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씨가 베란다 넓은 통창을 통해서 내 눈에 들어왔다.
"날씨 너무 좋다 밖에 나가고 싶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한 달이 넘도록 집안이라는 보호막에 갇혀 지내온 아이들 앞에서 당분간 금지어가 되어 버렸던 말을 내 눈에 들어온 봄의 풍경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날씨 좋다. 밖에 나가고 싶다. 나들이 가고 싶다 라는 말은 꾹꾹 눌려온 아이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엄마 우리 이제는 나갈 수 있어?"
"축구하러 갈 수 있는 거야?"
나는 "안돼!"라는 단호하고 짧은 두 단어를 아이들을 향해 내던졌다.
우리 집 금기어를 내뱉은 잘못을 숨기기라도 하듯 나는 아주 재빠르게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아이들은 실망이라는 감정을 축 처진 양쪽 어깨에 올려 둔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스마트폰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남편은 나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남편의 지인이 사람 없는 한적한 시골에 아이들과 놀러 간 사진이었다.
모두들 상황에 맞게 눈치껏 아이들과 나들이를 가고 있다는 말도 함께 나를 향해 내던졌다.
남편의 말속에는 융통성 없이 곧이곧대로 사회가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고 있는 나를 향한 답답한 감정이 섞어 나에게 내던져졌다.
"어휴 답답아! 너만 안 나가지 다 놀러 다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사회의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들에게 융통성이 없다. 답답하다. 융통성 있게 행동해라.라고 말을 하고 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누가 누구한테 훈수를 두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회의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은 바보로 취급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다수가 규칙을 어기면 소수가 지키는 규칙은 더 이상 규칙이라는 효력을 잃게 된다.
그 규칙을 꿋꿋이 지키고 있는 사람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사회가 정해 놓은 규칙을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언제든지 무시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아이려니 한 생각이 가져올 문제는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뉴스를 통해서 많이 보고 들어 왔을 것이다.
어떤 선택이 아이들을 위해서 옳은 선택인지 밖을 나서기 전에 한 번쯤 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친구들은 나를 보면서 한 마디씩 던진다.
"너는 기다릴 거지? 우린 먼저 간다!"
친구들에게는 신호등의 역할이 무색할 만큼 차가 오지 않으면 빨간불이든 녹색불이든 상관없이 길을 건넌다.
친구들에게 길을 건널 때는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지금 현재 길에 차가 다니고 있는지 없는지에 의해서 길을 건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한다.
길을 건너자마자 녹색불로 바뀐 경우들도 여러 번 있었고, 신호가 바뀌는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린다고 해도 5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참지 못해서 친구들은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한다.
어느 날은 친구들이 빨간불에 길을 건너는 것을 보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친구들을 따라 하나둘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그날은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내가 바보처럼 보였던 날이었다.
"으휴 답답이!"
그날도 친구들은 나를 향해 지금 남편이 나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내 던졌다.
옳고 그름의 사이가 사람의 머릿수로 계산되고 평가되는 그런 날이었다.
무단횡단이 습관이 되었던 친구들은 결국에는 교통경찰에게 벌금 2만 원. 3만 원을 내고서야 잠시 동안 무단횡단을 하지 않았다.
어떤 친구는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무시 한 체 무단횡단을 했기에 2만 원의 벌금을 지불했고, 다른 친구는 횡단보도가 없는 길을 건넜기에 3만 원의 벌금을 지불했다.
대학교 때의 2~3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대학가 호프집 안주가 3,900~5,900 하던 때였으니 말이다.
사회가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지 않고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두 번은 실수로 넘어갈 수 있지만 습관이 돼버린다면 그것에 대한 대가는 꼭 나타나게 된다.
남편과 외출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는 융통성 없는 답답한 나에 대한 불만을 가득 안고 끝이 났다.
남편은 답답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불만이라는 감정을 어깨에 한가득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회의 규칙을 지키고자 하는 나와 눈치껏 나가자는 다수인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소수인 내가 바보 같은 답답이로 보이지만, 빨간불에 건너던 사람들을 따라 건너지 않고 꿋꿋이 녹색신호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렇게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안겨준 실망이라는 감정, 남편에게 안겨준 불만이라는 감정은 옳고 그름의 선택에서 나온 감정이기에 지금의 선택이 옳다고 알아차린다면 금방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구성원 하나하나가 강한 자아를 가진 성숙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책 내용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