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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Feb 26. 2023

결혼식 RSVP 가능한가요?

<함께하기 위한 준비 ep.9>

나의 결혼식에는 “나를 잘 알고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참여해서” “함께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그래서 누구를 초대해야 할지, 누가 실제로 올지를 미리 알아야 했다. 더욱이 공간의 제약으로 가능한 하객 수가 80명 내외이고 숙박, 식대 등을 위해 인원을 확정해야 했기에 참석하는 사람의 정확한 명단이 필요했다.


누구를 초대해야 할까?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80명 중 나의 하객은 40명으로 가족과 친척을 모두 포함한 숫자이다. MBTI가 I로서 친구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삼십 년의 세월을 함께 해온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나의 선택으로 누군가는 서운해할 텐데 어떻게 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


타인이 기준이 되면 고민이 더 많아졌다. 예를 들어 가장 서운해할 사람을 부른다와 같이 외부에 기준을 두면, 그 감정을 내가 정확히 알 수도, 설명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준은 ‘나’여야 했다. 그래서 결정한 나의 기준은 “나의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한 사람인가?”이다.


나의 인생의 중요한 순간은 언제인가?

우선 나의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정해야 했다. ‘상당히 어렵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나는 매우 평범한 사람으로 초/중/고/대/회사를 성실하게 따박따박 살아왔다. 고로 대단히 평범한 그 순간들이 나에게는 중요한 인생의 포인트들이다. 극적인 에피소드에 근간한 눈물이 펑펑 나는 그런 포인트가 딱히 없다. 무튼! 그래서 각 시기별로 나와 함께한 사람들을 쭉 나열해 봤다.


MAX 버전으로 정리해 보니 무려 70명이었다 ㅎㅎ (노란색이 나, 초록색이 몽생이 하객명단이다) 70명이라니 ㅋㅋㅋㅋ 이 규모라면 다들 서서 결혼식을 봐야 할 것 같아서 이 중에 정말 정말 그 시기별로 꼭 불러야 할 사람을 추려봤다.

결혼식 하객 명단 Min, Max 버전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냥 시간으로 정했다. 나는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라서 좋아하면 자주 만나고, 자주 만나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안 좋아하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거리를 둔다. 그래서 그 시기에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그리고 조금 애매하면 내가 생일을 챙기는 사람인가를 기준으로 했다. 그 기준으로 사람을 정리해 보니 38명이었다.


굉장히 쿨하고 단순하게 인원을 추린 척했지만 사실 아직도 불안하고 걱정된다. 내가 초대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운해하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런 결혼식을 정한 것이고, 이렇게 정한 내가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초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꼭 인사는 전할 것이다. 구구절절 미안함을 전하고 나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중요한 날 나를 꼭 불러줬으면 좋겠다.. 제발~~~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나도 소중한 사람일까?

산너머 산이라고, 이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게 또 초대하는 인원을 정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나는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초대했는데 그들에게도 내가 소중한 휴일을 할애하여 제주도로 결혼식을 축하해 주러 오고 싶을 만큼 소중한 사람일까? 자존감이 너무 낮은 거 아니냐고 물어도 어쩔 수 없다 ㅋㅋㅋㅋ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단 말이지… 하지만 그 와중에 또 인원 조사는 명확하게 해야 했기에 아래와 같음 RSVP를 만들어서 하나하나 카톡을 보냈다.


Canva 사이트를 활용해서 예쁜 이미지도 함께 보냈다.

RSVP
(초대장에서) 회답 주시기 바랍니다(프랑스어 répondez s’il vous plaît(please reply)를 줄인 것)


다행히도 모두가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 줬고, 결혼에 초대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해 줬다. 초대하는 사람들을 너무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귀엽고 따뜻한 지인들의 응원에 이 결혼식을 잘 준비해서 정말 모두에게 추억이 될 수 있는 날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따수운 나의 지인들


사실 아직도 하객 명단은 100% 확정 짓지 못했다. 비행기 티켓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고, 언니가 갑자기 지인 한 명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고,, 엄마가 갑자기 지인 세 명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는 등 예측하기 어려운 것들이 아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유난스럽지만 하객명단을 1차적으로 결정하는 과정을 거쳤고 어느 정도 식대나 렌탈 규모를 잡을 수 있는 수준이다.


스몰웨딩에서 가장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나는 당연 하객 명단을 정하고 초대하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른 준비사항이야, 그저 내가 몇 번 더 검색하고 협상하고 결정하면 되는 것이지만 하객을 결정하고 초대하는 것은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변수와 그동안의 인간관계에 대한 회고, 유교걸로서의 예의와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욕심 간의 밸런스 조절 등 조율해야 할 것이 많다. 그래서 초대하는 사람에게도, 초대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ㅎㅎ 그래서 아직 주변에 결혼소식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지인들도 많다. 이 감정의 끝이 무엇일지는 아마도 주변에 결혼을 공개하고, 지인들에게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더욱 분명해지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 준비한 결혼식인 만큼 “나를 잘 알고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참여해서” “함께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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