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을 부르는 명상 루틴
스트레스 받으면 제일 먼저 ‘잠’이 무너지는 타입이다. 개복치적 면모가 잠으로 나타난다.
남들은 스트레스가 심하면 식욕이 뚝 끊겨서 살이 빠진다는데, 나는 오히려 살이 찐다. 밤새 뒤척이다가 결국 벌떡 일어나서 야식을 먹고, 다음날 아침엔 얼굴이 퉁퉁 붓는다. ‘스트레스로 살 빠지고 핼쓱해졌다’는 건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 이야기. 결국 병원에서 수면제 처방을 받아서 버텼지만, 약에 점점 의존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심리적인 압박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구원투수를 만났다. 수면 명상이었다.
명상 효과는 참 다양하고 적용 사례도 다양하지만, 내가 실감하는 가장 강력한 효능은 단연 숙면이다. 잠을 못 자면 하루 전체가 무너진다. 집중력, 감정, 심지어는 인간관계까지. 그래서 잠드는 순간을 부드럽게 열어주는 명상의 힘이 정말 크게 다가왔다. 아마 잠 때문에 고생해본 사람들은 ‘숙면’한 날의 체감이 얼마나 다른지 공감할 거다.
처음엔 ‘수면 스토리’로 시작했다. 명상 앱에는 그냥 호흡 유도나 몸 이완만 있는 게 아니라, 마치 오디오북 같은 긴 이야기들이 있다. 내용은 별거 아니다. 지구 반대편의 열대 우림을 묘사한다거나, 끝없는 사막 언덕을 걷는 장면, 또는 이름 모를 할머니가 텃밭에서 토마토를 가꾸는 풍경. 귀여운 동화도 종종 끼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듣는 이가 깊게 고민하거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 않는다. 그저 가볍게, 목소리를 따라 걸어가는 느낌만 준다.
수면 스토리의 성우들은 원래도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여기선 한층 더 부드럽고 사근사근하게 속삭인다. 스무살 때부터 혼자 살았던 나는 혼자 잠드는 게 너무나 당연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잠 못 이루는 밤에는 그 당연함이 오히려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럴 때 수면 스토리 내레이션을 듣고 있으면, 마치 누군가 옆에서 밤새 조곤조곤 말 걸어주는 것 같은 따뜻한 안정감이 생긴다. 어릴 때 엄마가 동화책 읽어주던 기억도 소환되고.
게다가 수면 스토리의 장점은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강의처럼 필기할 필요도 없고, 드라마처럼 다음 줄거리를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집중을 놓치고 흘려듣는 게 목표다. 중간 중간 이야기를 놓쳐도 된다. 넷플릭스로 영화 보다가 주요 장면을 놓치면 ‘앞으로 되감아서 다시 봐야지’ 하지만, 수면 스토리는 놓치면 놓친 대로 그냥 둬도 뒷 이야기를 듣는 데에 문제가 없다. 머리가 ‘이야기 따라가야지’ 모드에서 ‘흘려보내자’ 모드로 전환되는 순간,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몸이 잠의 파도에 실려간다.
수면 스토리의 다음 단계는 수면 명상. 일반 명상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쪽은 확실히 ‘잠’을 목표로 설계돼 있다. 가이드는 대체로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이제 몸이 휴식을 찾을 시간입니다.” 단순한 말인데, 누군가 내 하루를 인정해주고, 다독여주고, 이제 괜찮다고 말해주는 순간… 묘하게 울컥한다. 호흡을 느리게 하고,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차근차근 힘을 빼는 ‘바디 스캔’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몸은 구름 이불 속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풀린다.
또 수면 명상의 장점 중 하나는 스마트폰 강제 분리 효과다. 나는 원래 ‘잠이 안 와서’라는 핑계로 침대에서 폰을 붙잡고 버티는 타입이었다. SNS 보고, 게임 좀 하다 보면 결국 폰을 얼굴에 떨어뜨리고 나서야 잠드는 게 일상. 그런데 명상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폰을 내려놓게 된다. ‘명상 시작’ 버튼을 누르고 눈을 감는 순간, 스스로에게 “오늘 폰은 여기까지”라고 선언하는 셈이 된다.
그렇게 꾸준히 명상을 이어가다 보니, 신기하게도 수면 시간이 점점 규칙적으로 맞춰졌다. 명상 시작 시간을 정해두니까 수면 루틴 전체가 그에 맞춰 흘러가는 것이다. 수면 클리닉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수면의 질을 높이려면, 가장 먼저 수면 시간을 규칙적으로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바로 그 원리를 자연스럽게 지키게 된 셈이다.
나는 갤럭시 워치로 매일 수면 상태를 체크한다. REM 수면, 깊은 수면, 얕은 수면. 예전엔 그래프가 들쭉날쭉이었는데, 수면 명상을 시작한 뒤로 규칙성과 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제는 수면유도제를 점점 줄이고, 대신 식물성 멜라토닌과 수면 명상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내 몸이 스스로 잠들 수 있다’는 작은 성취감이 쌓이면서, 수면 불안도 많이 줄었다.
수면 명상은 잠드는 게 힘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혹시 병원에 가는 게 심리적으로 무겁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 방법부터 시도해보길 추천한다.
오늘도 버텨낸 나를 위한 작은 선물, ‘푹 좀 잡시다’라는 이름의 명상 루틴.
그 덕분에 나는 내일 아침, 조금 더 가벼운 눈꺼풀로 세상과 다시 마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