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코 13화
왜 나는 그렇게 생각했을까.
왜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했을까.
왜그렇게 내 위주로 생각했을까.
고양이 비쥬는 길고양이니까 집안에만 있으면 답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양이 산책을 하기 위한 목줄격인 하네스도 사고
가방도 사고
고양이를 위한 것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준비했다.
그 과정이 왠지 모르게
나는 신나고 설레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고양이는 신나게 산책을 다니지 않았다.
잔뜩 몸을 낮춘 채 아주 천천히 이동했다.
그러다 수풀이 나오자 신나게 돌아다녔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나무가 보이니 나무 위로 올라갔다.
위험해 보이지만
본능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고양이를 위한 나의
세심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
고양이가 강아지풀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럼 강아지풀이 아니라 고양이풀이어야 하지 않을까?ㅎㅎ)
길가에, 도로변에, 아파트 정원에 피어 있는 강아지풀을
부지런히 갖다 주었다.
비쥬는 정말 잘 먹었다.
뭔가 말은 통하지 않지만
알아서 고양이가 원하는 것을 딱 딱 대령하는
나는 점점 멋진 집사가 되는 것 같았다.
.
넉넉한 사료, 깨끗한 물을 제 때 제공하는 것이 나의 주된 일이다.
거기에 간간히 맛난 간식을 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먹는것과 자는것이 늘 불안했을
길고양이인 비쥬에게
먹을걱정, 잠잘걱정 안하는 것만으로도
비쥬에게는 충분하지 않을까.
.
모든 공간이 화장실이고 화장실이 되었을
비쥬에게
플라스틱 화장실과 인공 모래는 조금 낯설기도 하겠지만
쾌적한 곳에서 볼일을 볼 수 있는것,
볼일을 보면서 주위를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
.
아무조록 고양이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하니
가능한 혼자있게 두면 되지 않을까.
물, 사료, 화장실, 잠잘곳만 마련해주면
내가 할 일은 다 한 게 아닐까.
.
몰랐다.
정말 그런줄 알았다.
하나의 생명체를, 그것도 사람도 아닌,
사람과 말도 통하지 않는 다른 존재와 함께 산다는 것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음을.
그때의 나의 치명적인 무지는
바로 사람도 개개인마다 아주 다를뿐 아니라
한 사람 역시 상황과 시기에 따라 그리고 감정에 따라
취향과 식성, 선호하는 것들, 그리고 기존의 품고 있던 생각 역시
변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고양이는 다 똑같을꺼라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내 기준에서 베푼 호의에 고양이가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기싫어도 먹어야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양이를 돌보는 저 밑바닥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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