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서. 부유하는 언어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미치도록 핸드폰 자판을 두드린다.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은 나는 자연스럽게 가방 속에 있는 책을 꺼내 들고, 귀한 몸 한 장 한 장 벗겨 가면서 종이나라 위를 걸으며 여행한다. 환승을 위해 지하철 문을 나오면서도 그를 놓아주지 못하고, 그때까지 읽었던 종이 사이로 엄지 손가락을 끼웠다가 승강장으로 가는 계단을 내리면서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면서 펴다가 읽다가를 반복한다. 핸드폰 영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후 목적지 역에 도착. 이번에는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인다. 글쓰기에 미친 사람처럼. 이래서 아내와 딸이 "쫌 그만 좀 해!"라고 말했나 싶다. 같이 내렸던 사람들이 모두 역을 빠져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두 사람. 나와 어떤 아주머니다. 교통카드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여, 도우미 폰의 도움으로 그녀가 나가기까지도 나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개찰구 앞에 멈추어 선 채로.
나의 이 적나라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정말로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라도 할 것 같아, 감히 누구에게도 말을 건네지 못하고, 손가락만 여전히 바쁘게 움직인다.
나는 과연 글쓰기에 미친 것인가.
아니. 몰입의 힘일 것이다. 몰입도 미쳐야 가능하지만.
유명 가수들이 곡을 순식간에 뚝딱 하고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어떤 뮤지션은 꿈에서 가사를 보았다고 하기도 비행기 안에서 창문 아래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가사가 떠올랐다는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도 지금의 나처럼 몰입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것이다.
야생에서 먹잇감을 발견하자, 슬금슬금 다가가다 이때다 싶을 때 초고속으로 달려드는 수사자처럼, 사물을 포착한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어느 사진작가의 일순 손가락의 움직임처럼, 한밤중의 불청객인 모기를 짝 하고 두 손바닥을 부딪치며 잡아내는 전광석 같은 아내의 손놀림처럼. 지금 떠오르는 문장들을 놓칠세라 무아지경에 빠지는 나다.
지금껏 살면서 내가 무엇인가에 이처럼 미친 적이 있었을까.
있다. 그것도 아주 어릴 적에.
주말마다 새벽길을 달리며 도착한 바닷가에서 길게 그어져 있는 해안선을 태우며 솟아오르는 아침해의 모습을 보며 꿈을 키우던 소년이었을 때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고 숱한 경험과 감성에 기대며, 나는 글쓰기와 사랑에 단단히 빠진다. 그때처럼, 너무나 참을 수 없는 욕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