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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Apr 06. 2022

누가 그래? 둘째 육아가 더 쉽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한번 해봤으니 두 번째는 좀 쉬울 것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절대로 아니다. 둘째는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나도 한 때는 육아에 관련에선 경력직이라 생각했다. 첫째를 키워봤으니까… 나름 자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재가 되어 사라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를 들면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쳐서 다시 문창과를 재입학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나는 대학을 한번 다녀봤으니 두 번째는 쉬울꺼야.’ 라고 생각하는 똥멍청이는 없지 않겠는가?? 기계공은 기계공이고, 문창은 문창이다!!! 첫째와 둘째의 갭은 딱 그 정도다.


제목 : 세탁기보다 키가 작은 우리 엄마

나는 공대 출신 엄마로서 자존심(?)을 걸고 우리 아이들의 수학 학습을 맡고 있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말한다.


 “어우, 내 새끼는 절대 못 가르쳐.”

 “차라리 돈 벌어서 그 돈으로 학원 보내겠어요.”


안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저 말은 남의 새끼도 안 가르쳐봤기에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다. 남의 새끼를 가르칠 때라고 빡침이 덜 하지는 않다. 다만 티를 못 낼 뿐이지.


수학 과외 경력이 다분했던 나로서는 내 새끼가 더 편했다. 적어도 학부모 눈치 볼일은 없지 않은가. 성적이 좀 안 올라도, 내가 좀 화를 내더라도 … 내 선에서 끝난다. 그래서 더 편했다.


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도통이에게 수학을 가르치다 의외로 잘하길래 칭찬을 해줬다.


 “우리 도통이 정말 잘하네. 집중력도 좋고, 이해도 빠르고, 성실하고… 엄마는 도통이 가르치는 거 너무 편하고 좋아.”


그랬더니 그 말을 들은 막냉이가 지나가며 말했다.


“엄마? 나는 형아처럼 쉽지만은 않을 거야!“


으흥?!? 너 방금 뭐라고 했니?


그렇게 놈은 무시무시한 선전포고를 던지듯 날렸고, 일 년 후…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숙제라는 것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놈에게 수학 익힘책을 풀게 하기를 원하셨으며, 심지어는 채점까지 하기를 바라고 계셨다?!?


좌 도통 우 막냉

하여 놈들을 나란히 앉히고 한놈은 수학 문제집을 풀게 했고, 한 놈은 수학 숙제를 하게 했다.

붙여놓으니 둘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도통 : 막냉아, 내가 모르는 거 알려줄까?

막냉 : 아니야!!! 숙제는 스스로 하는 거야!!!

         형아는 절대로 알려주지 마!!!

도통 : ……

막냉 : 나도 형아 절대로 안 알려줄 거야!!!!

도통 : 어… 너는 못 알려주는 거고.

막냉 : 맞아!!! 나는 모르니까 못 알려주지!

          그러니까 절대 안 알려줄 거야!!!


그렇게 둘은 한참을 낄낄거리더니 조용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참 뒤, 막냉이가 결과물을 가져왔다. 이것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숙제는 스스로 하는거라며…

왓?!? 왜때문에 1번부터 백지인 것인지!?!? 그렇다고 화내면 안 된다. 녀석은 이제 입학한 신입이 아닌가. 놈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막냉아, 너 이거 왜 (1번부터) 안 풀었어?”


그랬더니 놈에게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너무 어려워!!!!”


어… 엄마가 진짜로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그러니까 어디가 어느 부분이 어떻게 도대체 왜 어려운 건데?!?!!


 “새가 너무 많아.”


하… 젠장… 이 노랑 바지들은 어째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는 것이냐고 앙탈을 부리는 놈을 겨우 진정시키고 가까스로 1번을 해결했다.


그리고 2번으로 넘어갔는데…


심지어는 지운 흔적도 있으며, 그것도 틀렸다.

으르흥?? 이건 뭐지? 왜 이따위인 거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어… 막냉아. 이건 () 왜 틀린 거지?”

 “응!! 엄마. 틀린 거 아니야!!“


틀린 게 아니면 뭔데??


“나는 그냥 제일 쉬운 길을 간 거야!!!”


그니까 뭐가… 어디가… 어떻게… 왜…


 “왜냐면 직선이 제일 쉽잖아!”


아하?! 녀석의 자신 있는 대답에 비로소 깨달았다.

도통이의 난이도가 지리산이었다면, 너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쯤 되겠구나. 아닌가, 백두산인가. 애초에 등반 자체가 불가능한… 하… 화내면 안 된다.


 “막냉아… 고양이를 세어봐.”

 “고양이를 왜 세?”

 “…… 옆에 있잖아. (새끼야).”

 “옆에 있다고 다 세면 수학 문제는 언제 풀어?”


후… 하… 심호흡하자.


“막냉아. 수학 문제에 그림이나 숫자가 나오면 반드시 사용되어야 하는 거야. 만약에 사용되지 않았는데도 답이 나왔다?? 그럼 그건 틀린 거야.”


 “그치만 엄마…. 문제에서 고양이를 세라고 안 했잖아. 알맞은 수에 O표를 하고 이어 보라고만했지. 나는 가장 가까운 숫자가 가장 알맞은 수라고 생각해. 내 생각도 존중해 줘. “


우와… ㅆㅂ… 감동했다.

분명 상대가 틀렸는데, 어떻게 틀렸는지를 모르겠다. 비논리로 똘똘 뭉쳤는데, 도저히 반박을 못 하겠다. 비상식적인 것도 이쯤 되면 능력이다. 아… 말싸움은 이렇게 하는 건가보다. 누가 나 좀 도와줘요.


그리고 그다음 문제인 3번도 백지였으며,


하… 진심 싹다 그어버리고 싶다…

4번도 또 이 모양이었다.

놈은 문제에 나온 O에만 연필로 색을 칠해놓은 것이다. 하… 선생님, 그냥 싹 다 그어버리고 제출해도 될까요.


차마 수학익힘책을 찢어발길 수가 없어서 내 머리를 쥐어뜯었다. 목구멍에선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도통이가 지나가면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엄마… 처음엔 다 그래.”


롸?! 너 방금 뭐라고 했니?

하… 내가 살다 살다… 너한테 위로도 받는구나… 기특했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뻗는 찰나, 녀석이 말했다.


 “엄마, 나 처음 가르칠 때를 생각해 봐. 그때는 힘 조절 못 해서 연필 부러뜨렸잖아.”


아!! 또 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했다고… 내가… 그랬니???


 “그래도 지금은 아무것도 안 부수네. 엄마도 많이 발전한 거야. 잘하고 있어.”


놈은 다시 내 등을 토닥토닥하더니 사라졌다.


야… 고맙다. 내 새끼야.

 


나의 세렝게티(좌) 올림푸스(우) 4년전
덧붙_

첫째가 다큐라면, 둘째는 SF입니다.
첫째가 짐승이라면, 둘째는 외계인입니다.
첫째가 세렝게티라면, 둘째는 올림푸스입니다.

첫째와 둘째는 그냥 다른 생명체이고, 다른 종이며, 다른 장르입니다.

나는 그저 전에는 애 하나 키우는 초짜였으며, 지금은 애 둘 키우는 초짜일 뿐이죠.

그리고 내 새끼들은 지 엄마가 초짜라는 것을 모릅니다. 나도 몰랐으니까요.
그저 엄마가 최고라고 합니다.

나를 너희들의 엄마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나의 세렝게티, 올림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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