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절 나의 집 근처에 예쁜 여대생이 살았었던 그녀가 어느 날 내 옆을 지나가고있었다. 용기가 있는 자만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했는데시간이 어디 생각대로만 흐르는가.
나는 우물쭈물하며 "저기요.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쌀쌀맞게 "없는데요."라고 말했다.
찬바람이 휭 하고 불어왔다. 그녀는 그렇게 곁눈도 주지 않고 가버렸고 순간 나는 온몸이 후끈거렸고 무더운 여름날이어서 낯 뜨거움은 더했으며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러한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 철은 없고패기만몸에 걸치고다니던 청년이었던같다.
그때 이후 1년이 흘렀다. 우연히 동네 길가에서 그녀를 다시 마주쳤고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저기요. 실례하지만 시간 좀 있으세요?"
내가 물었다.
"네. 그런데요. 왜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나를 힐끔 한번 쳐다보더니 시간이 있다고 해서 나는 커피숍에가서 얘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녀에게 제안했고 그녀도 좋다고 해서 동네에 있는 음악다방(이때는 대부분의 커피숍이 디제이가 있는 음악다방이었다)으로 들어갔다.
"나는 곤이라고 해요" 라며 내가 먼저 내 이름을 소개했다.
"그래. 나는 수연"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는그렇게 서로 통성명을한 후 이런저런 얘기를 한 후 나는 용기를 다시 냈다.
"우리 친구로 지냅시다."
내가 말했다.
"그래"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밝게 웃으며 말했다.
두 살이 위였던 그녀는 처음부터 말을 놓았는데, 돌이켜보면 좋고 싫음이 분명한 친구였으며, 그날 이후 우리는 친구가 되었는데 1년 전에 집으로 가던 길에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나를 그녀는 기억하지못했다. 나는 두 번의 시도 끝에 그렇게 그녀와 사귈 수 있었고 우리는 3년정도를 만났다.
나는 결혼을 하기 전에 3번의 연애를 했으며, 위에서 얘기한 그녀가 첫 번째 여자친구였는데 그녀는 콧대가 높았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다. 사실 그녀는 상당한 미인이어서 어디를 같이 가도 시선을 끌었다. 오늘 이 친구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만나고있는 글쓰기와 똑같은 두 번의 만남 과정이 있었기 때문일까.
결혼 후 처음인 여자친구는 지난해 9월부터 만났으니 이제 7개월 정도 지났는데 서로 많이 좋아하고 너무 사랑해서 매일 만난다. 온종일 그녀 생각에 설레며 보내니 행복하고 즐거운 그녀의 성은 글이고 이름은 쓰기, '글쓰기'인 그녀는 내 안의 깊은 곳 어딘가에 살고 있다.
3년 전에 후배가 형님은 글 좀 쓰니까 작가를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고했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으나 지난해에 아내가 성당에서 성경공부 과제를 위해 글을 써야 하는 데 도움을 요청했을 때였다.
"그럼, 나도 이참에 글을 좀 써 볼까"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 해 봐."
아내가 말했다.
이렇게 옛 여자친구였던 수연이를 만났던 것처럼 두 번의 만남 후에 글쓰기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럼 글쓰기로 인생 삼모작을 해볼까?'라는 마음이 속삭이는 소리에 응답하며 글쓰기와 만났다. 처음에는 '그녀와 만남을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횟수는 늘어갔고그녀와의 달콤한 속삭임은 하루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코로나로 입원했던 일, 그로 인해 휴직했던 일, 청년 때 일본으로 유학 가던 날, 일본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결혼, 가족과 사랑, 친구, 일 등에 대한 추억들을 그녀에게 토로했다. 사물을 관찰하면서 반추에 반추를 덧칠하며 글쓰기와 보내면서 마음속 구석구석에 흩어져있던 짙은 농도의 먼지들도 하나둘씩 모였고그것들은 사유의 정화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색상의 언어로 변신하여 세상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글쓰기' 그녀와 사랑하다 보니 마음의 치료도 되었다.
"아빠 글 쓴다며?"
딸이 물었다.
"그렇지"
내가 대답했다.
"그냥 취미로 하는 거야"
옆에 있던 아내가 말했다.
"........."
나는 아무 소리도 못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그녀와 사랑에 푹 빠질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시간과 공간도 유혹의 주체도 다르다. 예전에는 내가 여자친구인 수연이에게 다가갔으나이번에는 글쓰기가 나를 유혹했다. 첫 이성과의 길거리 데이트 신청 후 만남의 지속은 3년을 넘지 못했으나이번에는 어떨까. 우리의 만남은 이어질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다. 그녀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내가 변심하지 않는 한 그녀는 내 곁에 계속 있을 것이라고믿는다. 20년 이상 같이 살고 있는아내가 사랑하는 연인이요, 친구요, 동반자이듯'글쓰기' 그녀와도인생의 동반자로 같이 가길 희망하며이번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했던 글쓰기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이번에 에세이 형식에 소설적 요소를 가미하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데 만만치가 않을 것 같아"
내가 말했다.
"그래? 지금껏 네가 썼던 글과 달라?"
그녀가 물었다.
"음... 그렇지. 지금까지 에세이를 썼던 나로서는 새로운 도전인 셈이지."
내가 다시 말했다.
"그래. 응원할게. 무엇인가에 새로 도전하는 행위는 아름다운것이고 변화에 배고파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생각은 깨어있고 마음은열려 있어야 할 테니까 말이지. 그리고 시간이 어디 우리가 의도한 대로 움직이는 거 봤어? 그는 변화무쌍한존재이니 오래전에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한계선 앞에 머물러 있을 이유도 없지않을까? 시간과긍정적으로지내면서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부딪혀봐. 우리는 누구나 자아를 찾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