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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재 Sep 12. 2024

그날 아침, 등굣길

학교 가는 길. 내가 앞서서 혼자 걷고, 엄마가 뒤를 따라 걸었다. 2학년이 되면서 학교에 혼자 가는 아이들이 많이 생겼다. 나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혼자 가야 한다고 연습을 시킨다. 오늘은 동생도 함께다. 아빠와 어린이집으로 가던 동생은 오늘 아빠가 일찍 출근하는 바람에 함께 따라왔다. 동생은 자기만 엄마 손을 잡았다고 신이 났다.     


“엄마, 누나 왜 혼자 가?”

“누나는 이제 컸으니깐 학교 혼자 가는 연습하는 거야.”     


엄마는 속삭이며 이야기하지만, 다 들린다. 그래, 누난 이제 9살이니까. 동생아, 너도 학교 들어가면 겪게 될 것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누나는 대단하다고. 동생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은데, 엄마가 동생 손만 잡아주고 둘이 걷는 게 신경 쓰인다. 아니, 짜증이 난다. 나만 혼자 가라고 하고, 둘만 뒤에서 걷는 건 정말 치사하다. 조용하기에, 또 나만 빼고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싶어 돌아보았다. 돌아보고 돌아보다 조금씩 뒷걸음쳤다. 은근슬쩍 엄마 옆으로 다가갔더니, 매서운 엄마 목소리가 돌아왔다.     


“지유야, 혼자 가는 연습해야지. 동생 있다고 엄마한테 오면 어떡해.”     


아, 진짜 실망이다. 잠깐 뒤로 왔는데, 뭐라고 하다니. 다시 혼자 앞서 걸었다. 뒤에서 엄마와 동생이 기분 좋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 건물 상점을 바라봤다.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오늘따라 못생겨 보인다. 어깨는 축 처지고 입꼬리는 내려가고, 머리도 촌스럽다.


'앞으로 엄마는 동생 차지가 되는 걸까. 앞으로 나는 혼자서 다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소름이 끼쳤다. 평소에 지나곤 하던 공원이 갑자기 무섭게 보인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데, 꼭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진 괴물의 팔처럼 보인다. 나뭇가지들은 점점 길어지면서, 나를 잡아가려고 다가오는 것 같다. 심장이 빨리 뛴다. 쿵쿵. 쿵쿵. 위이잉 우우웅 이상한 소리도 들려온다. 괴물 울음소리, 아니면 귀신 소리일까. 깜깜한 풀숲 속에 뭔가 숨어있을 것 같고, 저 너머 산에서도 무서운 게 날아올 것 같다. 멈춰서 뒤를 바라보니, 엄마와 동생이 멀리서 이상하게 보인다.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가지 않고 있으니, 엄마가 늦었다며 재촉한다. 늦어서 엄마 옆에서 함께 걸었다. 그런데도 계속 무섭다. 그냥 집으로 가고 싶다.


교문이 보인다. 초록색 철문으로 들어가면 감옥에 갇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철문 너머 구덩이에 빠져서 감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닐까?


왠지 다시는 엄마를 만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심장이 점점 크게 뛴다.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엄마인 내가 지유가 되어볼 수 있을리 없지만, 그래도 상상해 본다. 아이의 눈은 어른의 눈과 달리, 작은 자극도 크게 느끼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눈앞을 해석한다. 그날 아침, 등굣길 풍경을 지유는 어떻게 느꼈을까. 불안한 마음에 학교 앞 풍경이 유달리 무서워 보였을까.      


어느 월요일, 지유는 학교 교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교문 앞에서 울면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들여보낼 수는 없었다. 담임 선생님, 교장 선생님과 상의 후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진정하고 2교시에 다시 등교하려 했지만 안가겠다고 떼를 썼다. 무섭다는 이유였다. 달래 보고, 단호하게 말해보고, 으름장도 놓아보고, 사정하기까지 했지만,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단순히 학교 가기 싫어 떼쓰는 것 같지 않았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도서실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니, 2교시가 끝나기 직전에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월요일부터 시작된 <혼자 등교하기 거부>는 5일 내내 계속됐다. 무언가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 쉽게 해결되지 않을 무언가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모를 무언가. 불안했다.     


이유는 없었다. 아니, 이유를 알 수 없었다는 게 맞겠다. 병원에서는 원인 불명의 불안, 강박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방과 후 수업을 안가는 것과 학원에 안가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학교에 안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로 병원을 찾았던 이유다. 


지유의 마음을 내가 짐작해 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지유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1학년 때도 잘 다니던 학교를 왜 2학년이 되어서 갑자기 가지 못하게 된 걸까? 무엇이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지금 이 아이가 학교를 못 가겠다는 게 두려움 때문일까? 그냥 떼를 쓰는 건 아닐까? 나는 갑자기 혼돈의 한가운데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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