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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Oct 11. 2024

한강과 전두광

<소년이 온다>  

(이 글은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선정을 축하하는 동시에, 나도 숟가락을 살짝 얹는 기분으로  글입니다)


어제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내님이 호들갑을 떨며 알려왔다.


"여보, 한강 작가님 알지? 노벨 문학상 받았나 봐?"


"정말?? 머머??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무식하게도 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선정 기준인 줄 알았다)


아내님은 이런 나를 한심해하며,


"노벨문학상은 특정 작품 한 권으로 주는 게 아닐걸? 작가의 전반적인 문학적 기여와 업적에 평가일걸? 작가에게 주는 상일걸?"


나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우리 아내님이 달리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겸연쩍어하며,


"그렇군... 어쨌든 너무 잘 된 일이야. 진짜 자랑스럽고, 작가님 대단하시다...ㅠㅠ"


그리고 설거지를 마저 했다.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가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작가님과 작품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채식주의자>를 읽었으나 8년 전의 나는, <채식주의자>를 오롯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철이 없었고, 감수성이 어렸다. 다행히 뒤이어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는 무척 감명 깊게 읽었드랬다. 또 뒤이어 <작별하지 않는다>를 구매하긴 했으나 <작별하지 않는다>는 아직 읽지 않고 고이 이북 클라우드에 모셔 두었다.


나의 이북 클라우드에 가서 다시 한강  작가님을 검색해 보니 그동안 구매한 내역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보기 위해 다시 다운을 받았다. 역시 '책은 종이책이든 이북이든 사놓으면 언젠가는 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만큼은 책 과소비하는 나를 칭찬해!)

클라우드에 남겨진 작가님 책의 흔적

작가님의 책 중에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책은 <소년이 온다>이다. 그래서 오늘 하고 싶은 얘기도 <소년이 온다>에 관한 것이다. 책은,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님은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했다는 인터뷰를 후에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마음에 와닿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복수의 광주 518 관련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그중에서 소년 동호와 그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당시 중학교 3학년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너무나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동호의 억울한 사연과 동호의 어머니 이야기도 각각 실려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아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동호 어머니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게 그리고 생생히 전해졌고, 6장 '꽃 핀 쪽으로'를 읽으며 참 많이 울었드랬다. 나도 아이가 생기고 보니 그때 그 슬펐던 감정이 간혹 증폭될 때도 있었다. 아들을 묻은 엄마의 마음이, 부모의 심정이 이제는 더 이해될 것 같아서 그랬다.



아니제.

그럴 수 없는 걸을 내가 알제. 내 손으로 너를 묻었은게. 하늘색 체육복에다 교련복 윗도리를 입고 있던 너를, 하얀 하복 샤쓰에다 아래위 까만 동복으로 갈아 입혔은게.

...

관 뚜껑 닫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네 얼굴이 얼마나 핼쑥했던지. 네 살이 그렇게 희었던 줄 그때 처음 알았다이.

나중에 느이 작은형이 그러드마는. 총을 맞고 피를 너무 흘려서 네 얼굴이 그리 희었다고. 그래서 관이 가벼웠다고. 네가 아무리 덜 컸다고 해도, 그렇게 관이 가벼울 수는 없었다고.

...

어쩌끄나, 젖먹이 적에 너는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는디. 향긋한 노란 똥을 베 기저귀에 누었는디. 어린 짐승같이 네발로 기어댕기고 아무거나 입속에 집어넣었는디. 그러다 열이 나면 얼굴이 푸레지고, 경기를 함스로 시큼한 젖을 내 가슴에다 토했는디...


- <소년이 온다>의 6장 '꽃 핀 쪽으로' 중에서


https://brunch.co.kr/@humorist/164


우연히 이틀 전, '나의 직장 상사 전두광'이라는 글을 올렸었다. (그때 '소년이 온다'를 언급했었어야 했는데... 소설은 '오래된 정원'과 '레카토'만을 소개했다...) 거기서 정아은 작가님의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던가>를 참고 했고, 책 속의 질문을 언급했다.


우리는 왜 전두환을 무릎 꿇리지 못했는가? 그가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국가적·사회적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피해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더 담론화해서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그래서 급히 이 바람이 휘발되지 않게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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