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편지
아무도 모르지만, 너와 나는 아는 그때.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네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이제 많이 성장하고 단단해진 것 같다는 착각에 등교 혼자 하기를 연습했던 때. 그때부터였을까. 그때는 내가 생에 즐거움을 느끼고, 생기를 느끼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집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일에서 드디어 이제는 벗어날 때가 왔다고 느낀 때였다. 그때 난 눈이 뜨이는 것 같았을까. 그때 난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엄마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느꼈을까. 그리고 입 밖으로 그것들을 꺼냈던가. ‘속도를 줄이시오’ 팻말 하나 없는 자동차 전용도로 위를 있는 힘껏 가속 페달을 밟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까. 그때 내 손을 붙잡아준 사람, 기어코 집을 나가려던 어미의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졌던 사람은, 바로 너였다. 자기 앞길 헤쳐가려는 어미의 변화를 가장 잘 알아보는 사람, 아기. 아마도 아기의 본능이 아니었을까.
아니, 그때가 아니던가. 7년간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한 후, 바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문제였을까. 적응 못 하고 힘든 네게 다른 아이들처럼 초등학생답지 못하고, 여전히 어린아이 같다며 혼을 냈던 게 문제였을까. 학교 선생님이 인사를 하지 않고, 지시에 따르지 않는 문제아로 너를 치부할 때, 너의 손을 들어주지 않아서였을까. 친구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않고 잘못된 간섭만 하려 해서였을까.
아니다. 6살에 동생이 태어나면서, 그동안 받았던 부모의 사랑을 빼앗긴 너의 상실과 괴로움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인 것 같다. 계속해서 눈을 깜빡이는 강박 행동으로 너는 마음의 불안을 표현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모습이 보기 괴로워 고개를 돌려서인 것 같다. 당시 너의 심리 상담을 진행한 상담사가 놀이치료를 권했는데, 비용 문제를 생각하며 주저했다. 그저 내가 집에서 따뜻하게 잘해주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했다. 그때 너의 불안을 가볍게 대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네가 세 살이 되던 해.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내가 일을 해서인 것은 아닐까. 예민한 기질을 가진 아이인 줄 모르고, 남들도 다 그렇게 맞벌이로 사니까, 석사까지 공부한 커리어가 아까워서 너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을 나갔다. 그게 너를 불안하게 한 거니.
아니, 아니, 어쩌면, 어린 네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큰 소리를 질러대며 싸웠던 엄마, 아빠의 탓이 아닐까. 아이에게 부모의 다투는 모습은 대인관계 혐오증, 우울증, 폭력성으로 나타나게 된다는데, 그 때문이 아닐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결혼해 함께 살며 매일 같이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관전하게끔 했다. 존재의 근원인 부모가, 생존의 터전인 가정이 붕괴할 것 같은 위기를, 불안을 너는 얼마나 크게 느꼈을까.
언제부터인 걸까.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너의 불안이, 등교 거부가 시작된 걸까.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다. 너를 낳아 세상에 데려왔을 때,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기쁨으로 가득 찬 행복만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는데. 나의 무지와 착오, 불신, 오해, 편견, 아집으로 너를 괴로움의 구렁텅이에 넣어버리고 만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네가 겁이 많아 그렇다고 생각하겠지. 엄마가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너와 나는 알고 있다. 무엇이 너의 두려움과 불안을 이렇게 크게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