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는 누구한테서 배울 수 있을까요?
심오한 사상과 깊이 있는 학문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베이컨, 칸트, 니체 같은 서양의 철학자들과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주자 같은 동양 철학자들의 책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철학뿐만 아니라 종교, 심리, 역사, 경제 같은 여러 분야의 수많은 석학들의 글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강의도 편안한 자세로 얼마든지 볼 수 있고요.
연중무휴 일 년 365일 지식을 검색하고 누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냉정한 사실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어렵습니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학문이라 책을 펼치면 심오한 잠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기 일쑤입니다. 머리는 맑아지는 듯하나 남는 게 없어 고민입니다.
유명한 책을 필사해 보기도 하고, 간추린 요약본을 읽기도 합니다. 철학자들의 대표적인 명언들도 함께 새기면서 읽은 흔적을 기억하려 합니다만 얼마 가지 않아 몽땅 잊어버리는 기억력 또한 어찌할 수 없는 듯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속담을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아이의 국어 실력도 키우고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도 기를 겸 해서 같이 문제를 내고 맞히기도 했는데 읽을수록 감탄이 나오는 속담이 많습니다.
책 읽는 습관은 물론 삶의 지혜와 세상 사는 이치도 속담을 읽으면서 터득합니다. 비단 속담뿐만은 아닙니다. 격언이나 명언을 제대로 알고 마음에 새겨도 사는 데 큰 힘이 될 거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물론 속담 중에는 시대에 뒤떨어져서 지금 상황과 맞지 않는 내용도 있고 차라리 폐기해 버리는 게 좋겠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일부 속담이나 격언들은 요즘 세태를 반영하며 자조 섞인 내용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라며 더 늦기 전에 실천할 것을 강조합니다. 요즘은 이 속담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다, 그러니 지금 바로 시작해라'라고 합니다. 진짜 늦었으니 세월을 더 허비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하라는 뜻입니다. 의미는 비슷한데 마음에 와 닿는 정도는 확실히 다릅니다.
'피할 수 없으며 즐겨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을 정도면 진짜 힘든 고통일 텐데 즐길 만한 배포를 가지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로 대신합니다. ‘즐길 수 없다면 무조건 피하라’라고. 즐길 수 없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죠. 전쟁도 피하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듯이 말입니다.
‘아침형 인간’이 한창 유행일 때 대표적인 명언이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가장 먼저 차지한다’라는 유명 외국 소설가의 말입니다. 그러나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빨리 잡아먹힌다’라며 아침형 인간이 꼭 좋은 것만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며 일단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 속담도 ‘시작은 시작일 뿐이다’라며 냉정하게 현 상황을 표현합니다.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와 닿습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면서 그 뜻의 가치가 변하지 않고 여전히 귀한 명언도 많습니다.
‘지혜는 듣는대서 오고 후회는 말하는 데서 온다’. 인생 사는 동안 수십 번도 경험하는 백번 천 번 옳은 말입니다. 다들 말만 줄이고 조심해도 후회할 일은 엄청 줄어들지 않나 싶습니다.
‘건강을 이기는 미(美)는 없다’. 건강하기 위해 지금도 살을 빼고 땀 흘리며 운동을 하지 않나요? 성공하고 행복하면 무엇합니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거니 말입니다.
‘오늘이라는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라고 합니다. 주위에 평범한 사람들이 이 말을 하면 귀담아듣지도 않으면서 단테가 이야기했다고 하니 책에 실립니다.
부지런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은 침체되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는 뜻의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속담을 되새겨봅니다.
이를 영어로 표현한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는 실제 서양 속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는 곳, 직장을 자주 옮기는 사람은 돈, 재산, 친구를 모으기 힘들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같은 속담인데 나라마다 뜻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삶이 힘들 때 지침이 되어주는 철학자의 명언도 추가해봅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끝내 나를 강하게 만들리라’. 니체의 말입니다. 시련의 한복판을 지나는 힘겨운 이들에게 힘이 되는 유명한 명언입니다.
이런 시련이 언제 끝날까, 끝은 있을까 낙심할 때 우리 고유의 속담이 위로를 줍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니체의 명언보다 스케일도 크고 성공까지 안겨주는 말이라 더 정이 갑니다.
괜히 자존감이 바닥을 헤맬 때도 속담을 소환시킵니다.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곧게 잘 자란 나무는 여러 용도로 베어지지만 구불구불하게 자라 쓸모가 없는 나무는 목숨을 건지고 선산을 이룬다는 비유입니다. 못난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있으니 기죽지 말라는 뜻입니다. 땅에 떨어졌던 자존감을 세워주는 속담입니다.
'홍두깨에 꽃이 핀다'라는 속담 들어보셨나요? 다듬이질을 할 때 쓰는 나무 방망이를 홍두깨라고 합니다. 이미 죽은 나무인데 꽃이 피다니. 세상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게 좋은 일도 일어날 수 있으니 용기를 가지라는 속담입니다.
여러 속담과 격언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다'라는 말입니다.
읽기 난해한 책을 소화는커녕 한두 페이지도 넘기기 힘든 나 자신이 한심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 서양이든 동양이든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여 실생활에 실천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요?
대학에서 나름 철학을 전공한 친구 녀석에게 철학이 무엇인지 질문을 했습니다. 친구는 먹고사는 일로 바빠 까마득히 잊은 지 오래됐다며 술이나 마시자고 하더군요. 골치 아픈 철학을 논하느니 술 한 잔에 세상 시름을 날리는 게 낫겠다고 하자 그게 철학이라고 합니다.
철학이 인생, 세계에 관한 학문이라고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니 어렵고 두꺼운 책에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 줄 격언이 나에게 도움이 되고 용기를 준다면 그 어떤 책보다 가치 있습니다.
한 줄 속담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어떤 철학보다 귀중하고 유용합니다.
오늘도 부지런히 하루를 살아갑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계속 굴러야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습니다.
사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사진출처 : 네이버 블로그 SmartL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