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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들이 말하는 삶의 목적 4가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가장 흔한 철학적 질문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이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폭력과 권위의 시대가 저물고 다양성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삶의 목적을 추구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개인의 삶을 규정짓던 외부의 힘에서 벗어나 개인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그려나갈 수 있다는 건 분명 다양성의 시대가 준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는 일이기도 했죠.


내 삶의 목적을 찾아내는 건 평생에 걸쳐 고민해도 쉽게 답을 구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빠질 수밖에 없는 이 심각한 고민을 마주했을 때 역사 속 사상가들의 조언을 듣는다면 유용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서 역사 속 위대한 사상가 4명이 말하는 4가지 삶의 목적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이 4명의 사상가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신다면 나의 삶의 목적을 묻는 그 질문의 무게가 조금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 제일 먼저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가 말하는 삶의 목적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말하는 삶의 목적 

"삶에서 찬란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걸로 됐다"




키케로(라틴어: Marcus Tullius Cicero)는 기원전 106년 1월 3일 이탈리아 아르피눔에서 태어나 기원전 43년 12월 7일(율리우스력) 포르미아에서 사망한 로마의


거지든, 재벌이든, 왕이든, 노예든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운명으로 주어진 삶의 유한함은 언제나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데요.


그러나 키케로는 "인생이 아무리 짧다고 해도 충분히 정직하고 품위 있게 살 만큼의 기간은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얼마나 길게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순간이라도 의미 있게 살았냐가 중요하다고 보았죠.


키케로는 멋진 비유를 들어서 자신의 바라보는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연극이 끝날 때까지 배우가 무대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
만약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박수를 받는다면,
그 배우는 충분히 잘한 것이다.



삶의 유한함에 굴복하지 않고 하루하루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키케로가 말하는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내 삶의 모든 순간이 찬란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삶 속에서 모든 순간이 즐겁고 행복할 순 없습니다.


삶의 다채로움에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절망이 섞여있고 늙음과 죽음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매일매일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은 작은 불행에도 자신의 인생을 비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그 불행만을 바라보며 "왜 나의 삶은 행복하지 않느냐!"라고 불평하겠죠.


하지만 키케로처럼 인생에서 찬란하게 빛났던 순간을 고이 간직할 줄 안다면 어떤 불행 앞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불행한 인생이라 말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나에게 불행이 닥쳤다 하더라도 내 인생이 찬란하게 꽃피웠던 그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키케로의 말은 기쁨과 노여움 그리고 슬픔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삶에서 우리가 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매일 불행한 하루가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 이 고대 사상가의 말을 되새기며 내 삶에서 빛났던 순간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이것만으로도 오늘 나의 하루는 조금 더 즐거워질 수 있고, 더 나아가서 내 삶에서 또 하나의 찬란한 순간을 만들 원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토니 모리슨이 말하는 삶의 목적 

"보편적인 건 중요하지 않다"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1931년 2월 18일 ~ 2019년 8월 5일) 199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작가이며 에디터이자 교수


토니 모리슨은 일생 동안 흑인 인권을 위해서, 그중에서도 흑인 여성 인권을 위해 저술 활동을 이어간 작가입니다.


그녀는 사회 비판적 소설을 쓰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뛰어난 필력을 가진 작가였고, 흑인 여성 중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였죠.


하지만 토니 모리슨은 흑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소설만을 썼기에 "그녀의 글은 보편적 가치를 담보하지 못한다"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내게 있어 보편성이라는 말은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다, 내 관점에는 흑인들밖에 없다. 내가 말하는 '사람들'이란 흑인들을 의미한다"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그녀는 보편성을 거부하고 오히려 자신의 보는 세계를 좁혀감으로써 삶의 목적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죠.


삶의 목적을 고민할 때 우리는 보편성이라는 기준에 얽매입니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부끄럽거나 비판받을 만한 것을 내 삶의 목적으로 삼아 살아가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누구나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받을 수 있는 삶의 목적을 찾고자 하지만 토니 모리슨의 삶을 본다면 보편성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 역시 숭고한 삶의 목적일 수 있습니다.


"보편적이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거나 우월성을 담보하지 않으니까요.


그녀가 남긴 삶의 흔적을 읽으며 저는 군대에서 만났던 한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그 친구는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라는 저의 질문에 "나는 그냥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어머니 모시면서 무탈하게 사는 게 꿈이야"라고 덤덤하게 답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좋은 대학에 다니면서도 돈에 관심도 없고 무언가 해보겠다는 야심도 없는 그 친구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삶은 보통의 20대 초반의 청년이 가진 삶의 목표와는 너무나 거리고 멀었고 또 소박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시간 흐른 지금, 저는 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든 덤덤하게 내가 원하는 삶을 말할 수 있는 자기 확신을 갖는 게 얼마나 힘들 일인지를 몸소 깨닫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있다면, 더 나아가 사회적인 시선에 굴하지 않고 내 삶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꽉 채워진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보편적인 '인간 삶의 목적'이 아니라 '내 삶의 목적'이니까요.




데이비드 애튼버러가 말하는 삶의 목적 

인간은 지구의 주인공이 아니다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영어: Sir David Frederick Attenborough, 1926년 5월 8일 ~ )은 영국의 동물학자, 방송인이자 환경보호론자


인간은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살아가며 모든 생명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인류가 보유한 무기는 지구를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강력해졌고 기술력은 우주에 닿을 만큼 발전했죠.


이제 인간이 지구의 주인공이자 최종 승리자라는 말에 반론을 제기하기는 어려워 보이는데요.


하지만 영국의 환경보호론자 데이비드 애튼버러는 인간이 이 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간이 공룡보다 지구에서 더 오래 살았다는 근거는 없으며, 인간이 지구의 주인공이 되게 해준 진화의 메커니즘이 그대로 작동한다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할 생명체가 언젠가 분명 등장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단, 인간이 지구를 파멸로 이끌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어쩌면 우리 인간은 지구라는 집의 주인도 아니면서 모든 이들을 내쫓고 집을 마음대로 훼손하고 있는 불청객일지도 모릅니다.


지구적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 "인간에게는 삶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라는 거창한 생각에서 벗어나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지표들은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고, 국가적 재앙으로 찾아오는 자연재해는 매해 더 큰 규모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삶의 목적을 찾아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을 해 나가야 할 시기라고 보는 게 맞겠죠.


"모든 개인은 각자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아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말로 들립니다. 하지만 이 말은 인간이 지구의 주인공일 때만 성립하는 말입니다.


만약 지구가 망가져 인간을 감싸주던 역할을 더는 하지 못한다면,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의 지위를 잃어버린다면, 


그때 우리는 각자의 삶의 목적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생존이라는 공통의 목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C.S 루이스가 말하는 삶의 목적 

불안에서 벗어나 그저 일상을 즐기자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년 11월 29일 ~ 1963년 11월 22일) 영국의 소설가


소설 『나니아연대기』의 작가로도 유명한 루이스는 우리에게 죽음을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는 죽음은 우연이 아니라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며 불안에 떨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만약 내가 몇 년 후 죽는다면 그날까지 해야 하는 건 걱정이 아니라 평소처럼 기도, 일, 독서, 음악 감상을 하며 분별 있고 인간답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루이스는 이야기하죠.


걱정을 하며 죽음을 맞이하든 그대로 일상을 즐기며 죽음을 맞이하든 어차피 결과는 똑같으니까요.


우리는 삶에서 꽤 많은 시간을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데 소비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일을 미리 걱정하는데 소비하기도 하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미 결정되어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은 멈출 수 있습니다.


특히 죽음과 같이 모든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찾아오는 문제라면 루이스의 말대로 그건 걱정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직 중요한 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겠죠.


어쩌면 우리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삶의 목적을 찾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드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죽지 않고 무한히 산다면 굳이 머리를 쥐어짜며 지금 내 삶의 목적을 찾아낼 필요도 없기 때문이죠.


내 삶의 목적을 찾으려는 성찰은 분명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루이스의 말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저 고민 없이 내 일상에 충실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이것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명확하게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4명의 사상가가 각각 순간, 보편성, 환경, 일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말하는 4가지 삶의 목적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 중에서 여러분들이 가진 삶의 고민에 도움이 될만한 인사이트를 준 사상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


그럼 저는 다음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New Philosopher KOREA vol.3, (주) 바다출판사, 2017

New Philosopher KOREA vol.13, (주) 바다출판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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