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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Apr 02. 2021

외로움, 진짜 사람 친구가 그립다.

 SNS에서 소통 가능한 이들이 누가 얼마나 있는지 헤아려 본다.

나와 연을 맺은 수십 명의 1촌들,

차곡차곡 쌓인 수백 명의 친구들,

서로 이웃을 하자며 주고받는 수천 명의 이웃들.

SNS 화면 한가운데에 1촌 000명, 친구 000명, 이웃 000명이라고 적혀 있지만 단 한 번도 내 손으로 세어본 적은 없다.


현실에선 많은 사람들과 옷깃을 스친다.

커피 한 잔 마신 적 없이 수년 째 인사만 나눈 직장 내 다른 부서 직원,

'놀러 한 번 오세요' 인사하지만 한 번도 놀러 간 적 없는 옆집 이웃,

같은 단지에 살면서 안면만 있는 여러 이웃들,

'꼭 연락 할게' 아쉽게 헤어져도 두 번 다시 연락이 없는 친구,

'다음에 식사 한번 합시다'라고 말하지만 실제 밥 한번 먹은 적 없는 지인.


고된 세상살이에 지친 심신을 달래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

아무런 부담 없이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있는지 떠올려본다.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쭉 훑어본다.

그래도 없다.

 



20년 가까이 학교를 다니고, 학원을 오가며 친구로 선후배로 만난 수많은 학우들.

2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호형호제하며 친한 동료로, 직장 선후배로 지낸 많고 많은 사람들.

졸업 후에도 지금까지 연락이 닿는 친구는 열 손가락도 되지 않고 업무 이외의 만남을 갖는 동료 역시 몇몇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직장을 떠나는 순간 명맥을 유지하던 관계는 끊어집니다.

내가 편협하게 세상을 살아온 건지, 대인관계에 소홀히 한 건지... 사람이 답이고, 남는 건 사람뿐이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껏 잘못 산 건 아닌가 의구심마저 듭니다.


경쟁사회에 태어나 의도와 상관없이 경쟁 레이스에 내몰렸고 경쟁을 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을 오늘도 살아갑니다. 다들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전부이다 보니 부모 형제들도 명절 때나 다들 모일 정도로 바쁘게들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앞서 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묻어는 가야 인생을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인정을 받습니다.

한 문장이라도 더 많이 외워야만 앞서 갈 수 있었고, 한 문제라도 더 맞혀야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한 건이라도 더 많이 따와야 버틸 수 있고, 한 개라도 더 많이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시대의 변하지 않은 생존 법칙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꼭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을까’,

 ‘지금까지 뭐하며 살았나?’,

 ‘지나고 나면 별일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세상이 무너진 듯이 아파했을까?’

 ‘무엇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을까?’

 살아온 나날에 회한이 듭니다.




 친구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받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납니다. 보자마자 반가워 와락 끌어안는 친구도 있고 몇십 년 만에 보는 친구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시절 함께 보낸 사실이 있는 것만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으로 동질감과 친밀감이 절로 생깁니다.

 뭐가 급하다고 백세 시대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친구의 부음을 듣습니다. 아직 인생이 뭔지도,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떠나간 친구를 보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사는 게 뭔지 허탈감이 몰려오고 인생 허무함을 실감합니다.

 그럼에도 내일이 되면 다시 경쟁 레이스에 올라탑니다. 허탈감과 허무함은 잊히고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입니다. 지나고 나면 또 별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지금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입니다. 나만 경쟁에서 빠진다는 건 경쟁사회에서 스스로 낙오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요.   


  마음이 가는 대로 살고 싶지만 조직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속박되고, 세월이 주는 나이만 먹으며 몸과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 갑니다.

 시시각각 돌변하는 경제 상황은 끊임없이 먹고사는 기본적인 생존을 위협합니다. 수시로 인생의 긴장과 허무가 번갈아 밀려옵니다.  

속내를 털어놓다가 자칫 약점만 잡히게 되고 사심 없는 호의를 베풀다 보면 어느새 호구 취급을 당합니다. 어렵게 내보인 진심은 왜곡되어 꼴사나운 가식으로 둔갑합니다.

 

 혼자라서 외롭고 험한 세상이 문득 무섭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사는 게 허무하고 따뜻한 정이 그리워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워서 만난 사람이지만 도리어 상처를 받고 열등감을 느껴 도로 혼자 있고 싶어 집니다.

 남는 건 사람뿐이라고 했는데 아픔을 주는 것 역시 사람뿐입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아 외롭고 누구를 만나더라도 결국에는 외로운 존재로 살아갑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했던 어느 시인의 싯구가 가슴을 여밉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했던가요. 그래서 삶이 짙어갈수록 외로워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1촌을 맺은 SNS 계정은 잠이 든 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깨워주는 1촌은 아무도 없습니다. 친구는 많아도, '서로 이웃'을 하자는 요청이 쇄도해도 서로를 터놓고 마음 편히 밥 한 끼 먹을 친구도, 서로 이웃도 있을 리 만무합니다.  

 살면 살수록 스쳐 지나가는 사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심금을 나누는 깊은 관계는 가뭄에 어쩌다 나는 콩보다 적은 세상인가 봅니다.

 

커피 한 잔에 안면을 트고

밥 한 끼에 이야기를 나누고

술 한 잔에 가슴을 열고 싶습니다.

부담과 가식이 필요 없는

실제 사람, 진짜 친구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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