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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갈등이 필연적인 철학적인 이유

#9 구조주의


한국리서치에서 조사한 세대갈등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세대갈등이 심각하다"라고 답변했습니다.



2023 세대 인식 조사 결과(출처 : 한국리서치)


세대갈등은 계층, 이념 갈등과 더불어서 현재 한국이 겪는 주요한 문제 중 하나인데요.


어떤 이유에서 세대갈등은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는 걸까요?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세대 갈등'이라는 말 자체에 맹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은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라는 문장은 상식적입니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를 거쳐 자라온 세대,


6.25 전쟁을 겪은 세대,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


IMF를 정면으로 맞닥뜨린 세대,


한국의 전성기라 불리는 2000년대에 성장한 세대,


스마트폰을 장난감으로 갖고 놀며 자란 세대,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세대 간에 좁힐 수 없는 생각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인 일이 아닐까요?


세대 갈등이 벌어지는 이유는 세대 간의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다른 생각들을 일치시키려는 시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세대 간의 갈등을 없애고 통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오히려 세대 간의 생각 차이가 갈등으로 더 부각돼 보이는 거죠.


어떤 고민을 시작하고 결정하기 앞서서 어떤 종류의 고민거리가 주어질지는 그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에 따라 먼저 결정된다는 구조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세대 간의 생각 차이는 갈등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개인'과 '문화'는 사회의 구조에 의해 만들어진다




먼저 세대 갈등을 새롭게 바라보게 도와주는 구조주의가 출연하게 된 맥락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참혹했던 1차 세계대전은 물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인류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인간은 과연 이성적인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했죠.


인간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라면 이런 끔찍한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현대에 이르러 철학자들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철학 사조가 실존주의죠.


실존주의 철학자로 대표되는 사르트르는 신에게 기대지 않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말합니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년 6월 21일 ~ 1980년 4월 15일)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그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로 자신의 철학을 축약하며 인간은 자신의 선택대로 삶을 꾸려 나가야 하는 숙명을 가졌다고 말하죠.


이는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부담을 짊어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어떤 존재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20세기 초 이러한 실존주의의 물결로 이제 개인들에겐 인간의 본질을 규정지으려던 외부적인 틀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와 푸코, 알튀세르 등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실존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죠.


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는 거대한 구조가 있다는 것을 분석했습니다.


개인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스스로의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 사회 구조속에서 의미를 찾으며 살아간다는 것이죠.


프랑스의 철학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년 10월 15일 푸아티에 ~ 1984년 6월 25일 파리)


대표적으로 미셸 푸코는 그의 저작 <말과 사물>에서 인간은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논의를 펼쳐나갑니다.


그는 개인은 텅 빈 세상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구조(에피스테메) 속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한 푸코를 비롯한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들은 완전한 자유는 환상이라는 생각 아래 인간의 자유를 가로막고 개인을 규정짓는 구조를 분석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들이 밝혀냈던 것처럼 우리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 여겨지지만,


우리 인식과 판단 체계는 살고 있는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 영향이 어떻게 작용하고 또 얼마만큼 결정적인지에 대해선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많건 적건 개개인의 사고방식이 그 사회의 구조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세다 갈등을 포함한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차이가 갈등으로 번지는 이유




우리 모두는 스스로 경험한 삶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타인들도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문제일 뿐이지 합리적으로 대화만 나눌 수 있다면 설득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죠.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내 삶의 방식을 정답으로 두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채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오답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는 거죠.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이질적인 경험을 한 세대들이 조화롭게 융화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듭니다.


세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세대 간의 접점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벌려두는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존중과 화해의 악수는 두 사람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만 가능하니까요.


살다보면 나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한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고민거리가 주어어떤 인식 체계로 세상을 바라보느냐는 그가 거쳐온 삶의 역사속에서 먼저 결정된다는 구조주의를 떠올려 본다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저 사람은 나와 다른 역사를 가졌어”라는 생각이 필요할 때입니다.


한 사람이 거쳐온 삶의 역사를 듣는다면 꼭 나와 생각이 같지 않아도 그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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