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주인 발자국 소리 들으며 자란다는 작물들 크는 소리가 아닌, 어린잎을 갉아먹는 애벌레, 달팽이? 입질 소리가 은밀하게 울리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142번 텃밭은.. 조금 볼품없는 모습으로 가고 있다. 가을 재배의 백미는 김장무우와 배추인데, 올해는 글런 것 같다.
일단 주인이 작년만큼 의욕이 넘치지 않고, 기대했던 금화 씨(연변녀) 밭에서 나눠 온 무 모종이 시들시들이다. 무는 옮겨 심는 게 아니라더니 정말 그런 것일까.
파종한 서울배추도 제대로 올라오지 않았고, 그나마 듬성듬성 올라온 것은 벌레들 잔치 음식으로 전락했다.
얘들도 시원찮다.
작년의 것들은 분명 비료의 힘이었나 보다.
갑자기 건너와 비료가 남았다고 뿌려주고 간 낯선 이웃 덕분에 텃밭 원년에 뜻하지 않은 김장까지 했다는 사실. 내 손으로 땅에 비료 뿌리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아 좋다는 참깨 깻묵(발효도 안 시키고)을 나름 슬슬 섞어 놓긴 했지만 화학비료에 비할바는 아니었나 보다.
그럼에도
꽂은 대로 모두 올라와 못자리 벼처럼 송송 자라고 있는 쪽파는 있다. 솎아야 할 지경이지만 파장, 파전, 파김치를 생각하면 양이 두렵지 않은 유일한 작물이다. 맵싸한 파향이 해충을 얼씬 못하게 하는 것일까. 역시 냄새는 힘이 세다.
그리고 늦깎이 땅콩들.
함께 있으면 좋다고 해서 토마토 사이에 그냥 심어놨었는데 파트너가 빠지자 지 세상을 만난듯 뒤늦게 풍채가 벌어지고 있다. 안 심었으면 어쩔뻔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나마 텃밭 모양새 유지에 도움이 되고 있으니 뜻밖의 수확, 에 대한 꿈까지 몽글몽글이다.
이것은...
금화 씨가 준 무 모종 중 그나마 조금 자란 것인데, 여기 또한 벌레들 잔치로 줄기만 남기 일보직전이다. 사진을 올리고 보니 찍을 때는 발견하지 못한 보호색을 띤 벌레 한 마리를 본다!
오호라, 네가 잎을 난도질하고 있는 열무벌레인가 보구나.
배고픈 애벌레, 딱 그 모습이군.
얼마나 쉼 없이 갉아먹었는지.. 참깨벌레처럼 윤기가 반질반질하지는 않지만 퉁퉁한 건 마찬가지다.
밭일이 습관인 노모 말씀으로는 벌레를 손으로 잡고(당신이 그랬듯), 감식초를 뿌려대면 잎이 새로 올라올 거라는데. 잎이 아니라 뿌리를 먹으려 한 것인데, 그럼 더뎌서 김장무가 땅에 들기나 할까.
올해는 날씨 때문인지 다른 밭들도 가을재배가 시원찮은 곳이 많다. 그럼에도 잘 되는 곳의 특징은 벌레의 접근이 아예 허락되지 않을 정도의 작물의 등등한 기세가 있고, 그 배경에는 부지런하고 열의 가득한 주인의 발길과 손길이 있다. 키우는 재미 일 것이다.
키우는 재미보다 크는 것을 보는 재미가 좋다는.. 알쏭달쏭한 생각이나 하는 초보텃밭인은 그래도 갈 때마다 찬거리가 있는 텃밭이 여전히 놀랍고 신기하고 고맙다.
매를 데리고 나갔을때(...)
사람들이 나를 세우고는 '그게 길들었니?' 하고 묻는다구요.
길드는 거 좋아하시네.
훈련을 받은 거 뿐예요.
매는 사납고 거칠다구요.
매는 아무도 상관 않아요.
저한테조차 별로 관심이 없어요...그리구 그게 바로 근사한 점이에요.
소설 [케스- 매와 소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