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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솔아 Mar 27. 2023

게임하는 아이, 통제하는 부모


게임이 단순 기호가 될 수 있는 건 아주 어린아이 일 때뿐이다. 아이보다 '학생'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면 게임은 기호에서 '되도록 멀리하면 좋은 것'으로 변하게 되고, 부모의 통제도 그즈음 시작된다.



열 살이 됐을 무렵 부모님이 내게 말도 없이 '어린이 보호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하셨다. 미리 설정해 둔 시간이 지나면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컴퓨터를 강제 종료시키는 프로그램인데 첫인상이 그닥 좋지 않았다. 신나게 게임을 하는 중에 돌연 종료되는 컴퓨터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을 리 없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신 부모님은 내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컴퓨터 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하셨다. 주마다 배달되는 학습지를 매일 풀지 않았던 내 행실은 아주 좋은 명분이 되었다.


프로그램 덕분에 게임하는 시간이 순조롭게 줄어들자 착한 아이에게 보상이 주어지듯 컴퓨터에 걸린 락(Rock)이 풀릴 때가 간간히 있었다. 깜짝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게걸스레 게임을 하다 보면 또 어느 날 아무런 예고 없이 컴퓨터가 잠겨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컴퓨터가 잠기면 분을 못 이겨 짜증을 내면서도 내 기분 자체가 게임의 폭력성을 입증하는 것 같아 답답하고 억울했다.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 문제아가 되는 것 같았고 내 마음을 죽이면 바른 모범생이 되었다. 정반대의 기로에서 나는 부모님과 주위 어른들이 '옳다'는 방향으로 따라갔는데, 그럴수록 게임은 내게 확정적인 악이 되어 게임을 할 때마다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왜 그렇게 바른 아이가 되려고 했을까?' 스스로 물어보면 '인정받고 싶어서'란 대답이 저절로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노력했던 것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나는 학습지를 밀리긴 했어도 방문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는 그 주의 학습지를 어떻게 서든 풀어놓는 아이였다. 내게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재미없는 공부에 집중하는 힘, 놀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는 인내를 발휘하는 게 어린 내게도 쉬웠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 노력을 "학습지를 매일 풀지 않았다"는 결점으로 보았고, 내가 좋아하는 행위를 속박하기 위한 구실로 썼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존중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부모님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나의 선호와 노력에 대한 부정은 나의 결핍이 되었다. 인정욕을 동력으로 나는 보다 바르고 모범적인 사람으로 자라났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감각은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으로 훈육하신 걸 안다. 누구보다 내가 잘 되기를 바라셨고 부모 역할에도 충실하셨다. 그래서 유소년기에 내가 부모님께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도 부모님을 사랑했기에 감히 당신들을 원망할 수 없었다.


나는 고3 때 공부를 위해 게임을 그만뒀다. 원래 대학에 합격하기만 하면 보란 듯이 게임을 할 생각이었는데 일 년 사이 게임을 안 하는 행위에 관성이 붙었는지 '게임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가끔씩 게임을 했던 과거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었지만 '어렸으니까 가능했지', '괜히 시작했다가 인생 망하면 어떡해'와 같은 생각이 들어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미래를 위해 애쓴 덕분일까? 서른 살에 <로스트아크>라는 게임을 다시 손에 잡았을 때에는 더없이 당당한 기분이 들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당당함의 원천이었다. 환상적인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토록 그리워하고 다시는 내게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찬란한 시간이 내게 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른이나 먹은 딸이 방구석에서 게임을 하는 게 걱정스러웠는지 부모님은 번갈아 가며 우려를 표했다. "게임 중독인 것 같으니 적당히 좀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부모님과 대판 싸웠다. 나는 부모님의 말이 '주제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는 과거의 답습이었다. 부모님은 내게 참견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셨고, 나는 날카롭게 반응했다. 한참 입씨름을 한 후 방에 들어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게임을 했지만 사실은 꾸역꾸역 컴퓨터 앞에 앉는 내가 초라해서 미칠 것 같았다. 웃고 떠들며 게임을 하다가도 모니터만 끄면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과 자괴감에 눈물이 났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 어른이었는데 게임과 부모님이 얽히니 무력한 10대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나를 버티게 했던 오기와 자존심은 부모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고 나의 근간을 흔들었다. 무너지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 해 9월 나는 집을 나왔다. 나를 사랑함과 별개로 부모가 나의 일부분을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받아들였다. 그러자 내가 과거에 부모님께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후련했고, 생각보다 뼈 아팠다. 나를 오롯이 수용하는 주체는 오로지 나뿐이어야 했다.


해묵은 결핍의 끝이자 부모로부터의 진정한 독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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