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결국 내 결선은 망쳤어요.”
다시 중년의 아녜스가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3위 안에도 못 들었죠. 어차피 미우가 워낙 압도적이라 욕심 낼 상황도 아니었죠. 난 시상식 생략하고 짐 정리해서 바로 취리히로 갔어요. 디누가 걱정되었거든요. 디누가 원래 자기 아프고 힘든 거 말 안 하잖아요? 차이코프스키 3악장 망칠 때 분명 문제가 있었어요.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악기 연주하는 사람들은 ‘아 쟤 손가락 아프구나’ 하고 금방 알아요.”
“심각했어요?”
“오른손 약지랑 엄지가 퉁퉁 부어 있더군요. 연습할 때 이미 다쳤던 건데, 하루 이틀 스파 했다고 나을 리 없죠. 게다가 결선에선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압도할 정도로 두드려 대야 했으니 성할 턱이 있나요? 운동선수가 마취주사 맞고 결승전 뛴 셈인데, 후유증 심각하죠.
같이 병원에 갔는데, 다행히 최악은 아니었어요. 뼈는 문제없고, 피로가 누적되어 건초염과 약간의 인대 손상이 왔다고 했어요. 관절염이나 류마티즘 같은 거 걱정했거든요. 의사는 혹시 모르니 한 달 간은 피아노 전혀 치지 말고, 일 년 간 격렬한 음악이나 협주곡 같은 거 하지 말라더군요.”
“그걸 정우가 받아들이던가요? 건반에 손도 대지 말라는 건 정우한테는 숟가락 놓으라는 말인데?”
“물론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죠. 펄펄 뛰었어요. ‘일 년이나 연주하지 말라고? 나는 300년간 썩은 고기를 먹을 바에는 단 하루를 살아도 생생한 고기를 맛보겠어.’ 라며 푸슈킨까지 인용했다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생명보다 소중한 손가락인데 객기부리다 영영 못쓰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 결기를 눌렀죠.
우울한 저녁이었죠. 저는 우울한 거 못 견디잖아요? 그래서 기분 풀어보려고 환상적인 야경이 바라보이는 레스토랑에 갔어요. 디누는 턱시도 차림으로, 그리고 저는 눈에 확 띄는 드레스에 풀 메이크업까지 하고. 레스토랑 이름이 비안키인가 그랬을 거에요. 여기서 멀지 않아요.
취리히, 그리고 베른 콩쿠르를 마무리하는 우리만의 파티를 열었어요. 그리고 저의 베른 4위, 디누의 취리히 2위 입상을 축하했어요. 우리 나이에 그게 어디에요? 베른 4위라고 상금이 1000달러가 나왔는데, 안 나온 거보다 기분 나빴어요. 그래서 ‘에라 이걸 몽땅 털자.’ 하면서 값비싼 요리를 마구 시켜 먹었죠. 와인도 분위기 있게 마시고 싶었는데 저희가 어리다고 안 내놓길래 모스카토 스푸만테를 마셨어요.
그래도 술은 술이었나봐요.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기분이 좋아졌고, 마침내 우리는 낄낄 웃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한참 그렇게 놀고 있었는데 ‘오, 이거 참으로 보기 좋은 풍경이로군.’이라는 독일 억양 영어가 들렸어요. 지히발 선생님이 인자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죠. 전 톤할레에서 몇 차례 협연한 적 있어 잘 아는 사이였어요. 얼른 일어나서 인사했죠.
‘아녜스.’ 지히발 선생님이 반갑게 인사했어요. ‘갈수록 미인이 되는군요. 이러다 할리우드가 가로채 갈까봐 걱정이네요?’
지히발 선생님은 제가 취리히에서 디누와 함께 식사하는 걸 이상하게 보지 않았어요. 국제공항이 취리히에 있기 때문에 베른 콩쿠르 마친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취리히에 잔뜩 몰려와 있었으니까요.
그 분은 우리가 콩쿠르 끝난 뒷풀이를 이렇게 친밀한 모습으로 하고 있는 것이 흐뭇했나봐요. 인자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두 사람 다 결과가 마음에 안 들고 성에 안차겠지만, 두 사람 나이 합쳐봐야 서른인걸. 그냥 즐기세요. 그 꽃다운 시간을. 하하하. 참 보기 좋군요. 내 평생 이렇게 축복해주고 싶은 커플은 처음 봅니다.’
커플이라는 말에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듣기 싫지 않았어요. 그렇죠 뭐. 우리가 커플이 아니면 누가 커플인가요? 하지만 디누는 여전히 얼굴이 어두웠죠. 그 낌새를 알아챈 지히발 선생이 당장 물어보더군요.
‘디누, 병원에는 다녀왔지?’
‘물론입니다.’ 디누가 익숙한 듯 독일어로 대답했어요. ‘다행히 심각한 부상은 아니라고 합니다. 한 달 간 쉬고, 1년은 큰 곡 연주를 자제하라고 하네요.’
‘다행이군. 몇 년씩 피아노를 칠 수 없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만하길 고맙게 생각하게. 그래도 가볍고 작은 곡은 연주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네. 그렇긴 하지만.’
‘반주를 하게. 성에 안 차도 무대에 오를 수는 있을테니.’
‘네? 외람되지만 반주를 그렇게 쉽게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 미우 누나 반주자로도 계속 활동했습니다. 그건 결코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해 말게. 내가 반주를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니. 나도 지휘하기 전에는 피아노를 쳤고, 주로 반주자로 활동했으니까. 하지만 반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악곡 해석 능력과 앙상블 능력이지 피지컬은 아니지? 자네가 다친 것은 손가락이지 머리가 아니란 말일세. 곡 해석은 멀쩡하단 뜻이지.’
‘하지만 누나는 저하고 연주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앞으로 협주곡 위주로 연주할 거라면서. 저는 거기 반대하고 계속 같이 하자고 했는데, 아주 매몰차게 거절하더군요.’
‘그 얘기는 나도 알고 있네. 음. 나한테 한 가지 생각이 있는데.’ 그러더니 지히발 선생님이 갑자기 저를 보며 빙그레 물어보시는 거에요. ‘아녜스는 일 년에 연주회를 몇 회나 하죠?’
그게 왜 궁금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 대답했죠.
‘정해진 숫자는 없지만 50회는 넘어요.’
‘협연을 많이 하나요 독주를 많이 하나요?’
‘주로 협연을 해요. 독주는 별로 안 해요.’
‘내가 제안 하나 하지요. 협연을 절반으로 줄이고, 그 대신 나머지를 독주로 채우는 게 어때요? 디누가 반주하고. 디누는 미우와 연주를 많이 해 봤으니 바이올리니스트와 호흡 맞추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고, 또 아녜스 레파토리가 무겁거나 격렬하지는 않으니 디누에게 무리 안되고? 연주활동 안 하는 거 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네요. 그렇죠?’
아, 이게 바로 제가 디누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그런데 그 말을 지히발 선생님이 대신 해주셨으니 너무 고맙죠.
그런데 디누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어요. 누나가 맘에 걸렸겠죠. 그러자 선생님이 답답하다는 듯 아주 빠른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자네는 이 세계가 얼마나 냉정하고 변덕스러운지 아직 모를 걸세. 지금이야 천재 탄생이야 뭐야 하면서 자네를 주목하겠지. 하지만 자네 손가락 다친 게 알려지면 그 관심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갈 걸세.
손가락이 아파 솔로 활동하지 않는다, 이따위 솔직한 말 꺼낼 생각은 아예 하지 말게. 물론 사람들이 미우와 듀오 해체한다고 선언해 놓고 왜 다시 듀엣질이냐고 물어보겠지. 그런데 말일세.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 앞에서는 관대해져. 그만 아녜스와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같이 활동하기로 했다. 누나한테 무척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아무도 따지지 않을 걸세. 자네 아녜스를 사랑하나?’
그 분은 제가 독일어를 못 알아들을 줄 알고 마음 놓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너무 부끄러워 리마트 강에 몸을 던지고 싶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속으로 디누가 ‘예’라고 대답하기를 기다렸어요. 마침내 디누가 대답했죠.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대답은 아니었어요.
‘아녜스만 좋다면 같이 연주하겠어요.’
어째서 디누는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녜스만 좋다면...’ 여기에 다 함축되어 있는 건가요? 저는 또 다시 마음에 상처를 받았어요. 눈물이 또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눌렀죠. 하마터면 ‘디누와 같이 연주할 마음이 없어요.’라고 말할 뻔했죠.
그런데 디누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럴 수 없었어요. 너무 진지하고, 너무 기뻐 보였으니까요. 디누는 어떻게든 연주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고,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행복해하고 있었어요. 다시 깨달았죠. 디누의 연인은 음악이라는 것을.
그래서 ‘좋아요. 디누와 함께 연주하겠어요. 피아노 파트가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예쁘고 듣기 좋은 곡들로 선곡해서 투어 계획을 짤게요.’ 라고 대답했죠. 이렇게 말하자 제가 독일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할 줄 알고 이야기했던 두 사람의 얼굴이 난감해졌죠. 어쨌든 이야기가 잘 된 거잖아요? 하지만 디누는 뭔가 성에 차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물어봤죠.
‘이 계획이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디누가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그거 아세요? 디누는 정말 아니라고 말할 때는 꼭 고개도 같이 흔들거든요. 그냥 말로만 ‘아니’ 그러는 건 진심이 아니에요.
‘넷시가 같이 해 준다니 너무 기뻐. 문제는 그게 아니야. 옆에서 받쳐 주면서 편안하게 연주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거야. 하지만 그것만 하면 너무 심심할 것 같아. 뭔가 치열한 게 필요해. 내 머리가 계속 뜨겁게 달아올라 있을.’
‘그냥 쉬어. 편안히. 한 일 년 그렇게 살아도 되잖아?’
‘그냥 쉰다고? 나 더러 빈둥거리라는 거야?’
‘그 문제라면 이 늙은이가 대안을 하나 내어 놓도록 하지.’ 우리가 언쟁 벌일 기미를 보이자 지히발 선생님이 나섰어요. ‘신나게 연주하지 못해서 맺힌 에너지를 작곡과 지휘를 공부하면서 풀어보는 게 어떻겠나?’
‘작곡이랑 지휘라고요?’
디누의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래. 작곡이랑 지휘. 남이 쓴 작품만 연주하고, 남의 지휘에 따라 연주하고, 이거 자네 성품에 맞지 않을 성싶어서 하는 말일세. 어때 해 보겠나?’
‘네. 네.’ 디누가 갑자기 먹이를 앞에 두고 흥분한 강아지처럼 활짝 웃었죠.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고맙습니다 선생님.’
‘좋아. 그럼 내가 교재들을 한국에 있는 자네 집으로 보내겠네. 부지런히 공부하고 때때로 여기 취리히 톤할레로 성과물들을 보내주게. 그럼 내가 다시 피드백 해 주도록 하지.’
이렇게 디누는 스승 한 분을 얻었답니다. 지히발 선생님이 디누를 손자처럼 아꼈던 건 뭐 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 더 안 해도 되겠죠?”
“그럼요. 96년이었나? 런던 필하모닉으로 부임해 가시면서 스물여덟 밖에 안 되는 정우에게 톤할레 넘기려고 거의 억지를 쓰셔서 뉴스거리 만드셨잖아요? 브람스, 말러가 지휘했던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인데, 확실히 그건 좀 무리였죠.”
“그게 바로 1982년 8월에 시작된 인연이었답니다. 어쨌든 지히발 선생님은 다른 어르신들과 파티 하러 가고, 저와 디누는 취리히 구도시의 야경을 즐기며 리마트 강가를 걸었어요. 그리고 바로 여기, 이 자리에 와서 한국식으로 2차를 했죠. 카푸치노를 마시며. 지금 박사님 앉아 계신 바로 그 자리요. “
“그렇게 두 분이 같이 연주하게 되었군요?”
“네. 그렇게 아녜스&디누 듀오가 만들어졌답니다. 그리고 디누 손가락이 완전히 다 나아 철사처럼 단단해질 때까지 온 세계로 연주 여행을 다녔죠. 1년도 더. 행복한 시간이었죠. 하지만 나는 디누에게 듣고 싶었던 대답을 끝내 듣지 못했어요.”
“그 말씀은 믿기 어렵네요. 그 무렵 저도 두 분 같이 다니는 거 많이 봤는데, 두 분은 음. 이거 눈 앞에서 직접 말씀드리기 어색하네요.”
“아무데서나 키스하고 그랬던 거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그것도 보통 키스가 아니었죠? 그러면서 그 말을 하지 않았다고요?”
“그러게요. 우리는 늘 손을 꼭 잡고 다녔고, 눈만 마주치면 부둥켜 안고 키스 했지만, 디누는 한 번도 그 말을 하지 않았네요. 그렇다고 디누가 절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생각 안해요. 아니라도 상관없어요. 제가 디누를 사랑한다는 게 중요하니까. 디누가 어려움을 딛고 다시 설수 있게 힘을 보태야 한다, 이것만 생각했어요.”
나는 쮜리히까지 와서 아녜스와 시간을 보낸 보람을 확실하게 느꼈다. 이거야 말로 내가 찾고 있었던 정우의 숨은 이야기였다. 독주자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기 무섭게 아녜스와 다시 듀엣 활동을 했던, 그것도 진지하고 심각한 곡 보다는 가볍고 유희적인 곡들을 주로 연주함으로써 미우를 분노하게 했던 정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의 까닭.
미우나 유선이 악의적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심지어 지네트조차 의심하고 있었던 것과 달리 아녜스는 정우를 꼬드기지 않았고, 정우도 아녜스의 미모에 반해 길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아녜스는 오케스트라와 협연 스케줄을 절반 이상 취소하면서 정우의 재활을 도우며 스스로를 희생했다.
아녜스가 1년간 한국에 들어와 살았던 것도, 음악평론가들에게 신동에서 대가로 성장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악평을 들어가며 가벼운 곡 위주로 독주회 프로그램을 짰던 것도 모두 정우를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서서히 피아노 파트의 비중이 큰 곡으로 프로그램을 바꾸어 갔던 것이다.
나는 유유히 흘러가는 리마트 강의 잔물결을 바라보며 잔잔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강물에서 시선을 돌려 아녜스를 보았다.
아녜스도 불로불사는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잔물결 같은 주름이 군데군데 있었고, 흰머리까지 몇 가닥 눈에 띄었다. 아녜스는 정우의 푸른 요정이었다. 정우가 세상을 떠난 그날부터 늙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로맨틱한 뒷풀이를 마친 그들은 다음날 각자 자기 나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잠시 헤어졌다. 아녜스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정우는 베른에서 오는 누나를 기다렸다.
그런데 미우가 헨릭 셰링 문하에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정우 혼자 쓸쓸히 귀국했다. 그러나 그 쓸쓸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달 뒤 미국에서의 신변을 정리한 아녜스가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