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부모가 된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봅니다
한 연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공부를 할 수 있음을 만끽했다.
특히 연인 중 여자가 더 그랬다. 그 시대 대부분 그랬듯 여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무역회사 경리로 취직했다. 집안에서는 입 하나라도 줄이고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여자의 빠른 취직을 종용했다. 그렇게 돈푼이나 벌다가 눈먼 놈 만나 시집이나 가면 한 숨 돌리는 거라 생각하는 집안에서 자라온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혼자 공부하여 대학에 입학했다.
"너는 어째 그렇게 이기적이냐."
그런 소리를 홀어머니뿐만 아니라 온 친족들에게 돌아가며 들었으나 여자는 꿋꿋하게 버텼다. 답은 전액 장학금밖에 없었고, 그녀는 4년 내내 전액 장학금을 받는 성적을 내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하면서도 괴로운 줄을 몰랐다고 그랬다.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인데, 공부만 하면 학비를 내준다는데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여자의 연인인 남자 역시 대학 공부에 푹 빠져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부잣집 아들은 아니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유학을 가겠노라고 결심했다. 굶으며 단칸방에서 버티더라도 괜찮았다. 언젠가 사진으로 본 낙엽이 내리는 외국 대학 도서관을 상상하면 그는 황홀감을 느꼈으니.
두 사람은 가난한 연인이었지만 그 시대엔 누구나 가난했노라고 말했다.
오징어가 들었는지도 모를, 튀김옷만 잔뜩인 싸구려 튀김을 쌓아놓고 친구들과 밤새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몇 병이나 마시며 나중에 어른이 되면 오징어가 꽉 찬 튀김을 안주로 먹자고 말하던 기억을 두 사람 모두 가지고 있었다. 흔한 가난이었노라고.
내가 유학을 가서 자리를 잡으면 우리 결혼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남자가 했을 때 여자는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무슨 소리야, 나도 내 전공에 맞는 곳으로 유학을 갈 거야. 단칸방에서 배 곪고 밤새워 공부하는 거 나도 자신 있어. 우리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살다가 언젠가 국경을 넘어 만나면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않겠니? 그런 이야기를 여자가 남자에게 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여자 역시 공부에 대한 열망을 끊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눈을 뜬다는 건 그런데에 쓰는 말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몇 년 후 부모가 되었다.
독일의 흔들리는 조명 아래 밤거리, 프랑스의 도서관에서 한 시간 겨우 눈을 붙이는 일을 상상했던 자신들은 연기로 빚은 것 마냥 흐릿했다. 우리가 그런 생각을 했던가? 정녕 그런 마음을 먹었단 말인가?
그럼 그때의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렇다. 그들은 갑자기 부모가 되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의 부모'가 되었다.
여자가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잔혹하고도 뻔한 상황이 그들을 급습했다.
그러게 왜 더 조심하지 않았느냐는 말은 두 청년에게 너무 가혹한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상황은 이미 그들에게 조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엄중한 징벌과 같았으니까.
나는 그 여자, 나의 엄마에게 왜 다른 선택지가 없었는가를 묻지 않았다.
또는 시대가 달랐다면 다른 선택을 했겠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그런 질문은 같은 여자로서 무의미하다 느꼈다. 나는 죽지도 않고 살아남아 여자에게서 무사히 태어났으니.
남자는 급하게 진로를 선회했다. 이미 따놓은 여러 외국 대학원의 합격통지서도 휴지조각이 되었다. 그는 아빠로서 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우선 생존을 위한 길을 찾아야만 했다. 자신이야 굶어가며 외국 단칸방에서 공부만 하면 만족하더라도 아기는 뭔가 먹고 싸고 잠을 자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반드시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어느 옥탑방에 신혼집을 꾸렸다. 나의 아빠는 가까스로 어느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 면접 보러 갈 양복이 한 벌 없어 빌려서 입고 취업문을 겨우 통과하자 매일 새벽 늦게 퇴근하고 새벽 일찍 출근하는 현실이 밀어닥쳤다. 가끔 눈내리는 외국의 어느 도서관을 떠올리며, 추운 겨울 옥수역에서 남자는 지하철을 기다렸다. 뼛속까지 밀어드는 추위에 구역질을 느끼며.
아빠는 나에게 가끔 말했다.
새벽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가 우는 나를 안고 울고 있었다고.
얘가 한 시간마다 한 번씩 깨서 울어, 약이라도 먹고 딱 세 시간만 잤으면 좋겠어, 너무 괴로워, 너무 괴로워.
아빠는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피로함 속에서 겨우 대답했다고 한다.
누워서 좀 자, 내가 안고 재워볼게. 그리곤 나를 안고 벽에 기대어 쪽잠을 청하면서 엄마가 잠든 모습을 보았다고. 극심한 입덧과 잠을 자지 않고 약한 아기였던 내 탓에 몸무게가 40킬로까지 빠지며 앙상하게 마른 여자를 보았다고 했다.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고.
그런 삶을 살던 어느 날 아기를 재우기 위해 계속해서 틀어놓은 동화책 테이프 음성에 따라 동화책의 책장을 넘기는 어린 딸을 보았을 때 나의 엄마와 아빠는 신이 내린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저 애 지금 글자를 읽은 거야? 저만한 아기가 글자를 읽을 수 있어?
또! 저기 봐, 또 테이프 음성과 책장 넘기는 걸 똑같이 따라갔잖아. 글자를 인지 했다는 거지?
아아, 그것은 들을 때마다 너무 애달픈 기분이 드는 일화이다.
어린 부부는 고작 그런 것에 희망을 느껴야만 했다. 본인들의 꿈을 몽땅 접고 태운채 얻은 것이 민감하고 성질 고약한 딸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은 옥탑방도 그랬고, 칼바람이 몰아치는 출근길 야외 지하철역도 그랬다. 그들의 삶에선 도무지 희망이 없었다.
그러니 고작 아이가 테이프 음성에 맞춰 책의 글자를 따라가는 정도로 그렇게까지 환희에 차 버린 것이다.
"얘는 교수가 될 수 있게 해주자."
"나도 그 생각했어. 우리는 부모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했어. 이 애는 우리가 있으니까, 하고 싶은 공부도 마음껏 하고 교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갑자기 다시 삶을 사는 기분이야."
"나도 그래. 얜 태어났을 때부터 눈을 번쩍 뜨고 있었어. 흰자가 깨끗한 그 눈으로 날 봤다고. 보통 애가 아니야."
그렇게 비극은 시작되고 있었다.
갑자기 부모가 되어버린 80년대의 청년은 자신들의 부모가 주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심은 비극의 시작점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았다. 그들도 나도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우리도 네가 괴물 같았어!"
"그래? 피차 비슷하네. 나한테 엄마 아빠는 괴물 같지 않았을 것 같아?"
그런 악다구니가 집안에서 벌어질 줄 상상하지 못한 젊은 부부는 소중한 딸이 분명 본인들의 못다 한 꿈을 이뤄줄 것이라 믿으며, 간만에 안심하고 좁고 외풍이 드는 집에서 옹송그리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과거를 되짚으면 그들이 선량하고 가혹한 양육자가 된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