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언 Oct 21. 2022

죽을 수 있어 행복해

10/20 명상일기 #1

배 안에 뭔가 꿈틀거렸다. 뱀인줄 알았는데 커다란 이무기였다. 내 몸이 좁다고 꾸물꾸물 움직였다. 순야 서무태 마스터님이 깨어나라고 터치해주셨다. 그러자 이무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일인데 드디어 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났다. 오래 기다린 듯한 느낌이었다. 움직임이 크게 느껴져 가만 보니 용이었다. 몸은 황금색에 커다랗고 빛이 났다. 눈은 무지개빛으로 영롱했다. 꼬리와 지느러미는 푸른색으로 하늘하늘 거렸다. 내 몸이 우주처럼 변해 용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팔 다리 몸통 온 몸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기지개를 피었다. 그러다 어깨쪽으로 가더니 머리쪽을 향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순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용이 왜냐고 묻길래 잠시만 같이 있어도 되냐고 대답했다. 용이 알았다고 말했다. 약 1초간 잠시 영원같은 함께함을 느꼈다.


용에게 이제 가도 좋다고 말했다. 용이 내 머리 정수리쪽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고통 없이 투명하게 마치 통과하듯 온 몸을 통해 내 몸을 빠져나갔다. 큰 나비가 번데기를 벗는 듯했다. 빈 껍데기만 남은 나는 바닥에 널부러졌다. 용이 나를 물끄러미 내려보더니 껍데기만 남은 나를 삼켰다. 이윽고 하늘로 높이 높이 올라갔다. 올라가며 몸이 점점 더 커졌다. 땅에 있는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쳐다보았다. 용이 계속 가다가 멈칫했다. 뱃속에 삼킨 내 껍데기가 두려워 끌어내리고 있었다. 용이 나를 배설해 버리려고 하길래 아니라며 다시 붙잡았다. 같이 하늘로 올라갔다.


첫째 아이와 같이 뛰어가며 숨바꼭질을 했다. 어떤 숲에 도달했다. 늑대가 있다며 숨었다. 위를 쳐다보니 황금빛 열매가 열려있었다. 열매를 따서 보니 표주박 모양이었다. 반을 가르니 안에 물이 찰랑거렸다. 그 물을 첫째와 나눠마셨다. 또 한참 뛰어가다 숨었다. 옆에 보니 빛이 나는 돌문이 있었다. 그 문을 살짝 여니 빛이 쏟아져나왔다. 첫째에게 “들어가면 헤어지는 건데 정말 괜찮아?”라고 물었다. 아이는 “응!” 이라고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러고는 신나게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이를 보내고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립고 보고싶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색이 고운 비단 주머니에 담아 묶어버렸다. 주머니 안에서도 계속 발광하듯 꿈틀거리길래 나중에 열어주었다. 마음은 그 자리에서 꽃이 되었다.


사막과 같이 끝없이 펼쳐진 모래 바닥을 걸어갔다. 내 발자국이 하나씩 찍혔다. 발자국 옆에 가만히 보니 강아지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눈을 들어 보니 내가 키우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별이와 여우가 있었다. 안고 쓰다듬어주었다. 같이 달렸다. 너무 행복한 그때, 돌아가신 친할머니 얼굴이 보였다. 할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사랑하던 반려견을 개장수에게 팔아버렸다. 손을 들어 할머니를 용서했다. 할머니를 감싸던 에너지가 부드러워졌다. 고맙다고 말하며 사르르 녹아 아기가 되었다. 그때 내가 사랑하던 강아지 부치가 내 품에 쏙 들어왔다. 꼬옥 안아주었다. 그 뒤로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 사람들도 모두 용서했다. 그러자 모두 아기가 되었다. 옆에는 그들이 이용했던 동물들이 함께 있었다. 그 아기와 동물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영혼이 되었다.


아기코끼리가 보였다. 엄마 코끼리와 억지로 떨어뜨려 혼자된 아기코끼리였다. 많이 아프고 고단해 쓰러져 죽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아기코끼리는 미소지었다. “죽을 수 있어 행복해.”라고 아기코끼리가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를 그리워하던, 꽃이 된 나의 마음이 다시 보였다. 그 꽃은 다시 첫째아이가 되었다. 나의 마음은 흡수되고 없었다.

이전 02화 나는 선택하는 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