 봐도 당신 지력을 너무 몰아서 쓴다.”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어보니 새벽 3시 38분, 조금 더 자도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든 잠이 평소보다 한참이나 더 긴 시간을 이불속에 붙들어 두었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 6시 40분이 넘어갑니다.      

평소 5시면 기상하는 습관에 비교하면 나름 늦잠을 잔 아침입니다.


천천히 일어나 거실로 나가 평소처럼 물 한잔을 마시고 사과 한 알을 꺼내고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깜박이는 눈 밑이 따끔거리고 통증이 전해져 옵니다.      

며칠전부터 여기저기 옮겨가며 괴롭히던 다리끼가 오늘은 왼쪽 눈밑으로 옮겨갔나 봅니다. 

거울을 보니 그야말로 좁쌀만한 고름을 머금은 염증이 왼쪽 눈꼬리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러 날 비슷하게 만나는 상황이라 머릿속에 이내 사라지고 빨간 사과에 칼을 들이댑니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아삭한 사과를 먹으며 사과를 보내준 언니를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며칠 전부터 틈만 나면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질병처럼 집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매번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약간의 짜증과 걱정으로 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힘이 들까? 왜 이렇게 만사가 귀찮게 느껴지는 것일까?’

커피 한잔을 들고 따듯한 전기장판의 열기가 들어오는 좌식 독서 책상 앞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커피의 따듯하고 향긋한 향기도 좋고 종이책이 주는 손끝의 낭만으로 주말 아침이 무척이나 평화롭습니다.

새해가 들며 마침 노트 한 권이 마무리되고 새 노트의 첫 장을 열고 무언가 긁적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작년에 무슨 책을 읽었는가? 무슨 내용 들을 느끼고 메모했는가?     

마무리된 노트를 한 장씩 넘겨 가며 복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름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정리한 글귀들이 눈길을 잡아챕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말이 있었구나, 그랬구나, 우스개스러운 혼자만의 감탄을 하며 놀라운 보고서를 읽는 것처럼 그렇게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어느 한 글귀에서 멈췄습니다.

왜 이렇게 몸이 피곤하고 아팠는지를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만하면 됐어.”

왠지 위로가 되는 글입니다.      

그런데 그 글귀 옆으로 화살표를 긋고 그리 적혀있습니다. 

“이겨야 한다.”

살다 만나는 마디의 순간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만하면 됐어→ 이겨야 한다.”

‘그래, 내가 마음에서 대충 이제는 좀 내려 놓아야 겠다 생각했었나 보다. 그렇게 긴장이 사라졌었나보다.’

살다 몇 번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죽기 살기로 버티는 순간에는 괜찮은데 막상 그 긴박감이 사라지고 나면 털썩 주저앉는 시간들.     


결혼을 하고 참 잘살고 싶었던 저는 여러 가지로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에 대한 욕심은 단연 최고였습니다.

딸이 어릴 때 아픈 것을 시작으로 지난 세월 한시도 대충 산 적이 없었습니다.      

늘 그리 생각했었습니다. 

‘인간은 20살이 될 때까지 습득한 것들이 살아가는 평생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니 부모로서 자녀가 20살이 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함께해야 한다. ’

그런데 아들이 재수를 하는 바람에 작년에 그 20살을 마무리했습니다.      

며칠 전 대학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완전 성공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고생했다 할 만큼의 결과는 받았습니다. 


또한 몇 년 동안 남편의 승진이 되지 않아 참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자꾸만 기가 죽어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작년 한 해는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뛰어다닌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런게 있습니다. 

내꺼, 내 사람은 누가 뭐래도 지켜야 하고 그들이 힘들고 슬픈 것은 두고 볼수가 없습니다.      

잘못 보면 참 별나다 하겠지만, 숨 막히는 관심과 무심한 존재로서의 선을 넘지 않고,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인생의 1차적 관문을 통과한 것입니다.      


남편과 아들 문제가 해결되자 무의식적으로 제 마음에 기운이 빠진겁니다. 

‘이제 그만 됐어’하는 감정이 올라온 것입니다. 

머리에 번개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빨간 볼펜을 꺼내어 노트의 여백에 힘주어 꼭꼭 눌러 씁니다.

노노노이겨야 한다아자 아자.’

언젠가 너무도 열심히 살고 싶어 눈물이 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마음은 벌써 세상의 저만치를 날아가는데 현실은 너무도 평범한 내가 안타까워 가슴을 치며 울부짖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간사스럽게 조금 편해지니 이리 초심을 잃은 것입니다. 


요즘 시작하는 연인들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우리 오늘부터 1일이에요.”

오늘 새벽 나 자신에게 말합니다. 

“영희야, 다시 1일이다. 매일이 나는 1일이다.”     

거짓말처럼 새벽기상을 위해 눈이 번쩍 띄여집니다. 

세상의 살아있음에 알 수 없는 흥분과 환희를 느낍니다.


새벽 출근을 위해 옷을 입으며 외투의 디자인이 올드하다며 가벼운 투정을 하는 남편을 바라봅니다.     

갑자기 늘 건강하게 옆에 있어 주어 너무 감사하다는 감정과 동시에 눈물이 납니다. 

꼬옥 안아주며 말합니다.

“여보, 고마워. 당신이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난다. 힝~”

“왜 울고 그래, 당황스럽게. 내가 옷 사달라고 안 할게. ㅋㅋㅋ”     


사람이 생각하나만 바뀌어도 이렇게 또 새로운 삶입니다. 

나는 참 잘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유치하고 이상한 똘기를 가져서라도 나는 절대적으로 행복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주문을 반복합니다. 나는 매일이 1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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