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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재 Sep 06. 2024

조갯살과 조개껍질

그 일이 일어난 건, 주 1회만 다니던 미술학원을 주 2회로 등록하고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전조증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일주일 전, 영어학원 버스를 타기 싫어했다. 며칠 후엔 영어학원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음엔 방과 후 수업이었다. 처음 시작하는 방과 후 수업 교실이 무섭다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미술학원. 미술학원도 버스 타기를 무서워하더니, 학원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3월의 마지막 월요일. 학교 교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무서움이었다. 엄마는 물론, 자신도 알지 못하는 두려움에 압도되어 일상의 모든 것을 해나가기 어렵게 되었다.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된 행위는 본성적으로는 자연스러웠지만, 생활은 자연스럽지 않게 되었다. 아니, 엉망이 되었다. 두렵다는 이유로 피할 수 없는, 지유는 9살이었기 때문이다.     


조용하던 하루는 눈물범벅을 치러야만 지나가게 되는 시끄러운 하루로 변했다. 아이는 학교 교문 앞에서, 학원에서,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아이가 울 때마다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던 나는 속으로 울다가, 아무도 없는 내 방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봄이 되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개학일을 기다리며 긴 겨울방학을 버텼다. 3월이 되면, 그동안 쉬고 있던 요가원도 다시 나가고, 못 만났던 친구와 점심도 먹고, 조용히 카페에서 책도 읽으려고 생각했다. 그렇게 3월이 오기를, 봄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돌아온 건 무너져 내린 일상과 무너지고 있는 자식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왜 1학년 때도 잘 다니던 학교를 2학년이 되어서야 두려워하게 된 걸까? 다른 아이들은 괜찮은 것 같은데, 우리 아이만 왜 이런 걸까?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잘못한 걸까? 아이의 불안은 내게도 옮겨붙은 듯, 불안과 의심, 자책으로 하루하루 잠식되어 갔다.     


일상의 모든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두렵지만 계속해 나가야 했다. 웅크리고 있는 지유가 더욱 웅크리기 전에, 흔들리는 눈빛을 잡아주고 싶었다. 고민만 할 수는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침 주변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었고,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상담센터만 찾을 것이 아니라, 신경정신과 병원을 찾아가서 제대로 진단받을 것을 권했다. 맞는 말 같았지만, 어린아이를 신경정신과에 데리고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저 겁이 많아서 학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할 뿐인데, 병원에 데리고 갈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무엇보다 병원을 데리고 가면, 그 때부터 아픈 아이로 생각하게 될까봐 무서웠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는 중에, 아이의 두려움은 점점 커져갔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는 실갱이가 이어졌다. 들어가지 않으려는 이와 들여보내려는 이의 싸움이었다. 점점 지유를 보는 눈이 많아졌다. 교장 선생님도, 교감 선생님도, 담임 선생님도, 방과후 선생님도, 도서실 선생님도, 2학년 학생들도 모두 지유를 알았다. 지유는 어느새 초등학교의 관심사병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지유의 학교생활을 망칠 것 같았다. 병원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이에, 아이의 사회적 관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소아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어려운 발걸음이었지만,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혼란스러웠다. 이게 맞는 길인지, 다른 더 나은 방도는 없었을지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대기실은 비슷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기실에서 함께 기다리는 다른 엄마들과 그들의 아이를 바라봤다. 속으로 그들이 더 나을지, 내가 더 나을지 저울질하다가 그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조용히 혼자 있었다면 눈물이 났을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단정하게 뒤로 빗어넘긴 짧은 머리에, 단호해 보이는 안경을 쓰신 남자분이었다. 깔끔한 인상과 달리, 목소리는 온화하셨다. 조금의 설명만 듣고도 상황을 금세 파악하신 걸 보면, 베테랑이신 듯했다(당연한 이야기인가).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원인 모를 불안이 일시적으로 높아진 상태라며, 한두 달이면 나아질 수 있다고 하셨다. 진료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5분의 아이 상담, 10분의 부모 상담, 그리고 약 처방. 처방전을 들고 근처의 약국으로 향했다.      


“뉴프람오디정 1알씩, 매일 밤 자기 전에 드세요.”     


약국에서 뉴프람오디정의 실물을 받았다. 처방은 받았지만, 내 아이가 먹을 거라고 믿을 수 없었다. 정신없이 휴대전화를 들고 검색했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효능·효과는 주요 우울장애, 광장 공포증을 수반하거나 수반하지 않는 공황장애, 사회불안장애, 범불안장애, 강박장애의 치료. 약사에게 물어봤다.     


“이거 혹시 부작용은 없나요?”

“음... 처음 드셔보시나요?”

“네.”

“그럼, 조금 졸릴 수도 있어요. 많지는 않지만, 어지럽거나 머리 아플 수도 있고, 더부룩할 수 있고요. 그렇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하나. 멍해진 얼굴로 약국 의자에 주저앉았다. 옆에 앉은 아이에게 내색할 수 없어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동안 엄마가 아이를 아주 약한 존재로 생각하고 보호하고 있었던 듯해요. 말하자면, 아이는 조갯살이고, 엄마는 조개껍질인 거죠. 학교 들어가면서 급작스럽게 조개껍질을 벗겨버리니 조갯살은 살 수가 없는 거예요.”     


머릿속엔 조곤조곤 설명했던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만 반복해서 울렸다. 모든 게 내 탓이다. 아이를 병원까지 데려오게 된 것도, 약을 먹게 된 것도, 모두 내 탓이다. 아이를 나만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만들어 가려 했던 게 잘못이다. 아이를 사랑하다 못해, 건드리면 깨질 듯한 유리처럼 여기며 가슴 속에 품고만 다녔던 유년 시절. 그리고 아이는 준비되지 않은 채 여덟 살을 맞았고, 다른 아이들처럼 초등학생다울 것을 강요했다. 학교도 혼자 가고, 학원도 혼자 가야 한다고. 뭐든지 혼자 잘할 수 있는 아이로 만들려고 했다. 아이가 어떤지는 바라보지 못한 채, 만들고 싶은 아이의 모습만을 생각했다. 남들도 다 그래. 내 시선은 지유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 있었다.     


어느덧 1시 50분.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학원을 어떻게 가게 될까. 울지 않고 잘 갈 수 있을까.

아이를 기다리는 교문 앞에서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밝고 활기차고 건강한 어린이들이다.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를 짓고 싶은데,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는다. 더 이상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건강함. 그들의 건강함이 부럽다.     


지유가 나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미리 연습해 둔다. 오늘은 있는 힘껏 활짝 웃으며 크게 안아줘야지. 오늘도 지유는 모든 아이가 다 나오고 난 후에도 나오지 않는다. 오랫동안 기다리는 일은 많은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내색하지 않고 웃을 것이다. 잘했어. 오늘도 잘했어. 말해주고 기다려 주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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