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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말랭 Mar 30. 2024

뭐라도 하고 싶어서 뭐라도 하고 있다.


매일 밤 알약 네 알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본다. 이 약을 먹은 지 어느덧 일 년이 흘렀다. 이 약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약 없이도 잘 수 있는 날이 있지만 더러는 못 잔다. 약 없이도 잘 수 있는 날이 있지 않을까 하여 며칠은 안 먹고 버텨보았다. 역시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약이 내가 잠들 수 있게 한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약을 안 먹으면 이제는 잠은 잘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박에서 해본 실험이었다. 어떤 강박이 생긴 듯하여. 둘 다 맞는 것도 같다.


요즘은 뭘 할지 잘 모르겠다. 대략적인 한 해 계획을 세웠지만 구체적으로 세우지 못한 탓에 어물쩍 넘어가버리는 하루들이 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밤이 오면 자기가 영 꺼려진다. 스치듯 하루를 보낸 나에게도 잠 잘 자격이 있는가 싶어서. 요즘은 뭘 할지 뭐라도 하고 있다. 글쓰기야 매주 한다 하지만 조금 더 써볼까 생각에만 그치고 있다. 나의 장점을 살려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다. 학원도 이제 이 주 뒤면 수료한다. 자격증 몇 개를 더 따고 이력서에 몇 줄 정도 넣으면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을까. 나의 길이 있을까. 그냥 판 벌리고 책 한 권 더 내버릴까. 여러 생각이 든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멈추지 않는다는 거다. 멈추면 안 된다. 멈추면 약을 먹지 않아도 과수면이 온다. 약 없이 하루종일도 잘 수 있다. 삶의 스위치를 끄겠다는 얘기다. 그러면 안 되니까. 뭐라도 하고 싶어서 뭐라도 하고 있다. 이게 내 인생에서 어떻게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이 재미없으면 남의 인생이 궁금해진다지. 이쯤 되면 궁금하다. 당신은 뭘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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