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아이를 둔 부모를 위한.? 내가 예민한 아인데. 엄마, 예민한 아이 책을 읽고 있네?”
“응. 지유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엄마도 다 그래. 예민한 사람이 많은 집이니까, 엄마가 잘 알아두려고 읽고 있어.”
“어쩐지… 요즘 잘해주더라.”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오후, 안방에서 한가로이 뒹굴던 지유가 협탁 위에 눈만큼 소복이 쌓인 책 무덤에서 한 권을 집어 들며 말했다. 지유는 이렇게 엄마가 읽는 책을 궁금해하곤 한다. 그림이 많은 책은 팔랑팔랑 책장 넘기기를 즐거이 하기도 하고, 이상한 제목의 책은 기억해 놓았다가 아무 때고 언급하여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 역시 내 책을 궁금해하는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는데, ‘어쩐지… 요즘 잘해주더라.’ 아이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콕 찌른다. 아이에겐 일상적인 대화겠지만, 내겐 노트에 기록할 만한 대화가 된다.
초등 1학년은 떨어진 젓가락을 써야 한다. 연필을 제대로 쥐어야 한다. 인사를 바르게 해야 한다. 책상 의자에 앉아 공부할 줄 알아야 한다. 친구 관계가 원만해야 한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 해야 하는 것 투성이인 말들이 귀에 하나둘씩 내려앉으면서, 내 방황은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만 이상한 걸까’라는 늪에 빠져버렸다. 구덩이에서 빠져나가려고 허우적댈수록 점점 더 늪에 가까워지는 듯했다. 모두가 나를 공격하는 것 같아서 최대한 주변을 밀쳐냈다. 스스로를 가두면서 생기는 건 불안, 죄책감, 분노,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견딜만하지 못한 날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지유 역시.
그때 누군가 “별일 아니야.”라고 얘기해줬다면.
나중엔 다 괜찮아질 거라고, 지나고 나면 이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해줬더라면, 달라졌을까.
나와 지유는 조금 더 부드럽게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을까.
지유는 특별한 아이였다. 풍부하고 창의적인 감정 표현과 주변에 대한 기민한 알아차림, 유난스럽게 큰 반응, 명확한 호불호의 표현. 감정 기복 없이 잔잔하게 살아온 내게, 전혀 다른 모습의 아이가 나타났다. 첫 아이여서인지, 아이의 모든 모습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와 다른 모습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매일을 예뻐하기만도 바빠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의 예민한 기질은 해가 갈수록 짙어졌다. 작은 자극에도 아이는 자주 놀랐고, 쉽게 피곤해하곤 했다. 그저 체력이 약하다고 여겼다. 예민한 아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세 살 때였다. 학부모 상담으로 어린이집을 찾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어떤 말을 듣게 될까 기대하며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던 말을 듣게 되었다.
“어머님, 지유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세요?”
“네? 네. 특별하지요.”
“어머님,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평범한 아이, 보통의 아이로 키우셔야 합니다. 어머님이 아이를 특별하게 키우려고 생각할수록 아이는 앞으로 어려워져요.”
“아, 네...”
“어머님, 지유가 다른 아이들이랑 많이 달라요. 특별학습 시간이 되면, 다른 아이들은 교실에서 특별실로 다 나오는데, 지유만 안 나와요. 설득해도 안 나오거나, 한참 만에 나와요. 현장학습가려고 버스 탈 때도요. 지유만 안 타려고 해서, 제일 늦게 태워요.”
“그래요? 아......”
“어머님, 지유 상담센터에서 상담 받아보시는 게 어떠세요?”
그때 처음 아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예쁘게만, 특별하다고만 여겼던 아이의 특성은 예민한 기질을 가진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상담센터를 통해 양육 상담이란 걸 받아보게 되었다.
지유의 예민한 특성은 내겐 반짝이는 특별함인 동시에 견디기 힘든 버거움이기도 했다.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쉴새 없이 아름다운 단어들을 쏟아냈고, 나는 노트와 펜을 들고 바쁘게 기록했다. 팔랑이는 손짓으로 춤을 추며 노래를 지어 부르는 아이의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지유 덕분에 단조로운 일상은 특별하게 바뀌었다.
반면 지유는 겁이 많아 놀이터에서 미끄럼틀과 그네를 타지 못했다. 놀이터에 가면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서 잘 놀지 못하니, 벤치에 앉아있는 내게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귀가 예민한 탓에 시끄러운 소음을 못참았다. 유치원 버스를 탈 때 아이들이 시끄러운 날이면, 버스를 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때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둘이 걷던 그 길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잘 노는 다른 아이들을 뒤로하고 우리만 집으로 걸어오던 길, 버스를 타지 않겠다는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까지 걸어가던 길. 솜뭉치를 달고 걷는 듯 무겁기만 했던 다리로 걷던 길은 아득하기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유달리 걱정이 많았던 것은. 설상가상으로 입학을 앞두고 이사까지 하게 되었다. 지유는 이사 날부터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옛 동네에 정이 많던 아이는 이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의사보다는 어른들의 결정으로 이사는 진행되었다. 이사 날이 다가오면서 아이 안에서는 불안감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을까. 이사는 새벽부터 시작하기로 했고, 겨울 새벽의 찬 공기가 걱정되어 아이들은 전날 미리 어머님 댁에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이사 전날 밤, 자정 무렵이었다. 부부만 집에 돌아와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어머님께 전화가 걸려 왔다. 잠을 자다 깬 지유가 할머니 집에 엄마가 없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울고 있다는 전화였다. 전화기 너머로 악을 쓰는 지유의 목소리엔 무엇으로도 설득되지 않을 듯한 공포가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어머님 댁으로 향했다. 그날 밤, 초라한 부엌 불빛 아래에서 우는 지유를 안고 있는 내게 아버님은 말씀하셨다.
“얘는 오은영한테 데려가야 하는 것 아니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우려했던 일들은 불행히도 그대로 발발했다. 아이는 무엇이든 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새로운 학원은 다니지 않으려 했고, 학원 셔틀버스 타는 것을 거부했다. 싫어하는 것은 전보다 더 싫어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것은 과도하게 집착했다. 불안과 긴장이 너무 심해서, 길에서 친구를 만나도 로봇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리기 일쑤였다. 인사를 하기는커녕, 모른 척하는 아이를 대신해 인사를 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만을 편안해하는 아이를 보며 안쓰러움과 불안, 걱정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1학기 학부모 상담 날. 담임 선생님은 지유가 선생님께 인사를 잘 하지 않고, 선생님의 부름에 대답을 잘하지 않는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도서실에 가거나 혼자 책상에 앉아있곤 한다고 했다. 가슴에 돌덩어리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올 것이 왔구나. 지난 시간 속에서 주변 사람들이 내게 했던 말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왜 이렇게 버릇이 없어.”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거니.”
“저렇게 악쓰고 소리지르는 애는 처음봤다.”
유난스러운 반응, 폭발적인 감정 변화, 짜증과 까탈스러움. 불안한 아이가 한꺼번에 보여준 모습들은 문제가 있는 아이로 바라보게 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 상담사, 가까운 가족, 친척들까지도 지유는 지도가 필요한, 상담이 필요한 아이였다. 예민하여 그런 것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점점 설득력이 부족했다. 주변 사람들의 우려의 목소리에 나 역시 압도되어 갔다. 역시나, 그랬구나. 마음속엔 이런 말뿐이었다. 아이에 대한 원망만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 아이는 나를 힘들게 하려고 태어난 걸까.
왜 한 번도 쉽게 지나가는 날이 없을까.
보통의 다른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들을 못 하는 아이가 원망스러웠다. 머릿속에는 아버님의 우려가 경종처럼 울렸다. 늦기 전에 아이를 오은영 박사에게 데려가야 하나.
아이의 모든 것은 엄마로부터 비롯된다. 아이의 모든 것을 안고 가야 하는 사람 역시 엄마다. 아이의 행동, 태도나 말투는 나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 아닐까. 당시의 나는 이런 생각들을 품고 있었고, 아이에 대해 죄책감, 부담감, 책임감, 무력감을 느꼈다. 존재 자체로 내게 기쁨이던, 빛이던 아이가 왜 이렇게 무거운 돌덩어리로 느껴지게 된 걸까. 하늘을 떠받치고 살아가야 하는 형벌을 받은 아틀라스의 심정으로, 딸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진 것만 같았다. 차라리 아이가 아픈 아이라고, 문제가 있는 아이라고 주홍 글씨를 붙이고 싶기도 했다. 그게 개연성이 있으니까. 힘들게 하는 존재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명목을 붙이고 싶었다. 이 아이가 내게 온 이유는 부족한 나를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게 하려는 의미였다고, 아무도 주지 않는 의미를 스스로 부여했다. 그렇게 해야만 버틸만했다. 아이에게 너그럽게 대할 수 있었다. 언제라도 탈주해 버리려 하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수단이었다.
보통 아이가 되지 못한다고 질책했다. 남들처럼 적응을 잘하지 못한다고, 수줍음이 많아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두려움으로 버스를 잘 타지 못한다고 아이를 다그치고 몰아세웠다. 태어난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때에 엄마조차 디딜 언덕이 되어주지 않았던, 도리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원망까지 했던 이런 나를, 이런 엄마를,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여 왔을까.
예민했던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이만큼 나 역시 예민했던 건 아니었을까. 아이를 탓하기 전에 아이를 바라보는 자신을 다시 보기로 했다. 불안에 휩싸인 채 앞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지는 않았는지. 놀이터에서, 유치원 등원 길에서, 학원 버스 길에서 우리는 어떠했나. 다른 아이들을 뒤로 하고, 손잡고 걷던 길 위의 우리는 어떠했나.
그 시간에 서로를 위로하며 걸었더라면. 놀이터에서 미끄럼틀과 그네를 타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지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멀쩡히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가는 친구들과 달리,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에 걸어가야 했던 지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한 번이라도 아이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는가.
힘들다며 날뛰는 감정을 잠재워야 했다. 강해지기로 했다. 내 아이지만, 그동안 잘 몰랐던 아이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상담센터의 양육 상담과 놀이치료를 알아봤다.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읽기 시작했다.
아이는 당신이 모든 것을 더 깊이 인식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아이는 당신이 아이가 없었다면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들, 즉 아름다움, 뉘앙스, 사람들 사이의 미묘함, 인생에 대한 질문들을 전해줄 것이다. … 민감한 아이는 세상에 대해 아이 특유의 신선하고 예민한 시각을 보여줄 것이다. …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일레인 N. 아론의 <예민한 아이를 위한 부모 수업>에는 예민한 아이에 대한 찬사가 가득했다. 책에 따르면, 지구상 인류의 15~20퍼센트는 예민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인류 외에 포유류, 어류, 파충류 등 다른 종에도 예민한 기질은 20퍼센트의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 예민한 기질을 갖고 살아가기는 어렵지만, 종의 보존과 진화에 예민한 부류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있기에 이 비율을 유지해 온 것이다. 별일 아닌 것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불편을 느끼며 살지라도, 그럼으로써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아이가 새롭게 보였다. 내 곁엔 아픈 아이가 아닌, 특별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에겐 문제가 없다. 초등학교라는 누름틀로 물렁한 아이를 눌러버리려 했던 자신이 문제였을 뿐이다. 누름틀 따위 던져버릴 것이다. 세상은 다양하고, 내 곁엔 다양성의 근거가 되는 특별한 아이가 있다. 별일 아닌 것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때로는 누구보다 양심적이고 공정할 수 있는, 때로는 남들이 생각지 못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내 차례다. 다양성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