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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곤 Oct 27. 2024

남편의 의심

12월의 이별은 다시 오지 않았다: 9화

  https://brunch.co.kr/@skland1952/1156

의 다음화입니다.


  몇십 년 만에 찾은 KTX여수역 밖은 명절에 표를 구하지 못해 완행열차를 타고 10시간 동안을 왔던 어렸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역사를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어떤 때는 아저씨가 어느새는 아가씨가 계란이요, 김밥이요, 하던 소리에 계란하고 우유를 사서 밤새 달리는 기차 안에서 허기를 달래며 고향 길을 가곤 했던 풍경이 늦가을 맑은 하늘에 떠가는 뭉게구름처럼 따스하게 피어올랐다.


 비가 내리는 창가를 보며 그녀는 가방 안에서 노트북을 꺼내 들고 식탁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무 장애물이 없는 숙소의 창밖 풍경은 그녀를 사유의 공간으로 초대하기에 충분했다. 오십이 넘어 보이지 않는 남자 친구와 이렇게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함께 있으면 어느새 마음에 온기를 건네는 그의 언어에 감전이라도 되는 듯 그녀의 몸은 찌릿찌릿 전율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 보이지 않은 그녀 안의 그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지루했던 하루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문득 찾아오는 군손님은 어느새 떠나고 없었다. 그러한 날이 계속되면서 그때까지 그녀에게 관심 없었던 남편은 질투라도 느끼는 듯 그녀에게 물어왔다.

  “당신, 요즘 왜 그렇게 휴대폰에 열중이야?”

  “응, 남자친구가 생겼거든.”

  “뭐?”하고 놀란 듯 남편이 말했다.

  “질투나?”라고 놀리듯 말하며 그녀는 하던 일을 이어갔다.

  그러자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남편의 말이 건너왔다.

  “뭔 소리 하는 거야?”

  그랬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남편이 그때까지 확신했던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모습에 조금은 궁금했을 터인데 남자친구라니. 그것도 자신만이 존재할 것이라는 아내의 입에서 생각지도 있어서도 안 될 말이 튀어나왔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것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던지는 아내의 말이었다. 남편은 그녀의 말에 믿고 싶지 않은 듯 호기 어린 눈으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양 볼은 달아 오른 채. 분명 뜨거운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으며 싸늘한 표정으로.

  “도대체, 뭐야. 갑작스럽게 남자친구라니.”  

  “.........”

  “어디 좀 봐”

  남편은 그녀의 핸드폰을 삽시에 가로채어 액정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무슨 내용인지, 어떤 녀석인지,라는 의심이 가득 들어간 채 미간은 작은 계곡을 만들며 조그마한 동공은 확대하면서.

  “........”

  “뭐야?”

  “뭐?”

  “글 써?”

  “응.”

  남편은 보물창고의 뚜껑을 열어보고 텅 빈 상자 안을 허탈하게 바라보는 영화 속에서나 볼 것 같은 바이킹 얼굴을 하며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를 응시했다.

  “그럼, 사귄다는 남자가 글쓰기야?”

  “응.”

  그는 웃지도 화내지도 않는 얼굴을 하며 휴대폰을 그녀에게 건네며 특유의 저음과 고음을 섞으며 말했다.

 “사람을 놀라게 해도 정도껏 해야지. 나는 정말 남자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자기 아내는 조금 전까지 품었던 의심 속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 같은 것이 들어 있는 듯했다.


  모순적 모습을 숨긴 채로....


다음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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