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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Apr 29. 2022

삶의 밸런스를 잃지않는 연륜, 아름답게 쌓고 계십니까?

 때가 되면 어김없이 먹는 나이, 막연하지만 이런 기대와 추측을 불러오곤 합니다.

 '스무 살에는 내 인생을 살 거야',

 '서른이 되면 멋진 모습이겠지',

 '나이 마흔이면 삶이 안정되어 있을 거야',

 '쉰 살에는 걱정 근심이 사라지겠지',

 '환갑이 되면 삶을 통달하지 않을까?'

 하지만 막상 그때가 되면 그러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무언가 부족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람이나 동식물이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를 일컫는 나이. 한자어로는 연령(年齡) 존댓말로 연세, 춘추라고 칭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연륜도 쌓아야 한다고 합니다. 부족한 느낌을 지우려면 말이죠.  




 바쁜 와중에 건강에 신경 쓰고 피부 관리도 잘해 왔습니다. 꼰대 소리 안 들으려고 요즘 애들이 쓰는 말도 배웠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젊게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욕심을 조금 보태서 여느 젊은이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다고 자신만만했는데 '젊은 양반'은 고사하고 아저씨, 아줌마라고 불리는 건 당연지사, 점잖은 표현으로 어르신까지. 최대한 늦게 듣고 싶었던 호칭을 모두가 당연하게 부르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어릴 때는 '하지 마, 안 돼'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배움이 끝나지 않아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외치면 어른들이 뭐라고 하죠,

 "네깟 나이에 뭘 안다고!"

 질풍노도를 달리면서 얼른 나이 먹고 어른이 되고 싶어 합니다. 


 드디어 내 인생은 나의 것이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며 인생을 멋지게 살려고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가정도 꾸렸습니다. 나이를 잊고 살아갈 정도로요.

 아이가 태어난 이후는 더 그렇습니다. 내 나이보다는 아이 나이만 생각합니다. 지금 내 아이는 '36개월이다', '미운 일곱 살이다' 그저 귀여워하면서 말이죠. 그러다 어느 날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면 '이 녀석이 벌써 이렇게나 컸어?'라며 놀랍니다만 정작 내 나이는 어떻게 변해 갔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오면 '내가 올해 몇이더라?' 헷갈려합니다. 


 젊었을 때는 나이 때문에 못했는데 나이가 들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나이가 걸려 한숨을 짓곤 합니다.

 '이 나이에 뭘 할 수 있겠어'라고 하면서요.

 나이가 적을 때는 나이가 들면 하겠다고, 나이가 들면 이 나이에 무슨. 나이 때문에 망설이다 세월만 보냅니다. 어쩜 나이는 모든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어 커다란 벽으로 가로막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학문에 뜻을 둔다는 15세 지학(志學), 갓을 쓴다는 약관(弱冠) 20세를 지나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30세 이립(而立),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40세 불혹(不惑), 하늘의 명을 깨닫는 50세 지천명(知天命),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다는 60세 이순(耳順), 마음대로 행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칠순 종심(從心)까지 공자가 언급한 나이입니다.

 지금도 수없이 인용되는 이 나이는 겪기 전에는 이해하기 힘들고 그 나이가 되면 이해는 되지만 실천하기가 무척 힘들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고 합니다. 


 스무 살이 되면, 서른이 되면, 마흔이 되면, 환갑이 되면 저마다 꿈꾸고 기대한 세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나이를 먹고 지난날을 돌아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은 게 태반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성인이 되면 공자님까진 아니어도 나름 현명하고 이치를 많이 깨달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학문에 뜻을 두기보다는 엉뚱한 생각에 빠지고 때론 방황했습니다. 마음을 확고히 세운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아직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그 화를 진정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금연, 금주,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가도 담배 한 모금, 술 한 잔, 딱 한 입만의 유혹에 오늘도 흔들립니다. 세상은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하늘의 명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세상만사를 이해하기보다는 고집불통일 때가 많으니 이번 생에는 나이에 걸맞은 삶은 물 건너간 걸까요? 


 나이 들어 몸은 예전만 못하지만 '마음만은 20대, 청춘이야!'라고 하니까 옆에 있는 친구가 한 마디 건넵니다.

 "마음도 올드 한쪽으로 가는 그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라고요.

 너무 마음만 앞서가면 자칫 균형이 맞지 않아 넘어질 수 있답니다. 나이 들수록 삶의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말이죠.

 나이가 들어도 더 많이 채우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돈을 비롯한 물질적 욕심은 물론이고 지위나 명예에 집착합니다. '비워야 하는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지만 마음과 몸은 따로 놉니다.  




 나무의 줄기나 가지를 가로로 자른 면에 나타나는 둥근 무늬는 1년마다 하나씩 생기는 나이테로 그 나무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의 줄무늬나 비늘, 귓돌, 척추뼈에도 있어 물고기의 나이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해 동안 쌓은 경험으로 숙련된 정도를 의미하는 이것을 '연륜'이라고 합니다. 


 나이테는 오래 살았다고 얻어지는 주름살이 아닙니다. 세파에 흔들려도 때가 되면 비우고 남은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주는 내면의 힘이 나이테가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사로이 집착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루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연륜이라고 부릅니다. 


 가득 차면 기울고 다시 차오르는 달, 때가 되면 비우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자연의 이치를 보며 세상사의 참뜻을 깨닫곤 합니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처럼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 탐욕은 버리고 영혼은 살찌우는 지혜를 말이죠. 


 비우고 나누지 못한 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다음 해에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채우려고 혈안이 될수록 삶의 균형은 무너집니다.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루어 흔들리지 않는 사람, 비우고 채우는 삶의 밸런스를 잃지 않는 사람, 이런 연륜 있는 사람이 아름다운 삶일 테죠. 


삶의 밸런스를 잃지 않는 연륜, 오늘도 아름답게 쌓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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