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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Oct 18. 2022

나는 선택하는 자다

10/18 명상일기

처음 명상을 시작할 때 수많은 세상의 것들이 보였다. 스치듯 보는데 유난히 녹색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어떤 아이가 녹색 공을 펌프질하는 통에 넣어 퉁 퉁 튕기며 놀고 있었다. 곁에서 가만히 보다 하나가 굴러가기에 쫓아갔다. 잡으려다 놓쳤다. 또 잡으려는데 데굴 굴러갔다. 다시 잡으니 튕겨 나갔다. 이렇게 계속 놓치다 공이 누군가에게 굴러갔다. 그가 공을 잡아 나에게 주었다. 고개를 들어 가만 얼굴을 보니 순야 마스터님이셨다. 마스터님이 나를 안내해주듯 뭔가를 가리켰다. 그러면서 나와 마스터님이 하나가 되었다.


나무 줄기 같은 것이 하늘로 높이 솟아올라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몸이 붕 떠올라 그걸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별로 힘들지 않았다. 훨훨 날아 점프하듯이 나무를 따라 쭉쭉 올라갔다. 하늘을 넘어 우주가 나왔다. 그래도 끝이 없이 계속 올라갔다. 끝없이 가다가 빛이 보였다. 나무줄기를 따라 그 빛으로 쑥 들어갔다. 마치 우주의 끝처럼 느껴졌다. 거기 들어간 순간 나는 사라져 없었다. 그렇게 빨려들여진채 쭉 긴 터널을 지나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똑 하고 물 위에 떨어졌다.



물이 콸콸 나오는 샘물이 있었다. 빛이 나며 끝없이 흘러나오는 신성한 물이었다. 마셔보니 너무 달았다. 물이 나오는 곳 아래 병들이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그 병들이 물의 샤워를 받아 이리 저리 움직였다. 병 하나씩 뚜껑을 열어 물을 가득 찰랑거릴 정도로 담았다. 그러다 그 사람들이 병이 아닌 실제 모습으로 보였다. 서로 물을 마셨다. 웃으며 맛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늘어났다. 계속 와서 물을 마셨다. 물은 마셔도 마셔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물을 음미했다. 그 물은 물줄기가 되어 강이 되고 바다를 이루었다.


길을 따라가다 책들이 보였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같은 의식책들이었다. 그 위에 내가 쓴 책도 있었다. 책들이 포개져 빛이 났다. 책 옆에 손을 쑥 집어넣었는데 어떤 둥그렇고 딱딱한 돌이 잡혔다. 꺼내서 보았더니 투명한 돌 안에 ‘사랑’ 이라고 쓰여있었다. 그 돌을 가져다 내가 뭔가를 쓰려고 꺼내놓은 빈 종이 옆에 심었다.


그러다 문득 보니 가족들과 함께였다. 가족과 꼭 붙들고 서있었다. 배경이 계속 바뀌었다. 히말라야 산 정상에 올라가있고, 남산 위에 올라가있고, 외국 도시 위에도 있었다. 모든 건 계속 바뀌지만 우리 가족들은 함께 그대로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이자 동반자로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면이 바뀌었다. 이번엔 나에 대한 자각이 굉장히 강했다. 평소에는 나 너 등 개개인이 다 중요하게 느껴지는데, 이 명상 속에서는 나에 대한 자각이 너무 강했다. 내가 모든 것의 결정권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이리 움직이면 세상이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면 저리 움직였다. 손짓 발짓 하나에도 공기가 파동이 되어 세상에 영향을 끼쳤다. 마치 영화속 주인공이 된듯 카메라 앵글이 나를 따라다니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만의 영화를 찍었다.


그러다 어떤 손을 만났다. 살아있는 손이었는데 말도 했다. 어떤 선물박스를 들고있었다. 그걸 열어보자 커다란 주사위가 나왔다. 주사위를 굴려 랜덤으로 번호가 나오는 것이 아닌, 내가 마음대로 고르면 되었다. 선택했을 때 뭐가 나올지 미리 볼 수 있었다. 각 번호마다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큐브 안에 나타났다. 내가 선택하면 뭐든지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손이 설명해주었다. 이런 손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선택하는 자’라는 자각이 있었다. 그 메세지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순간 육체에서 “신은 창조하는 자가 아닌가? 창조와 선택하는 자의 차이는 뭐지?” 질문이 올라왔다. 순간 명상이 끊어지려 해서 생각을 밖에 두고 문을 닫아버렸다.


마지막엔 감나무의 감이 보였다. 그걸 따서 맛있게 먹었다. 감을 먹는 느낌이 굉장히 리얼했다. 색깔, 즙, 씹는 느낌, 맛까지, 실제 감을 먹는 듯했다. 감이 여러개 있어 사람들이 다가왔다. 가족에게도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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