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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Jul 28. 2020

이상한 나라에 전입신고한 앨리스

나답게 살기 위하여 선택해야만 했던 것들, 필요한 작별인사들

어릴 때 읽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온갖 이상한 캐릭터들이 가득했다.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을 정도로 모든 캐릭터들은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만 했고, 나는 그 속에서 헤매는 앨리스가 퍽 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왜인지 "목을 쳐라."하고 외치는 하트 여왕의 악다구니에도, 재판장에 나와서도 티파티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버터 바른 빵을 와작 씹어먹는 모자장수에게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속이 시원하다는 감각이었다.


스토리가 진행이 되지 않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가면 짜증스러운 것이 응당 옳을 텐데 나는 그 책의 흐름이 왜 그렇게 속 시원했는지 모르겠다. 각자 저 하고 싶은 말만 지껄이고 앨리스가 어디로 가는지는 도무지 관심도 없어 보이는 스토리 서사가 의외로 나에게 해방감을 주었던 것 같다.


'모든 캐릭터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원하는 대로 말하고 있어.'



나의 어린 시절은 부모가 실험해본 무수한 교육방침으로 얼룩져있었다. 대다수 어리고 미숙한 그 시기 부모처럼 나의 부모도 자신의 장녀가 그 어떤 아이보다 똑똑하고 머리가 좋다고 착각했다.

아이에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 함께 찾아주는 것은 양육자로서 옳은 방향이겠지만 내 부모는 더 나아가 내가 천재라 믿었다. 그냥 천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못다 한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수재라고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이 또한 그 나이 아동을 기르는 부모들의 흔한 착각 중 하나겠지만.


다만, 우리 가족의 비극은 부모의 이런 착각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비극은 내 부모의 의지력과 인내심이 다른 또래 어른들 대비 아주 강했다는데서 시작됐다. 내 부모는 정말로 포기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 둘이 만나 결혼했으니 파괴력은 보통 의욕 충만한 초보 부모를 월등하게 뛰어넘었으리라.


가장 기억에 남는 교육은 나의 의식이 흐릿하게 시작되던 시점에 시작되었다.

속칭 '우는 소리로 칭얼거리면 들어주지 않기' 교육이었다. 그 교육에서 필수적으로 적절한 애정표현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30대 초반이던 내 엄마는 몰랐겠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 딸이 칭얼거릴 때마다 철저하게 투명인간 취급하던 것을 떠올리면, 정말 엄마는 육아만 빼놓고는 무슨 일을 하든 성공했을 거란 비아냥 반 진담 반의 마음이 든다.

엄마가 원하는 것은 '육하원칙에 맞춰 원하는 것을 명확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딸'이었고 나는 그 규칙을 어느새 이해했다. (이해하더라고 엄마가 말해준 적이 있다.)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아이였던 나는 원하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순간, 그 울음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엄마, 나는 이 반찬을 먹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그건 너무 맛이 없기 때문이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를 그렇게 만든 엄마에게 본인의 성과를 과신하기 시작했다.


울며 칭얼거리는 말투를 통제하는 데 성공한 부모는 다음 수순으로 분노를 통제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본능을 마구 내뿜는 동물 같던 아이를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고 말했다. 그 과정조차 부모에게 뿌듯했던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곤욕스러웠던 기억이 얼핏 난다.

예를 들어 '싫어.'라는 표현을 통제당하던 기억. 

어른에게 버릇없이 '싫어!'라고 외치는 거 아니다, 어른이 시키면 이유가 있는 거니까 무조건 따른 후 나중에 네 의견을 피력할 기회에 하도록 해. 나는 싫어서 싫다고 말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잘못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마침내 어린애다운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 결과 체벌과 엄격한 말이 번갈아가며 쏟아졌고 아이였던 나는 이내 체념했다. 

어차피 저들은 나의 양육자이고 계속 반항을 해본대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나는 당장 부모가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면 생존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 끝에 백기를 든 것을 보면 나는 눈치가 빠른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머리가 좋았다면 그 모든 것을 겪어내면서도 나의 의지를 지킬 방법을 고민했을 텐데 나는 그냥 눈치만 빨라선 어떻게 응대해야 체벌과 싸늘한 공기와 엄한 처분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지만 파악하고 그대로 행동했던 것이다.


싫다고 말하지 못하던 아이는 학교에 입학하고 또래 친구들이 생기고 그 안에서 또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사춘기에 전쟁같이 부모와 싸워가며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내 부모와 비슷한 나이까지 살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렇게 훌쩍 커서 그 어렸던 나를 멀리서 관조하고 있다.


나는 무수한 말을 빼앗겼다.

원래 삶은 개인에게 많은 말들을 빼앗아간다. 나이를 한 살 먹으며 나는 더 많은 문장과 단어들을 대가처럼 지불했다. 그리고 말엔 마음이 담겨서 그 내어놓은 자리만큼 내 마음도 야금야금 쥐어 뜯겼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뜯겨나가면서도 아픈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준비된 인재였기 때문이다.

말을 뺏기고 마음을 내놓고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것은 전부 선행 학습되어 있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나는 무수한 단어와 마음을 뺏겼다. 이미 선행된 고통은 예방주사 같았다. 그래서 어느 시점을 지나자 아프지도 않았다. 아프지 않으라고 미리 마음을 죄다 죽여놓은 것인가 부모의 진심을 다시 재평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가끔 아무 생각 없이 퇴근길이나 출근길을 걷다 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이 없는 순간들이 퍼뜩 들었다가 사라졌다. 무기력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아무것도 좋아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없는 끝없는 일상 속에 질식할 것 같았지만 나는 질식할 것 같은 감각조차 무던하게 넘겼다. 원래 사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배워왔으니까.


"싫어!" 

크게 외치는 것을 잃은 대가가 그렇게 컸다.

나는 죽은 것처럼 생을 살고 있었다. 


무언가 계기가 있어서 퍼뜩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고 부모와 공간 분리를 한 채 산지 시간이 좀 지나자 계속 맞아온 접종의 효과가 사라지는지 나도 조금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갑작스러운 생각이었지만 변화의 조짐은 조금씩 핏줄에 섞여 든 듯싶었다.


어느 날 부모가 원하는 것을 거절했다.

부모가 위협하듯 '내 월급'이란 말 같은 건 버르장머리 없는 말이니 쓰지 말라고 말했을 때 손바닥에 축축하게 땀이 배어들어도 "왜 쓰면 안 되는데? 내가 번 돈을 내 월급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하냐고."라고 저항했다. 그 결과가 엉망진창이라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돌아갈 내 집이 있으니 기분이 좀 괜찮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나 자신이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는 보통의 일상이다.

내 집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일을 하고 내 월급을 받아 나답게 살 수 있는 주거공간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루틴.


이상한 나라에 전입신고한 앨리스처럼.


부모에게서 떨어져 세대주로 전입신고를 하고부터 나는 나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모자장수와 티파티를 하며, 채셔고양이와 킬킬대며 내가 어떤 압박도 받지 않고 원하는 말을 하는 법을 걸음마하듯 배우듯.


지금이라면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머무르겠다고 결정하고 동화가 끝났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고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하기 위해서 나는 이 나라에 터를 잡고 살겠노라고 선언하더라도 정말로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도 나답게 살기 위해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으니 그녀도 분명 그랬던 모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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