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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Feb 11. 2021

학습된 무력감 벗어나기

 태어난 지 1달도 되지 않는 어린 코끼리, 엄마 젖을 떼자마자 낯선 곳에 홀로 남겨졌다. 여기가 어딘지 무서워 잔뜩 겁에 질려 있다. 얼른 엄마 곁으로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가느다란 연약한 발목에 칭칭 감겨 있는 두꺼운 쇠사슬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마다 무서움은 배가 된다. 도망치고 싶어 발버둥을 쳐보지만 커다란 기둥에 묶여 있는 쇠사슬은 요지부동, 끊어지지 않는다. 벗어나려고 움직일 때마다 쇠사슬이 발목을 파고든다. 패인 발목에서 피가 난다. 따갑고 찌르는 통증으로 다리를 절뚝거린다. 몇 날 며칠 동안 피 흘리며 쇠사슬과 싸운다. 사람이 먹이를 갖다 주지 않았다면 굶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피가 나는 발목에 아픈 고통까지, 코끼리는 생각한다.

 '내 힘으로는 안되는가 보다'

 '밥 주는 거 먹고 안 아프면 다행이지'

 '그래, 차라리 가만히나 있었으면 아프지나 않지'

 발목에 묶인 쇠사슬이 가느다란 밧줄로 바뀌어도, 어린 코끼리가 덩치가 산만한 어른 코끼리가 되어도 코끼리는 줄을 끊고 자유를 찾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코끼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신세한탄을 한다.

 '이 줄만 없다면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을 텐데…'


 높이뛰기 천재로 태어난 벼룩 한 마리. 바닥에서 천정까지 뛰는 것쯤은 땅 짚고 헤엄치기다. 세상에서 제자리 뛰는 걸로 벼룩을 이길 동물이 있으면 나와보라며 기세 등등하다.

 어느 날 벼룩이 병 속에 갇혔다. 뚜껑은 닫혀 있고 벼룩은 병 속에 홀로 남았다. 답답하고 갑갑한 세상 속을 벗어나려고 뛰기 시작한다. 심호흡을 하며 가뿐하게 점프~ 그리고 쿵! 쿵! 쿵! 수백, 수천 번을 뛰어도 돌아오는 건 머리가 깨질듯한 아픔뿐이다. 기껏해야 몇십 센티 밖에 되지 않는데도 뛰는 게 점점 두려워진다.

 '나는 안 되는가 보다. 너무 아프다.'

 '차라리 안 아픈 게 낫지'

 병뚜껑이 열리고 살짝만 뛰어도 나갈 수 있는데도 병 높이 이상은 뛰지 않는다.

 뛰더라도 늘 뚜껑까지만, 머리가 부딪히지 않을 높이만 뛴다.

 '뛰어봤자 벼룩이지'라며 온갖 비웃음을 받는다.

 병 속에 갇힌 벼룩이 바깥세상을 보며 중얼거린다.

 '이 병 속에서만 벗어나면 어디든 높이 뛰어갈 텐데…'




 잠재 능력은 충분한데도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안 돼'라며 스스로 한계 지은 사람들에게 자주 인용되는 보기들입니다.

 이른바 '학습된 무력감'입니다.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힘든 일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후에는 실제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자포자기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피할 수 없는 혐오 자극에 대한 노출이 학습된 무기력을 낳고 이는 우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비단 코끼리나 벼룩 같은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나타나는 심리현상입니다.


 어릴 때부터 내몰린 경쟁사회에서 듣는 말은 온통 살벌한 이야기들입니다.

 '너는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없니?'

 '너는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니?'

 '00 좀 봐라. 얼마나 야무지게 알아서 척척 하니?'

 '대체 넌 뭐가 되려고 이 모양이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

 내 머릿속에 나는 쓸모없고 되는 일이 없는 놈이라고 각인됩니다.  


 어린 코끼리가 쇠사슬을 풀기 위해 오랫동안 처절한 고통을 겪습니다. 몸부림칠 때마다 발목에는 피가 나고 극심한 통증으로 밤마다 울었습니다. 코끼리는 발목에 묶인 줄을 볼 때마다 피가 나는 고통이 떠오릅니다. 여문 발목이 절로 아파옵니다. 두 번 다시 피가 나는 꼴은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갑갑한 병 속을 탈출하기 위해 벼룩은 수천, 수만 번을 뛰었습니다. 뛸 때마다 병뚜껑에 부딪히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뚜껑이 부서져라 있는 힘껏 뛰어도 보았지만 남는 건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뿐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병뚜껑만 봐도 겁이 납니다. 뚜껑만 봐도 머리가 아파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나, 나이 들어서도 무수한 실패나 심리적 외상 경험을 겪으며 '나는 안 돼'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습니다. 내 행동이나 노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여깁니다. 실수와 실패를 하며 비난을 듣고 고통 속에 내몰려 있다 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여건이 되어도 시도해보기도 전에 못할 거라고 단정 짓고 포기해버립니다.

 즉, 내 의지와 노력이 아무 소용없는 세상이라는 사고가 인생을 지배합니다.  




 물을 무서워하는 개 한 마리가 물 앞에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능수능란한 수영 실력이 있음에도 물에만 들어가면 도망치듯 나옵니다. 억지로 집어넣어본들 금세 물밖로 뛰쳐나옵니다. 물과 관련된 크나큰 심리적 아픔이 있었나 봅니다.

 이 개를 입양한 주인이 개를 꼭 안고 물안으로 천천히 들어갑니다. 벌벌 떠는 개가 몸부림을 칩니다. 주인 품을 벗어나 급히 밖으로 나가고, 그럼 다시 주인이 안고 들어가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조금씩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혼자 밖으로 나갑니다. 주인이 잘했다고 칭찬을 하며 꼬옥 안아줍니다. 드디어 물을 그토록 무서워하던 개가 물속에서 자유로이 헤엄을 칩니다.

 코끼리를 쓰다듬으며 함께 한걸음 나아가면 발목을 잡은 밧줄은 쉽게 끊깁니다.

 머리를 부딪쳤던 병보다 더 낮은 병에 넣어두면 벼룩은 가볍게 병을 탈출합니다.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자포자기한 상황에서 '할 수 있다!' '넌 충분히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백 마디 천 마디 말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몇 마디 말로 극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나 힘들어 하지 않았을 거니까요. 혼자 스스로 헤쳐나가기엔 심신이 지치고 아파 역부족입니다.

 쉽고 작은 과정부터 성취해 나가는 것이 시작입니다. 쉬운 성취를 얻으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해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며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 좋은 방법입니다.

 잘할 수 있다는 백 마디 말보다 함께 행동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스스로도 부정적인 생각을 논리적인 방식으로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노력도 꾸준히 하면서 말이죠.  

 작은 성공이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게 하고 자신감이 쌓여 자존감을 올리면 움츠렸던 잠재 능력이 빛을 발하게 될 거고요, 보다 큰 성공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에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한계 지어버린 것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넘을 수 없는 벽이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한계를 바라봅니다.

 한계를 벗어날 가장 쉬운 방법부터 찾아봅니다.

 이전에는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리곤 한계를 허물기 위한 한 걸음부터 내디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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