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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말랭 Feb 17. 2024

꼬마야 넌 어디서 왔니

꿈 속 이야기

어느 갤러리의 행사장. 행사장 한가운데 고상한 여자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와인잔으로 땡땡땡 신호를 울리며 모두가 그녀에게 시선을 두도록 했다. 그녀는 눈을 슬며시 올리며 말했다.

"재미있는 볼거리가 있을 것 같네요. 두 사람 가위바위보 해보세요."

그 행사의 권위자로 보이는 여자는 나와 경쟁자에게 가위바위보를 시켰다. 내가 이겼다.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사람의 가방 속은 어떤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 기회에 한번 볼까요? 진 사람 가방 먼저 주세요."

여자는 경쟁자의 가방을 가져오라는 듯이 눈짓했다. 비서 같은 사람이 가방을 가져왔다. 명품 가방으로 보이는 그 속에는 노트북, 다이어리, 화장품 파우치, 립밤, 휴대폰 등이 나왔다. 여자는 말했다.

"예상했지만 깔끔하죠? 평소 행동 보면 아시겠지만 군더더기 없잖아요. 역시. 안 보이는 곳에서도 관리가 잘돼있네요. 이제 이긴 사람의 가방을 보죠."

내 가방이 여자의 손에 쥐여졌다. 속으로 망했다 생각했다. 나는 여느 여자와는 다르게 가방 속이 자유로웠다. 어디서 받은 구겨진 영수증, 이어폰, 동전도 굴러다닌다. 노트는 있는데 가방 속에서 오래 뒹군 탓에 모서리는 닳아있어 상태가 엉망이었으므로. 게다가 밖에서 글을 쓰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트의 종이를 북 찢어 구겨 넣는 습관도 있다. 가방은 구겨진 종이의 집합체라는 뜻이 된다.

여자는 집게손가락으로 하나씩 구겨진 종이들만 꺼내고 있었다. 구겨진 얼굴과 함께.

"당황스럽네요.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더 보지 않아도 알겠네요. 보이지 않는 곳은 그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죠. 그건 애티튜드까지로 연결돼요. 가방은 치워주세요."

비서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내 가방에 재빠르게 쑤셔 넣었다. 뜬금없이 가방 속을 볼 게 뭐야.

행사가 끝나고 터덜터덜 나오는데 작은 손이 나의 오른쪽 손을 슬며시 잡는다. 자연스레 오른쪽을 쳐다봤다. 눈이 맑은 꼬마 아이였다. 꼬마는 나에게 말했다.

"누나,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려고 종이가 그렇게 많았던 거죠? 가위바위보 많이 그렸을 것 같아요. 가위바위보 할 때 종이 보고 이긴 거 맞죠? 이겼으니까 됐어."

꼬마는 배시시 웃었다.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 말이 위안이 되었다.

"넌 어디서 왔니?" 나는 물었다.

꼬마는 말했다. "누나 마음속."

꼬마는 환영이라도 본 것처럼 사라졌다.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나는 허공을 바라보는 여자가 되어있었다. 빨간 불이다. 자동차는 비키라는 듯이 빵빵 경적소리를 내었다. 서둘러 도보로 향했다.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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