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엘 Apr 13. 2020

#19 호주에서 바리스타

존과 아사이 스무디

카페의 단골손님이라 하면 자주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호주 카페의 단골손님은 기계처럼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 마시던 커피를 마시고 먹던 것을 먹는다. 매일 오는 사람은 매일 오고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온다. 호주에서 카페를 열게 된 것은 이 단순한 진리에 대한 호기심과 확신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카페를 오픈하고 가장 매진한 일은 단골손님을 찾아내고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덕분에 6개월이 되자 100명 넘는 단골손님이 생겼고 1년이 될 무렵엔 200명 넘는 단골손님이 생겨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큰 걱정 없이 커피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었다.


호주에서 존(John)이라는 이름은 한국의 ‘철수’처럼 흔한 이름이라 사람이 모인 곳에 가서 ‘존’이라고 소리치면 서너 명은 돌아볼 정도다. 손님 중에 여러 명의 존이 있는데 50대 나이에 20살이나 어린 중국 여자와 결혼한 부자인 존, 카페 옆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연한 라떼를 마시는 중국인 존, 카페에서 일하는 멜라니를 보려고 불필요한 카페인을 마시러 오는 바리스타 존, 앤드류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엑스트라 샷 플랫화이트를 마시는 존, 그리고 늘 정중한 회계사 존이 있다.


회계사 존은 카페가 오픈했을 때부터 틈틈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자주 카페를 찾았다. 아침 문 열자마자 와서 브레키(Breakkie)를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점심을 먹으러 오고, 오후 늦게 커피를 마시러 오기도 했다. 카페가 오픈하고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아 음식을 심하게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불평이나 불만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고 따뜻한 미소로 나를 위로했다. 그가 회계사라는 것을 알고 카페 회계를 부탁할 때, 추호의 망설임도 들지 않았을 만큼 그는 선한 사람이다.


처음 존을 만났을 때, 그가 싱가포르 아니면 홍콩에서 온 아시아계 이민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40대 초반으로 한국인 아내가 있고 많은 아시안 직원들과 일하고 있는 데다 구릿빛 피부 덕분에 아시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 ‘모리셔스’ 출신이다. 인도양의 보석이라 불리는 ‘몰디브’에서 서쪽으로 가다 보면 아프리카의 가장 큰 섬 ‘마다가스카르’ 가 있고, 그 옆에 아프리카의 보석 ‘모리셔스’가 있다. 그는 거기서 태어났고 호주로 유학을 왔다.



모리셔스의 대표적인 관광지 ‘수중폭포’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신이 모리셔스를 창조하고 난 뒤 천국을 만들었다.’라고 말했을 만큼 아름다운 섬에서 태어난 존은 매년 가족을 만나러 그곳에 간다. 호주 퍼스에서 모리셔스까지 직항 비행 편이 있어 70만 원 정도에 왕복 항공권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조만간 한국에서 출발하는 모리셔스 직항이 생길 예정이라는데, 몇 년 뒤에 필리핀의 ‘보라카이’처럼 청소한다고 섬 문을 걸어 잠그는 일이 생길까 염려가 앞선다.


존은 카페에 오면 다양한 음식을 먹고 다양한 커피를 마신다. 카페에서만 보면 절대 호주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그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을 꼽자면 카페인, 소이 밀크, 헤이즐넛 시럽 정도일 것이다. 소이 피콜로를 마시다가 어떤 날은 소이 라떼를 마신다. 그러다가 롱-블랙 커피를 마시고 종종 커피에 헤이즐넛 시럽을 넣어달라고 한다. 여기에다 꾸준히 그리고 틈틈이 즐기는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아사이(Acai)이다.


아사이는 아카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마존의 보랏빛 진주’라고 알려져 있다. 검정에 가까운 진한 자주색으로 탄탄한 과육이 딱딱한 씨를 감싸고 있는, 블루베리를 연상시키는 과일이다. 아사이를 설명할 때 브라질 블루베리 같은 것, 이라고 하면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 아사이는 원기를 충전시켜주는 식품으로도 유명한데, 건강함에 집착하는 호주 사람에게 아보카도, 비트루트 등과 함께 격한 사랑을 받고 있다.


아사이는 보관 문제 때문에 생과일보다 걸쭉한 퓌레로 만들어 유통된다. 브라질에서 퓌레로 만들고 냉동한 팩을 호주까지 수입해오는데, 이것을 갈아서 스무디(Smoothie)로 만든다. 아사이 열매 특유의 신맛과 초콜릿에 견줄 만한 깊은 씁쓸한 맛을 설탕이나 꿀, 애플 주스, 코코넛 워터 등과 섞어 맛의 균형을 맞추는데 신비로운 맛으로 재탄생된다.


카페에서는 아사이 스무디를 만들 때 냉동된 아사이 퓌레의 질감을 부드럽게 하고 맛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코코넛 워터나 애플 주스를 적당히 섞고 바나나를 한 개를 넣어서 갈아준다. 아사이를 셔벗에 가깝게 블렌딩하고 볼에 담아 글래놀라 (볶은 곡물, 견과류 등이 들어간 스위스식 시리얼), 아몬드 같은 견과류, 딸기나 키위 같은 상큼한 맛의 과일을 올리면 아사이 볼(Acai Bowl)이 된다. 아사이 볼은 호주 사람에게 간식이 아니라 식사로 취급된다. 아사이 스무디가 칠천 원 정도 한다면 아사이 볼은 가격이 두 배나 되지만 한국의 팥빙수처럼 더운 날 인기가 많다.



아사이 스무디와 아사이 볼



존은 커피를 마시러 와서 아사이 스무디를 함께 주문한다. 카페인을 섭취하고 간편하게 허기를 달래고 몸에 건강함까지 챙기는 것이다. 호주 직장인은 일찍 퇴근해서 여유롭게 저녁식사를 할 수 있지만 점심시간이 짧아 간단한 것으로 간편하게 해결한다. 대부분 바로 집어갈 수 있는 초밥이나 샌드위치를 먹거나 견과류, 과일 또는 에너지 바로 때우기도 한다. 스무디도 인기 많은 점심 메뉴다. 스무디에 다양한 과일이나 채소를 넣고 프로틴 파우더까지 넣어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게 만든다. 호주를 대표하는 스무디 프랜차이즈 '부스트(Boost)' 메뉴를 들여다보면 음료가 아니라 식사를 팔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눈치를 보고 거짓말을 하며, 허세와 가식을 부린다. 존은 이런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카페 주변에 많은 오피스가 있는데 거기엔 많은 회계사무실이 있다. 그는 다른 회계사와 달리 자신을 소개하며 명함을 내민 적이 없으며 틈틈이 커피와 아사이 스무디를 즐기러 카페를 왔다. 그런 모습에 매료되어 카페 회계를 부탁하게 됐다.


법인회사를 설립해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1년에 한 번 재무보고 때문에 반드시 회계사가 필요하다. 그 외 나머지는 여력이 된다면 개인이 할 수 있다. 인건비가 비싼 호주에서 회계처리 비용 또한 비싸다 보니 간단한 업무는 개인이 처리를 한다.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호주의 회계 인프라는 잘 되어있고 개인을 위한 회계 프로그램도 있다.


호주와 한국의 세법은 비슷하다. 비즈니스를 하면 부가가치세를 내는 것도 소득으로 번 돈에서 소득세를 내는 것도.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세율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과 비교되는 것은 소득이 적으면 더 적은 세율을, 많으면 더 많은 세율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1천만 원 미만의 소득도 6%의 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호주는 2천만 원까지 저소득층으로 규정해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한국에서 1억 원을 벌면 소득세로 20%를 내지만 호주에서는 25%를 낸다. 한국 법인세는 최근에 25%까지 올랐지만 호주는 최소 25%에서 시작한다. 회사의 규모와 무엇을 만드느냐에 따라 법인세율도 달라지지만 호주 대기업은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진저비어 (Ginger Beer)를 만드는 호주를 대표하는 기업 번다버그 (Bundaberg)는 50% 이상의 법인세를 낸다고 한다. 세금만 놓고 봐도 호주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아니다.


호주에서 비즈니스를 하면 크게 두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는데 하나는 개인사업이고 하나는 법인사업이다. 한국과 다르게 호주 법인사업에는 트러스트(Trust)라는 개념이 추가로 있다. 한국에서는 동업한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가서라도 말리라 하는데, 벽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과 크게  모순된다. 국적을 불문하고 혼자 사업하는 것보다 파트너와 일을 분담해 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건설적이다. 개인의 신변이 리스크가 되는 개인사업과 달리 여러 사람이 운영하는 동업은 사람의 문제를 사람이 대처할 수 있고, 손해와 이익을 분담할 수 있어 위기나 기회가 왔을 때 유연히 대처할 수 있다. 사업체로부터 세금을 걷어가는 정부도 사업체가 동업 구조를 취하는 것을 더 장려한다.


호주는 동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나라다. 트러스트 개념을 보면 알 수 있다. 트러스트는 가족들이 참여하는 패밀리 트러스트 (Family Trust)와 파트너와 함께 하는 유닛 트러스트 (Unit Trust)로 나뉜다. 트러스트는 일종의 주주라고 볼 수 있는데 하나의 트러스트는 1년에 2만 불, 2천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세금 없이 배당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5명 가족이 모두 트러스트일 때, 수익금에서 2만 불씩 각자배당하면 10만 불, 1억 원 가까이 되는 돈을 배당세나 소득세 없이 가져갈 수 있다.


존에게 회계를 맡기면서 수임료에 대한 안내를 받고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그 액수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카페에서 가격에 개의치 않고 고마운 마음으로 커피와 아사이 스무디를 즐기는 것처럼 나 또한 고마운 마음으로 그에게 회계를 부탁하고 싶었다. 내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커피를 파는 것처럼 그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회계를 처리할 것이기 때문에.

이전 18화 #18 호주에서 바리스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