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이거 참, 선배. 이러면 안 되는데?”
그 동안 내가 써놓은 초고를 꼼꼼하게 읽어보던 최유선이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눈매가 마치 나를 향해 쥬피터의 번개처럼 작렬했다.
“뭐가 문젠데?”
“이건 선배 자서전, 아니면 미우의 추억이네.”
“그래서 아직 보면 안된다고 했잖아?”
“벌써 의뢰 들어간 지 1년이 지났고, 그 동안 취재 경비라고 쓴 돈이 1000만원이 넘어갔는데, 아직 초고 아니 하다못해 목차도 받은 적 없다고.”
예나 지금이나 최유선이 조목조목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정우도 물아 붙였는데, 하물며 나쯤이야.
“아니, 그건 뭐. 아직 자료 조사가 끝나려면 멀었고, 내 생각을 좀 정리해 볼 필요도 있고.”
나는 쩔쩔매며 간신히 변명했다.
“그럼,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건 뭐죠?”
“여기 적혀 있는 게 그러니까 이건 초고가 아니야. 그냥 정우에 대한 내 기억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이 정우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좀 덧붙여 놓았을 뿐. 일종의 자료, 혹은 나중에 소설에 집어넣을 재료들, 조각들 그런 거지. 그리고 미우 누나, 그 부분은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정우가 미우 누나와 함께 투어 다니다 결별하기 까지 그 2년이 정우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고.”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방금 읽은 게 초고가 아니다?”
“그래.”
“그럼 더 심각해지는데? 1년이 지났고 1000만원이나 지출했는데, 아직 초고도 안 썼단 말이잖아?”
“일단 자료가 정리되고 줄거리가 정해지면 금방 써.”
“좋아. 믿어 볼게. 그런데 아녜스 진술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 같은데, 아직도 더 들을 얘기가 남았어? 쮜리히에서 또 만날 거라고?”
“쮜리히는 모든 비용을 다 아녜스가 내니까 그쪽 경비 지출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돈 문제가 아니고.”
최유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 보다 키가 큰 당당한 체구가 위협적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진실성이 문제야. 아녜스 관점에서만 디누의 어린 시절을 재조명하는 건 위험하다고.”
“너무 그렇게 몰아 대지 마. 정우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누군지 생각해 봐. 82년까지는 미우 누나, 84년까지는 아녜스. 그 다음이 지네트잖아? 그래서 미우 누나 관련 기억 정리하고, 이제 아녜스 이야기 듣고 정리하는 중이야. 다음에는 지네트 이야기 들어봐야 하고. 물론 마지막에는 네 이야기를 들을 거고.”
“아녜스는 여우라서 말을 꾸민다고.”
나는 “너, 아무래도 아녜스에 대해 선입관을 가진 것 같은데…”라는 말을 꺼낼 뻔 했다. 천만 다행 그 말이 튀어 나가기 직전에 목구멍으로 되삼킬 수 있었다. 유선이 저렇게 민감하게 구는 데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니까.
정우가 결혼 이후에도 옛날 여자친구인 아녜스와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니까. 장모는 지네트 쪽을 신경썼지만 유선은 아녜스를 훨씬 신경썼다. 두 사람 다 만나 본 입장에서 유선의 입장에 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다. 확실히 아녜스에게는 남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마흔이 된 지금도 이 정도인데, 20대 중반에는 정말 대단했을 것이다.
유선이 정색하며 말했다.
“혹시나 싶어 하는 말인데, 내가 아녜스 경계하는 건, 질투나 그런 거 아니야. 난 현실적인 사람이라, 세상 떠난 남자 놓고 그런 유치한 감정 다툼 따위는 하지 않아.”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언제 쯤이면 제대로 된 초고를 볼 수 있을까?”
“음. 지금 상태라면 크리스마스 이전에는 완성본에 가까운 초고를 볼 수 있을 거야.”
“선배 빈말 안 하는 거 아니까 믿을게. 비즈니스는 여기까지. 이제부터 친목질. 잘츠부르크 처음이지? 숙소는?”
“응. 처음이야. 그런데, 멋모르고 음악제 기간에 와서 묵을 곳도 못 구했어. 호텔이란 호텔은 다 만원이고.”
“걱정 마. 노숙은 면하게 해 줄테니. 내 방에서 묵어.”
“아니, 그건..”
“엉뚱한 생각 말아요. 난 다른 여성 스탭들 방에 가서 자면 되니까.”
“아, 그런 방법이 있었지.”
나는 유선이 런던 로얄 오페라의 음악 부감독 자격으로 잘츠부르크에 와있음을 실감했다. 런던 로얄 오페라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와 헨델의 ‘테오도라’를 준비해왔는데, 유선은 헨델 팀 책임자였다.
덕분에 나는 세계 최대의 음악제가 열리고 있는 잘츠부르크에 숙소도 잡아 놓지 않고 덮어놓고 들어온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사실 밤차를 타고 쮜리히로 가는 고달픈 여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자, 그럼, 짐은 그냥 여기 두고, 우리 나가죠. 기왕 잘츠부르크까지 왔는데, 구경해야지?”
유선이 얼굴을 부드럽게 바꾸며 말했다.
생명수 같은 말.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 신자인 나에게는 성지다. 그런데 이 성지까지 와서 순례 대신 클라이언트 잔소리나 듣고 있노라니 이제는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던 우울증이 되살아날 판이었던 것이다.
디누투어: 취리히
1
오스트리아와 스위스가 인접국이라고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모두 작은 나라들이고, 잘츠부르크가 빈 보다는 스위스 쪽에 치우친 도시라 근교 여행하듯 잠깐이면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잘츠부르크에서 쮜리히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훨씬 멀고 험난했다.
두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스위스가 아니라 독일 뮌헨까지 가야 했다. 거기서 기차를 바꿔 타고 다시 네 시간 반을 더 달려야 취리히다.
결국 오후 세시에 잘츠부르크를 떠난 나는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쮜리히 역에 내릴 수 있었다. 피곤에 절은 몸으로 플랫폼에 내리니 내가 캐리어를 끌고 가는지 캐리어에 내가 끌려가는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그나마 잘츠부르크에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호텔을 미리 잡아 놓았기 때문에 역에서 바로 길 건너에 있는 호텔에 몸을 던졌다. 우리나라 여관 수준도 안 되는 방을 내어 주고 하루 30만원씩 받고 있다니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간신히 짐을 풀고 사람 꼴이 되어 침대에 드러눕자 머리맡에 둔 전화기가 반짝거리며 문자 메시지 수신을 알렸다. 열어 보니 ‘쮜리히에 오셨나요? 여긴 루쩨른. 내일 아침 11시에 쮜리히 역으로 갈게요.’라는 아녜스의 문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긴 여행의 피로에 굴복한 나는 답장 보내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대로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호텔 유리창 한 가운데서 번쩍이고 있었다. 놀란 나는 전화부터 열어 보았다. 다행히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전화가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열어보니 ‘쮜리히로 가는 열차에요. 방금 출발했어요.’ 라는 메시지가 아홉 시 오십 분에 수신 되었다.
루쩨른에서 쮜리히까지는 기차로 5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 아녜스 도착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진돗개 하나에 걸린 군인처럼 서둘러 용변, 샤워, 세발, 면도를 포함한 모든 위생·정결·단장 과정을 20분 만에 마쳤다. 코밑에 셰이빙 펌 냄새가 남았고, 머리도 미처 마르지 않았지만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그나마 여름이라 챙겨 입을 옷이 얼마 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전차길이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길을 건너 쮜리히 역으로 달렸다. 숙녀가 기차 내려서 사람 찾느라 두리번 거리게 하는 건 매너가 아니니까.
낮에 본 취리히 역이 신선해 보였다. 밤에 내렸을 때는 트렁크에 끌려가느라 어떻게 생긴 건물인지 미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밝은 햇살 아래서 보니 박물관처럼 보이는 고색창연한 건물에 거대한 동굴을 연상시키는 큰 궁륭이 뻥 뚫려 있는 멋진 건물이었다.
성수기라 기차가 도착하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눈에 확 띌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을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아녜스 역시 간신히 노숙자 꼴을 면한 내 모습을 금방 찾아내고 활짝 웃으며 경쾌한 스텝으로 다가왔다.
아녜스는 알프스 소녀처럼 머리를 트윈테일 스타일로 길게 땋아 내리고 데님 서스펜더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나이 마흔에 저런 스타일이 어울리다니.
“먼저 나오셨네요? 도착해서 연락 드리려고 했는데?”
“레이디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죠.”
“고마워요. 디누랑 다르네요. 디누가 이런 매너 좀 배웠어야 했는데. 디누는 먼저 나와 기다린 적 없었는데.”
“그 녀석이 원래 그래요. 인류에 대한 사랑은 넘치는데,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참 무심하고 인정머리 없죠.”
“어머, 그렇게 까지는.”
아녜스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후회했지만 이미 뱉은 말이다. 항상 가까운 사람들의 사랑과 헌신을 착취하면서도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정우의 뻔뻔함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골이 났던 것이다.
아녜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쾌활함을 되찾았다.
“우리, 오페라 하우스까지 걸어갈까요? 1마일 정도밖에 안 될 텐데?”
나야 걷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더구나 아녜스 같은 미인과 함께라면. 바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우리는 취리히의 번화가라고는 하나, 서울의 한적한 부도심 같은 반호프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타박타박 걸었다. 명품 샵들이 줄지어 나타났고, 스타벅스도 보였다. 나름 글로벌 거리인 셈이다.
페스탈로치 동상이 서 있는 자그마한 잔디밭을 지나갈 무렵 내 입에서 뜬금없는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결국 망치셨죠?”
“네? 뭘 망치나요?”
“아녜스가 그때 참가했던 베른 콩쿠르 말입니다.”
“아, 그거요?”
“별 것 아닌 것 처럼 말씀하시네요.”
아녜스가 픽 하고 웃으며 말했다.
“뭐, 브뤼셀 콩쿠르 때 보다 성적이 더 나빠서 실망하긴 했지만, 어쨌든 파이널 5에는 들었는걸요? 연습도 제대로 안 했으니. 받아들였죠.”
“연습을 게을리하신 게 아니라 일정이 고되어 그랬던 게 아닐까요? 베른이랑 취리히를 오가면서 어떻게 제대로 연주할 수 있었겠어요”
“쮜리히에서 베른은 기차로 한 시간 거리고 기차도 30분마다 다니고 해서, 특별히 불편할 것 없었어요.”
아녜스가 열심히 정우를 위해 변명을 했지만 나는 전혀 납득되지 않았다. 베른에서 열리는 콩쿠르에 참가하면서 취리히에 숙소를 잡는 것부터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미우는 아녜스가 취리히에 숙소잡고 베른을 오가며 콩쿠르에 참가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었나요?”
“아뇨. 미우 뿐 아니라 아무도 몰랐어요. 취리히에서 아침 일곱 시 반 기차를 타고 가면 아홉 시에 대회장에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으니까.”
“내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시간씩 기차 타고 출퇴근하면서 무슨 콩쿠르를 합니까? 게다가 여자를 그런 식으로 오가게 만들어 놓고 자기는 마중도 한 번 안 나와요?”
“저는 다 이해했는 걸요? 그때 디누는 쮜리히 대학 도서관에서 작품 연구하느라 너무 시간이 없었어요.”
“그것 참 이상하네요.”
나는 유럽에서 제일 크다는 시계탑이 있는 성 베드로 교회가 보이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난 정우가 평소에 작품 연구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아요. 1년 전부터 취리히 콩쿠르 준비한다면서 모차르트랑 슈만 엄청나게 연구했어요. 그 놈 머리 속에는 모차르트와 슈만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완전히 소화되어 들어 있었고요. 그런데 무슨 작품 연구를 그때 가서 또 합니까?”
“그때는 그래야 할 사정이 있었어요. 와! 저기 좀 봐요. 알프스에요. 루체른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멀리 보이네요.”
아녜스가 갑자기 말을 끊고 멀리 남쪽을 가리키며 팔짝 팔짝 뛰었다. 그때마다 트윈 테일로 땋은 긴 머리카락이 폴카 스텝으로 움직였다.
과연 쿠아이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북쪽으로는 리마트 강 양 옆으로 그림 같은 중세 도시가 펼쳐져 있었고, 남쪽으로는 드넓은 취리히 호반 너머로 은발을 펄럭이는 알프스의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었다.
우리는 잠시 말을 잊고 아름다운 풍경을 호흡했다. 아녜스는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를 기 막히게 잘 찾아내더니 거리낌 없이 자기 사진기를 내 손에 쥐여 주고 취리히 옛 도시와 강을 배경으로 갖가지 포즈를 취했다. 나는 마치 사진작가라도 되는 양 연신 셔터를 눌렀다.
아녜스는 광고 촬영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찍히는 사진마다 표정이며 포즈가 화보집을 연상시켰다. 나도 기념이 될 만한 장소에서는 내 카메라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쮜리히를 만끽했다.
“저기 맛있어 보이지 않아요?”
아녜스가 이탈리아 국기가 그려진 피제리아 하나를 발견하고 내 팔꿈치를 잡아끌었다.
“맛은 모르겠지만 자리는 참 좋네요.”
“배고프죠? 우리 저기 가요. 맛있는 피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침도 거르고 나와 줄곧 걷기만 하고 있었으니 뱃가죽과 등가죽이 서로 마찰하고 있었다. 우리는 리마트 강과 건너편의 중세풍 구도시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피제리아로 들어갔다.
실내에는 사람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손님들은 앞마당에 펼쳐놓은 야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당연히 우리도 구도시와 리마트 강이 바라보이는 야외석에 자리 잡았다. 가끔 트램이 느긋하게 지나가며 그 자신도 풍경의 일부가 되어 주었다.
메뉴판에는 온통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밖에 없었지만, 어머니가 이탈리아계인 아녜스는 별 어려움 없이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주문했다.
잠시 후 우리는 나폴리탄과 마르게리타 한 장씩을 펼쳐놓고, 거품이 풍성한 카푸치노를 들이켤 수 있게 되었다. 뭔가 좀 아쉽고 허전하여 아직 오전이지만 와인도 한 병 땃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제 느긋하게 이야기할까요?”
와인 한 잔이 들어가 수다 떨 만반의 준비를 갖춘 아녜스가 미소를 던지며 입을 열었다.
“좋죠.”
“그럼 시작해 볼게요. 취리히의 디누.”
나는 적어도 두 시간 이상 이야기를 들을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느긋하게 귀를 기울였다.
“디누 말고는 아무도 몰랐어요. 내가 취리히에 있는 거.”
“아버님이나 캘러니안 선생님도?”
“그땐 제가 외국 다니는 게 워낙 일상이라 아빠나 선생님이 따라다니지 않았어요. 일 년에 연주회를 60번 했거든요.”
“와, 60회씩이나요?”
어린 소녀가 체력도 대단하다 이런 생각 뿐 아니라 은행원 아들 답게 내 머리속에서는 그럼 개런티가 대체 얼마야 하는 계산이 막 돌아갔다.
“그땐 어려서 힘든 줄 몰랐던 거죠. 게다가 베른에도 호텔을 하나 잡아 두었거든요. 아빠가 직접 결재했고, 거기에 정식으로 체크인 했고. 드레스랑 이런 것들도 다 그 방에 두었고요. 하지만 대회기간 24일 중 한 20일 정도는 취리히에서 묵었죠.”
“깜찍하네요. 앙증맞은 일탈이군요.”
“물론 저도 그게 얼마나 바보짓인지 알아요. 하지만 캘러니안 선생님이 ‘오호, 이번 베른 콩쿠르에서 미우는 그 괴물(prodigy)과 함께 연주하지 않는구나. 디누는 베른이 아니라 취리히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한다고 하니 말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번에야 말로 미우와 비슷한 조건에서 겨룰 수 있겠네’ 하는 생각보다, ‘뭐, 디누가 베른에 오지 않는다고?’ 하는 아쉬움이 더 컸었다고요.”
“콩쿠르의 목적이 바뀌었네요? 디누를 만날 기회로?”
“그게 아니었다면 베른 콩쿠르를 왜 기다렸겠어요? 콩쿠르? 별로 필요 없었어요. 저요 아홉 살때 LA필하모닉이랑 협연하면서 데뷔했고, 열한 살 때부터 세계 투어 다녔어요. 콩쿠르 같은 등용문이 왜 필요해요? 장식장을 채울 권위 있는 대회 트로피가 필요했고, 그건 브뤼셀에서 3위 한 걸로 충분했어요. 베른 콩쿠르 굳이 신청한 건 미우가 오는 곳에 디누가 있어서죠. 디누가 안 오는 콩쿨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이미 내 마음은 베른이 아니라 취리히에 가 있었어요.”
나는 곧 사춘기에 들어설 예니를 생각하며 미리부터 딸의 배신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비록 딸 바보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다른 아빠들 하는 만큼은 바보짓을 했는데, 결국 좋아하는 남자 하나 생기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우리 사이에는 태평양이 가로막고 있었다고요! 매주 편지를 두통씩 주고받으면서도 채울 수 없는 갈망이 있었어요. 너무 보고 싶었고, 너무 느끼고 싶었어요. 그래서 날짜 꼽아가며 베른 콩쿠르만 기다렸는데, 베른에는 미우만 오고 디누는 취리히로 간다. 내가 디누 포기하고 베른에 머물러야 했나요? 한 시간 거리에 디누가 있는데? 박사님 같으면 어떻게 했겠어요?”
아녜스가 마치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딸 같은 톤으로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녜스가 매력적인 입술과 목소리로 항변해도 선뜻 와 닿지 않는 것을 보니 나는 천상 한국 남자였다.
“그래서 정우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나요?”
그러자 아녜스가 24년 전의 소녀로 돌아간 것 같은 뾰로퉁한 모습으로 말했다.
“문제는 그게 전혀 쉽지 않았다는 거죠.”
“상대가 정우라.”
“그러게요. 디누를 자주 보지 못했어요.”
“네? 아니 그 고생을 하면서도 자주 보지 못했다고요?”
“만나기야 했죠. 보지 못했다고요. 취리히 오페라 근방에는 멋진 야외 레스토랑이랑 카페가 즐비했어요. 그런데 디누는 늘 악보를 들고 왔어요. 디누의 눈은 늘 악보를 향하고 있었죠. 내가 아니라. 그 상태에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도대체 보지도 않고 먹는데 어떻게 음식이 입에 정확히 들어가는지 신기할 정도였어요. 너무 서운하고 속상해서 눈물이 쏟아졌어요. 내가 누구 때문에 아빠랑 선생님 속여가며 고생스런 일정을 보내고 있는데, 눈길도 안 주고.”
“아니, 그건 전혀 정우답지 않은 모습인데요? 꼭 공부 못하는 놈들이 시험 당일에 벼락치기 한다고 비웃었거든요. 콩쿠르 장소까지 가서 무슨 악보를 그렇게 봐요?”
“복잡한 사연이 있어요. 우선 취리히 콩쿠르가 얼마나 어려운 대회인지 알려드릴게요. 보통 콩쿠르들은 3라운드인데, 이 대회는 4라운드예요. 서류 전형을 통과한 20명과 와일드 카드로 예선을 거친 20명, 이렇게 40명의 본선 진출자들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소나타 중 아무거나 골라 20분 정도 연주해야 하는 1라운드 경연을 해요. 여기서 20명이 살아 남아요. 이 20명은 슈만이나 쇼팽의 독주 작품들로 30분 정도의 프로그램을 짜서 연주하는 2라운드 경연을 펼치죠. 여기서 10명만 남죠. 다시 10명이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12번~27번 중 하나를 선택하여 연주하는 3라운드를 펼치고, 여기서 5명만 남아서 슈만, 쇼팽, 브람스, 차이코스프키, 그리크, 버르토크,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중 하나를 선택해서 연주하는 결선 라운드를 펼치죠.”
아녜스의 설명을 듣고 나는 정우가 중학생 때 2위에 입상했다는 쮜리히 콩쿠르가 얼마나 엄청난 고행길인지 알고 잠시 숨을 멈추었다.
“물론 이렇게 괴롭히는 대신 상도 다른 대회보다 많아요. 1, 2, 3위와 별도로 모차르트 특별상, 쇼팽 특별상이 있고, 각각 상금이 5,000달러나 되거든요. 이론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모차르트, 쇼팽 특별상을 모두 석권하면 30,000달러라는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죠. 그러니 대부분의 참가자가 모차르트 곡이랑 쇼팽 곡에 몰려들고, 그만큼 경쟁은 더 치열해지죠. 그런데 디누가 어떤 곡을 선택했는지 아세요?”
“음 기억나요. 출국하기 전까지 정우가 연습하던 곡은 모차르트 d단조 소나타, 쇼팽 소나타 2번, 모차르트 23번 A 장조 협주곡, 그리고 슈만 협주곡이었어요.”
“그런데 디누는 박사님이 말씀하신 곡들을 하나도 연주하지 않았어요.”
나는 너무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뻔했다.
“뭐라고요? 말도 안 돼요. 정우는 분명히 취리히 콩쿠르 준비한다고 하면서 그 곡들, 악보가 새까매질 정도로 메모하고 연습하고 그랬다고요.”
“하지만 디누가 1라운드 과제곡으로 제출한 곡은 하이든 소나타 Hob.16-52번이었는 걸요? 모차르트도 베토벤도 아닌 하이든. 박사님은 디누가 하이든 연주하는 거 들어 보셨나요?”
“네버. 정우가 하이든 연주하는 거 한 번도 못 봤고요, 아니, 정우가 하이든을 언급하는 것도 못 들어봤어요.”
“저도요. 그래서 ‘이런 큰 대회에서 유치하게 무슨 짓이야?’ 하고 막 따졌어요. 그랬더니 이러는 거 있죠?
‘모차르트 특별상 때문에 사람들이 다 모차르트만 선택하잖아? 모차르트는 3라운드 협주곡에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데 1라운드부터 그럴 이유가 뭐람? 청중이랑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지루하겠어? 베토벤은 안 땡기고, 그러니 하이든이지.’
나는 너무 황당해서 또 따져 물었죠.
‘그럼 하고 많은 하이든 소나타 중 왜 Hob. 16-52번인데? 원래 아는 곡이야? 연습한 적 있어?’
‘아니.’ 디누가 정말 뻔뻔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어요. ‘라디오에서 한번 들어봤는데 너무 좋았어.’
맙소사, 난 너무 놀라서 들고 있던 포크를 떨어뜨렸어요. 하필이면 우리가 식사하던 곳이 카이저스 레블라우베란 유명한 레스토랑이라 수십 개의 시선이 일제히 모였어요. 여기저기서 ‘어, 아녜스다.’라는 목소리가 한국어, 영어, 독일어로 들렸어요.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죠. 결국 몇몇 분들에게 사인까지 해 주어야 했어요.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자 디누가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표정으로 씨익 웃었어요. 어찌나 귀엽던지. 하지만 귀여운 웃음으로 연막을 친 디누는 더 기막힌 말을 했어요.
‘그 정도로 놀라면 어떡해? 나 지금 악보도 없어.’
그냥 멍하게 디누를 바라보았죠. 그러니까 지금 이 건방진 소년이 라디오에서 한 번 들어봤을 뿐 연습해 본적도 없고, 악보도 없는 작품을 쇼팽 콩쿠르와 더불어 피아노의 월드컵이나 다름없는 취리히 콩쿠르 과제곡으로 신청했다는 거잖아요? 여섯 살 때부터 신동소리 듣고 자란 제 입에서 ‘아니, 이 건방진.’ 이런 말이 튀어나오려고 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정말 뭐라 할 말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요?”
“정말 어이없네요. 그래서 녀석은 어떻게 했나요?”
“취리히 대학 도서관에서 악보를 빌려오더라고요. 그리고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소설 보듯 읽었어요. 제가 옆에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었고, 밥 먹을 때나 차 마실 때나 그리고 내가 ‘나 먼저 잘게. 잘 자.’ 하며 자리에서 일어설 때나, 계속 악보만 읽었어요.
내가 왜 울었는지 아시겠죠? 내가 눈물을 글썽여도 디누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응. 난 좀 더 연구할 게 잘 자.’ 이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받았죠. 악보만 보고 있었으니, 내가 눈물 아니라 피를 흘렸어도 몰랐을 거에요. 숙소에 가서 배겟잇이 축축 해질 때까지 울었어요.”
나는 눈물 흘리는 아녜스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조차 방실방실 웃고 있다. 40대인 지금도 이러니 소녀 시절에는 더 그랬겠지. 그런 아녜스를 눈물짓게 만들 정도라니. 정우가 너무 무정하고 이기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미우도 “정우는 음악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라며 흐느끼지 않았던가?
“어떻게 그런 녀석을 사랑할 수 있었죠?”
“눈물의 보상을 받았으니까요.”
아녜스가 지그시 눈을 감고 볼에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행복하고 예쁜 미소를 지었다.
“음악이죠?”
“그럼요. 밤새 울다 아침 일찍 짐을 쌌어요. 베른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죠. 모두가 저를 사랑했고, 저와 시간을 보내면 즐거워했어요. 그렇게 16년을 살았어요. 하지만 디누는 저를 앞에 두고 악보만 보고 있었죠. 내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너무 부끄러웠어요. 이별 통보하려 씩씩거리며 디누 숙소에 갔죠. 이미 나가고 없더군요. 그렇다면 갈 곳은 뻔했어요. 취리히 무용 학교에 임시 연습실 10개가 운용 중이었거든요. 이른 아침이라 피아노 소리가 나는 연습실은 하나 밖에 없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디누가 부지런히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나는 그 다음에 나올 말을 뻔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정우 이 자식을 먼지 나게 두드려 패고 싶어지다 막상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그를 만나는 순간 맥없이 무너진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둘의 입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 연주는 너무 아름다웠어요!”
우리는 너무 민망해서 일단 앞에 놓인 피자를 우물거리고 포도주로 목을 축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아녜스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이 까르르 웃었다. 평소 소리내어 웃는 것을 경멸하던 나조차 한참을 소리 내어 웃어야 했다.
뭐 어때? 이탈리아인이 하는 피제리아에 왔으니 이탈리안처럼 소리 내어 웃어도 되겠지 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녜스의 1/4토막은 한국인, 1/4토막은 이탈리아인, 모두 시끄럽게 웃는 민족 아닌가?
마침내 웃음을 진정시킨 아녜스가 여전히 우스워 견딜 수 없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박사님도 디누한테 자주 무시당했나 봐요.”
“그럼요. 사람 불러 놓고 막상 가면 왔냐 갔냐 말도 없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악보만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때려주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죠. 하지만 녀석이 피아노 앞에 앉으면 모든 게 바뀌죠. 도대체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는 녀석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딱 그때 제 느낌이었어요. 그 누추한 연습실에 디누가 아슬란처럼 세상을 창조하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어요. 야트막한 언덕, 예쁜 조각구름, 그리고 명랑하게 흘러가는 개울물. 한가하게 풀을 뜯는 양떼, 나무 아래서 시원한 산들바람에 콧노래를 실어 보내는 양치기.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함께 모여 기쁨에 가득 찬 춤을 추며 창조주에게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불렀죠.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어요. 이런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저는 3악장의 격렬한 코데타를 연주하고 있는 디누의 목을 감싸 안고 머리와 뺨에 입을 맞췄어요.
그제야 디누가 저를 알아보더군요. 그리고는 몹시 지친 목소리로 말했어요.
‘와 줘서 고마워. 안 그래도 넷시가 제일 먼저 들어주었으면 했어. 하이든 소나타 다 끝냈어. 당장 무대에 올릴 수준으로!’
저는 조용히 그의 귀에 속삭였죠.
‘알아. 너무 훌륭한 연주야. 넌 날 두 번이나 울렸어. 이 악마 같으니라고. 처음엔 슬퍼서, 지금은 기뻐서. 하지만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 너무 뜨거워서 슬펐던 기억도 다 사라졌어. 사랑해. 너무 사랑해.’
그러자 디누가 눈을 지긋이 감고서 속삭였어요.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널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 네가 얼마나 슬펐는지 얼마나 화났는지 알았지만 이 곡을 완전히 끝내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어제 밤새 안 자고 연습했어. 이걸 빨리 끝내지 않으면 너한테 용서를 빌 수 없을 것 같아서. 넷시, 돌아와 줘서 기뻐.’
그 말이 완전히 나를 녹였어요. 이런 상황에서 ‘아니, 난 헤어지자고 말 하러 왔어.’ 라는 말을 할 수 있어요? 저는 디누를 완전히 용서했고, 이전보다 깊게 빠져 들었죠.
다음날 1라운드 연주회에서 청중과 심사위원 모두 디누에게 빠져 들었고, 디누는 압도적인 차이로 2라운드에 진출했어요. 난생 처음 보는 악보를 며칠 연습하고서 말이죠. 1년 넘게 작품 하나 찍어서 준비해 온 스물 대엿 살 먹은 피아니스트들도 툭툭 나가떨어지는 대회에서 말이죠.
2라운드는 완전히 디누를 위한 라운드였어요. 심사위원도, 현지 언론도, 청중들도 모두 이 미라클 보이가 또 무엇을 보여줄지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디누의 등장만 기다렸죠. 작년 루체른 콩쿠르에서 인상적인 쇼팽 연주로 입상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쇼팽을 선택할 거라 생각했는데, 디누는 슈만을 선택했어요.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특별상을 노리고 1라운드 모차르트, 2라운드 쇼팽을 선택했는데, 디누는 말은 안 했지만 일부러 모차르트 특별상, 쇼팽 특별상을 피해가는 것 같았어요.
다비드 동맹 모음곡 열 여덟 곡을 연달아 연주했죠. 아시겠지만 이 곡은 어둡고 격정적인 플로레스탄, 명랑하고 장난스러운 오이제비우스라는 자아분열적 표현이 필요한 곡이잖아요? 이게 정말 두 사람의 디누가 연주하는 것 같았어요. 청중들도 같이 자아분열을 느낄 정도였죠.
아유, 이걸 일일이 다 이야기 하다가는 끝도 없겠네요. 어쨌든 2라운드도 그렇게 압도적으로 마쳤고, 3라운드 때는 모차르트의 14번 협주곡을 연주했어요. 드디어 디누가 평소에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던 모차르트 연주를 들을 수 있게 되었죠. 선곡부터 독특하잖아요? 다른 참가자들은 보통 20번, 21번, 23번, 24번, 26번을 선택하는데, 세상에나 14번이라뇨? 도대체 누가 그걸 연주해요?”
“그건 놀랄 일도 아닙니다. 정우는 모차르트 소나타 열 아홉 곡과 협주곡 스물다섯 곡은 그냥 머릿속에 다 담아가지고 다니니까요. 악보 뿐 아니라 해석, 그리고 여러 명인들이 연주한 소리까지. 그러니까 악보가 아니라 여러 버전의 음반을 머릿속에 담아가지고 다니면서 필요하면 재생한다고 보면 됩니다.”
“디누에게 아직 놀랄 일이 남았다는 게 더 놀랍네요. 맞아요. 디누는 3라운드를 앞두고는 연습도 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취리히에 머물렀던 20일 중 가장 행복했던 3일을 보냈죠. 우리는 시내 관광도 하고 스프링글리에서 초콜렛도 사 먹고, 기차 타고 루체른도 다녀왔어요. 디누가 지난해 루체른 콩쿠르 때의 무용담을 털어놓고 싶어했거든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3라운드에 나섰는데, 디누가 연주를 마치자 청중들은 물론 심사위원 중의 몇 분까지 기립박수를 쳤어요. 심사 위원장이었던 볼프강 지히발 선생님은 ‘3악장에서는 일어나서 어깨춤을 추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라고 말씀하셨죠. 심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디누에게 모차르트 특별상을 주기로 결정했죠. 여기까지는 아주 잘 나가고 있죠?
문제는 이때부터였어요. 제가 베른에 가서 제 콩쿠르 1라운드 마치고 취리히로 돌아와 보니, 디누가 최종 결선 연주곡으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을 신청해 놓았단 말이죠.”
“정우는 1년 전부터 슈만 협주곡이랑 쇼팽 협주곡을 연습했어요.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연습하는 건 한 번도 못 봤어요. 1라운드에서 했던 짓을 결선에서 또 터뜨렸군요.”
“그렇긴 하지만, 이때는 당황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어요. 이미 디누에 대한 믿음이 생겼거든요. ‘나, 이거 한 번도 연주한 적 없어.’ 이렇게 말하는데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말이라 뭐 그렇지 싶었어요. 이유도 그때랑 똑 같이 황당했죠.”
아녜스가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흐뭇해 보이기도 한 미소를 띠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말없이 혼자 희로애락이 한꺼번에 버무려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 쉬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녜스의 머릿속에서 상영되고 있는 추억의 영상들을 어렵지 않게 추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즉시 그 영상들을 내 머릿속으로 옮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