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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비루코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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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코집사 Oct 09. 2022

몰랐다.

비루코 13화


왜 나는 그렇게 생각했을까. 

왜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했을까.

왜그렇게 내 위주로 생각했을까. 



고양이 비쥬는 길고양이니까 집안에만 있으면 답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양이 산책을 하기 위한 목줄격인 하네스도 사고

가방도 사고 

고양이를 위한 것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준비했다. 

그 과정이 왠지 모르게

나는 신나고 설레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고양이는 신나게 산책을 다니지 않았다.

잔뜩 몸을 낮춘 채 아주 천천히 이동했다. 

그러다 수풀이 나오자 신나게 돌아다녔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나무가 보이니 나무 위로 올라갔다. 

위험해 보이지만 

본능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고양이를 위한 나의

세심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


고양이가 강아지풀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럼 강아지풀이 아니라 고양이풀이어야 하지 않을까?ㅎㅎ)

길가에, 도로변에,  아파트 정원에 피어 있는 강아지풀을 

부지런히 갖다 주었다. 

비쥬는 정말 잘 먹었다. 

뭔가 말은 통하지 않지만 

알아서 고양이가 원하는 것을 딱 딱 대령하는

나는 점점 멋진 집사가 되는 것 같았다. 


.


넉넉한 사료, 깨끗한 물을 제 때 제공하는 것이 나의 주된 일이다. 

거기에 간간히 맛난 간식을 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먹는것과 자는것이 늘 불안했을 

길고양이인 비쥬에게

먹을걱정, 잠잘걱정 안하는 것만으로도 

비쥬에게는 충분하지 않을까. 

 

.


 모든 공간이 화장실이고 화장실이 되었을

비쥬에게

플라스틱 화장실과 인공 모래는 조금 낯설기도 하겠지만

쾌적한 곳에서 볼일을 볼 수 있는것, 

볼일을 보면서 주위를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


아무조록 고양이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하니

가능한 혼자있게 두면 되지 않을까. 

물, 사료, 화장실, 잠잘곳만 마련해주면

내가 할 일은 다 한 게 아닐까.



몰랐다.

정말 그런줄 알았다. 

하나의 생명체를, 그것도 사람도 아닌,

사람과 말도 통하지 않는 다른 존재와 함께 산다는 것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음을.

그때의 나의 치명적인 무지는

바로 사람도 개개인마다 아주 다를뿐 아니라

한 사람 역시 상황과 시기에 따라 그리고 감정에 따라

취향과 식성, 선호하는 것들, 그리고 기존의 품고 있던 생각 역시

변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고양이는 다 똑같을꺼라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내 기준에서 베푼 호의에 고양이가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기싫어도 먹어야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양이를 돌보는 저 밑바닥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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