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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재 Sep 16. 2024

울기 좋은 날

                          

지유의 방과 후 수업 첫날이었다.

작년은 1학년의 절반을 눈물로 보냈다. 예민하고 불안감이 높아, 처음 하는 것에 두려움이 많은 탓이다. 지금까지 처음 하는 모든 일을 순조롭게 시작한 적이 없었다. 방과 후 역시, 처음 듣는 수업이니 교실에 잘 들어갈 수 있을지부터 걱정됐다. 지난겨울 성장해 온 모습에 잘할 것이라 믿고 싶기도 하고,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 내내 울면서 보낸 시간이 떠오르며 불안하기도 했다. 오늘도 왠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아이가 하교할 때까지 카페에서 작업하던 다른 날과 달리,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제, 수업이 진행될 교실을 학교 안내도를 보며 함께 교실을 찾아보았고, 준비물도 잊지 않고 챙겼다. 잘하겠지. 생각과 다르게 초조해졌다. 시계와 휴대전화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수업 시작 시간인 2시. 심장 박동수가 느껴졌다. 2시 3분, 휴대전화 화면이 밝아지며 전화벨이 울렸다. 지유였다.     


“엄마!! 방과 후 못 가겠어! 흑흑흑. 안 가면 안 돼?!”

지유는 큰 소리로 울며 소리를 질렀다.

“안돼. 지유야. 방과 후도 학교 수업이야. 빠지면 안 되는 거야. 가야 해.”

“엄마! 제발!! 무서워서 못 가겠어! 안 갈래. 그냥 교실에 있다가 집에 가면 안 돼?”

지유는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크게 우는 소리에, 옆에 있던 담임 선생님께서 지유의 전화를 받으셨다.

“어머님, 지유가 방과 후 수업이 있는 거죠? 지유가 안가겠다고 하는데요. 혹시 일하세요?”     

일하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가슴이 콕 찔렸다. “일을 하고 있기는 한데, 집에 있어요.”라고 답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엄마는 언제든지 학교로 달려올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 걸까. 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가 시끄러웠다. 지유는 교실에 남아있겠다고 버티고, 선생님은 교실에 있을 수 없다고 설명하고 계셨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학교로 뛰어가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지유에게 도서실에 가 있으라고 말한 뒤, 옷을 주워 입었다. 거실 테이블엔 작업을 하다만 노트북과 공책, 펜이 시간과 함께 그대로 멈춰있었다. 깜빡이는 모니터 속 커서가 나를 바라보았다. 쓰다만 생각이 테이블 위를 부유하고 있지만, 이곳의 작업 시간은 누구에게도 중요치 않아 보였다. 작업실이 있었다면 부유하던 생각을 잡아다 활자로 박아 넣었을 텐데. 학교에 갔다 돌아올 때쯤이면 공중으로 휘발되어 버릴 것 같은데. 만약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집에서 일하는 엄마이기에, 선생님도 지유도 내가 학교로 뛰어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 시합이라도 나간 듯이 뛰었다. 학교 도서실에 도착하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조용한 학교에서 나 홀로 거친 숨을 내뱉으며 계단을 올랐다.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힌 뒤 도서실 문을 여니, 아무도 없는 책상 위에 지유가 혼자 앉아있었다.

“지유야, 가방 챙겨서 나가자.” 속삭이듯 말했고, 지유는 말없이 가방을 챙겨 도서실을 나왔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잡은 채 복도를 걸었다. 방과 후 교실로 가는 방향이었다. 지유는 방과 후 교실이 가까워져 오자 점점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지유야, 엄마 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수업 듣고 나와.”

도리도리, 지유는 머리를 세차게 도리질하더니, 갑자기 뒤돌아 뛰어갔다.

“지유야! 안돼! 이리 와. 수업 들어야 해. 그냥 가면 안 되는 거야.”     

어느새 방과 후 선생님도 복도로 나와 함께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유야, 수정이랑 효주가 기다리고 있었어. 지유가 안 왔다고 문 앞에 서서 기다렸어. 있잖아, 효주도 1학년 때 많이 힘들어했어. 근데 지금은 너무 좋아해.”

아이들은 모두 울고 있는 지유를 바라봤다. 1학년도 아니고, 2학년인 아이가 수업에 들어가기 무섭다고 운다니. 앞쪽에 앉은 1학년 아이들 보기 부끄러웠다. 아이들은 우는 지유 한번, 뒤에 서 있는 엄마 한번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마음속 또 다른 아이가 고통의 신음을 흘렸다.

“얘들아, 우리 지유 힘내라고 응원해 주자.” 선생님의 말씀에, 몇몇 아이들이 “힘내.”라며 응원의 말을 건네왔다. 지유는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맨 뒷자리로 가 자리에 앉았다. 수업이 시작되고 30분 만이었다.     


앞으로 남은 40분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교실 신발장에 기대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아이들의 실내화 냄새가 풍겨왔다. 복도를 뛰어다니는 발랄한 어린이들이 나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신발장 옆에 있는 우산꽂이와 다름없이 대하는 그들의 시선에 나 역시 사물처럼 우두커니 있었다. 불편한 건 교실 안 어린이들의 시선이었다. 여전히 가지 않고 교실 밖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아줌마가 신기한지, 돌아가며 나의 존재를 확인했다. 지유와 한번 눈 맞추고, 수정이 한번, 효주 한번, 1학년 어린이 한번, 4학년 언니 한번.     

텅 빈 복도가 아이들의 노랫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어린이들의 합창 소리는 아름다웠다. 교실의 아이들이 모두 노래를 부르는데, 지유만 부르지 않았다. 지유는 악보를 펼치지도 않은 채 땅만 보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텔레파시를 보내며 입을 뻐끔거렸다. ‘지유야, 노래 불러. 입 벌리고 노래 좀 불러줘.’ 잠시 지유와 눈이 마주쳤고, 얼른 입을 벌려 노래를 부르는 모양새를 취했다. 다행히도 지유 역시 조그맣게 입을 벌렸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홀로 입을 뻐끔거리며 서 있는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을 느낄 새가 없기도 했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과 어린이들의 합창 소리로 한껏 화창했던 봄날의 복도였다. 봄 햇살이 밝을수록, 노랫소리가 아름다울수록 지유와 내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짙게 느껴졌다. 이번 한 번만의 일이 아니었기에, 단순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유가 울고 있을 때마다 교실 앞에서, 강의실 앞에서, 버스에서 마주쳤던 아이들의 시선이, 선생님의 시선이 떠올랐다. 보통의 아이, 보통의 엄마가 되지 못한 우리를 타박하는 것 같던 시선. 저 아이는 왜 엄마와 떨어지지 못하는 걸까. 저 아이는 왜 무섭다는 걸까. 아무도 한 적 없지만, 귀에 들려오던 비난의 말들.     


어린 시절의 난 눈물이 없는 아이였다. 이사를 많이 다녀서 초등학교만 다섯 곳을 다녔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친구에 어렵게 익숙해질 때쯤이면 다시 헤어지는 일을 숱하게 겪어야 했다. 말썽을 많이 피우던 동생을 보며, 첫째니까 의젓해야 한다는 역할을 스스로 부여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눈물은 흘려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던 건. 내게 눈물이 많고, 감정표현에 능숙한 지유는 이해하기 힘든 아이였다.


교실 속 지유의 흔들리는 눈빛에, 마음이 출렁였다. 이젠 아이 눈이 아닌,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기세였다. 지유의 마음에 동화되어 버린 걸까. 복도 바닥을 쳐다보았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유만의 몫이어야 한다. 내 몫은 지유의 뒤에 서서 용기를 주는 것이어야 한다.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기댈 수 있고, 힘을 낼 수 있게.     


두 번째 방과 후 수업 날이 되었다. 아침에 혼자서 수업을 듣고 오기로 약속했다. 시간은 꾸준히 흘러 2시가 되어갔다. 눈앞에는 점심으로 사놓은 김밥이 놓여 있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함으로 온몸이 굳어갔다. 김밥을 먹었다가는 체할 것 같았다. 2시 6분. 지유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우는 목소리였다.

“엄마! 못 가겠어!! 그냥 교실에 있으면 안 돼?”


이번엔 학교로 쫓아가지 않으리라. 지유의 담임 선생님과 통화한 뒤, 아이가 수업을 너무 들어가기 싫으면, 도서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지유야, 엄마는 방과 후 수업 끝나는 시간에 데리러 갈 거야. 수업에 들어가기 싫으면, 그때까지 도서실에 있다가 나와.”     

오늘도 실패인가. 낙심했지만, 곧 학교로 달려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지유는 도서실을 좋아해서인지, 학교 안에서도 도서실만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학교에 늦게 데리러 가게 되는 날이면, 도서실에서 기다리라고 한 적이 있기도 했다. 도서실에 가라고 한 이후에는 온몸의 진이 다 쏟아져 내린 듯, 눕고만 싶었다. 나도 모르게 거실 바닥에 스르르 몸을 뉘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니, 지유의 부재중 전화 2통이 적혀있다. 시간은 2시 50분.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때 지유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이라도 방과 후 들어가면 칭찬해 줄 거야?”

“응, 물론이지. 지금이라도 들어가면 대단한 거지.”

내 말이 끊기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전화는 끊어졌다. 수업을 20분 남겨둔 때였다.     


그날 저녁, 지유와 대화를 나누었다.

“지유야, 학교 혼자 가는 거나, 방과 후 수업 들으라고 하는 것도 다 혼자 하는 연습 하라고 하는 거야. 이제 2학년이니까. 지유가 괴롭히는 게 아니고,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알고 있지?”

“엄마, 당연하지. 알고 있어. 그런 약한 소리 하지 마. 자꾸 그런 말 하면 엄마 마음만 약해진다고.”     


지유는 알고 있었을까? 엄마에게도 울고 싶은 어린아이가 있었다는 걸. 아이의 다정함에, 나는 혼자 방에 들어가서 좀 울었다. 어려서 울지 못했던 아이는 어른이 되고서야 운다. 울고 나니, 자주 우는 지유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화장대 거울 속 눈이 빨개진 얼굴을 바라본다. 지금의 난 무엇을 하느냐고? 한 어린이 마음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다. 두려움이 많은 마음을 알아주고, 안아주는 일이다. 왜 아이를 기다리며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을 무가치하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을까. 잘 울어서, 자주 두려워해서, 남들만큼 해내지 못해서 아이를 원망한 시간들. 학교로, 학원으로 불려 갈 때마다 아이를 비난하듯 바라봤던 것은 뭇사람이 아닌, 나였다.     

너 때문에 왜 엄마는 애 닳아야 해.

너 때문에 왜 엄마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해.

너 때문에 왜 엄마는 일도 못 하고 불려 가야 해.     


때문에, 때문에, 라며 아이를 비난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말은 안 했지만, 눈빛으로, 표정으로 아이는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불안으로 흔들리는 엄마 마음속 아이의 모습을. 그럼에도 엄마를 보듬어 안아주는 아이의 말에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무너져 내렸다.      

너 덕분에 엄마가 울 수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겐 울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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