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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Nov 01. 2020

Ⅳ. 조율과 조화로 완성되는 이미지

‘흑기사’ 장미희 '배키 스타일'의 탄생


고증과 재해석은 사극이나 시대극뿐 아니라 전 장르에 모두 적용된다. 의상감독은 완벽한 고증, 설득력 있는 재해석을 위해 연출 감독, 촬영 감독, 미술 감독과 같은 긴밀하게 소통한다. 그러나 의상을 입는 주체인 배우와 같은 비전을 공유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완벽한 설정으로 만들어진 의상도 빛을 잃게 된다.  


‘흑기사’(KBS2, 2017, 2018년)는 배우가 캐릭터의 완성에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각인했다. 작품 속 캐릭터 이미지가 연출가의 일방적 지시 혹은 의상 감독의 전권 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연출가의 진두지휘 아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 의상 전담자, 배우 모두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조율이 필요함을 입증했다.   

 

‘흑기사’는 종편과 케이블이 잇따라 화제작을 쏟아내는 가운데 이례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지상파 드라마다. 6.9%로 소위 ‘쪽박’은 아닌 아슬아슬하게 한 자릿수 후반에서 시작해 5화에서 10.4%로 가뿐하게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다시 한 자릿수를 떨어져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20회에서 13.9%로 꽤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며 끝을 맺었다.      


판타지 로맨스 ‘흑기사’는 문수호(김래원)를 사이에 두고 정해라(신세경)과 최서린 샤론(서지혜)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뻔할 수 있는 삼각관계 로맨스가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올린 데는 샤론과 장백희(장미희)의 워맨스 조합이 결정적이었다. 죄를 지어 형벌로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영원의 삶을 사는 샤론과 장백희가 마치 여성 버디 무비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장미희는 ‘배키 스타일로’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끌었다. 58년생인 그는 방영 시점인 2018년 60세의 중장년층이었지만 3,40대 층은 물론 20대층에게까지 폭넓은 관심을 받았다.      


배키 스타일 블랙의 변주      

  

흑기사(KBS2, 2017, 2018년)


런웨이에나 오를 법한 컬렉션 피스가 주를 이룬 극 중 장백희 패션은 장백희는 물론 장미희의 부를 과시하는 듯 여겨질 수 있었다. 그러나 위트와 진중함을 적절하게 조합하고 여기에 깜찍함까지 더한 장미희의 연기는 위화감을 줄 수 있는 의상에 절묘한 균형감을 부여해 ‘배키 스타일’이라는 키워드를 만들어냈다.     

   

배키 스타일은 매 회가 새로워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앞서 스릴러 속에서 악마적 권위의 상징으로 해석된 블랙이 장백희에게 넘어와 ‘포용의 권위’로 탈바꿈하는 장면은 더욱 흥미롭다.  

     

장백희의 블랙은 좀 더 정확하게 ‘블랙 아방가르드’다. 스타일리스트 조윤희 실장은 “장백희는 극 중에서 사건 해결사 같은 역할을 한다. 극 말미에 블랙이 등장한 것은 최서린이 사라지면서 심리적으로 가라앉은 그런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라며 말미에 블랙 컬러가 많이 등장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른 배우들이 입었으면 다소 과했을 법한 디자인들이었지만 장미희는 웅장한 오페라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장면마다의 이야기를 좀 더 풍성하게 해 몰입도를 높였다.    

  

기억을 되찾은 최서린이 문수호를 향한 목숨을 건 집착을 이어가자 최후통첩을 하기 위해 샤론 양장점을 찾을 당시 입었던 와일드 숄더의 블랙 코트, 문수호가 칼을 맞고도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를 찾기 위해 은장도를 갖고 주얼리 가계를 방문할 당시 입었던 오리엔탈 스타일 퍼 칼라 코트는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아우라를 발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감정 선에서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더는 미룰 수 없어 결판을 내리려 하는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판사와 같은 단호함이, 후자는 마지막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드라마 말미에 유일하게 웃음을 준 문소호와 정해라 결혼식 장면 역시 장백희가 제사장을 연상케 하는 의상으로 재미가 극대화됐다.       


조윤희 실장은 “전통혼례로 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현대 의상으로 전환됐다”라며 “전통 혼례에서 주례 역할을 했던 사람이 갓을 쓰는 상황을 떠올리고 그런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의상 역시 현대식으로 재해석했을 때 어깨 라인이 강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 이 의상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스타일링을 결정한 중요한 요소는 장백희의 배경이었다. “250년 산 사람이고 보부상을 하면서 세계 문물을 경험하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물이었던 만큼 이 모든 걸을 통합할 수 있는 이미지로 제의를 관장하는 제사장 느낌을 내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배키 스타일 배우 작가 스타일리트, 워맨스 합작품      



‘배키 스타일’로 불리는 독보적 패션은 장미희를 축으로 작가 김인영과 스타일리스트 조윤희 실장의 짧지 않은 인연이 만들어낸 워맨스 조합의 결과물이다.      


스타일리스트 조윤희 실장은 방영 당시 ‘장미희 패션’이 화제가 된 2010년 작품 SBS ‘인생은 아름다워’ 이전부터 작업을 함께 해왔고, 작가 김인영은 장미희의 연기 변신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는 2015년 작품 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 이후 두 번째 만남으로, 장미희의 숨겨진 매력을 끌어내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완벽한 파트너들이다.      


조윤희 실장은 “전체적으로 아방가르드 스타일이 콘셉트”라며 말문을 연 후 “(김인영) 작가 글이 섬세합니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 때 함께 한 적이 있어 (장미희) 느낌 잘 표현해주죠. 작가에 대한 신뢰가 있어 이번 작품에서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배우 장미희가 입어서 새로운 것은 물론 더 다양하게 변신할 수 있는 것을 작가가 줍니다. 김인영 작가가 쓰는 글을 보면 섬세한 것들이 많은데 섬세한 것을 캐치해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라며 김인영 작가가 극본에서부터 장백희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음을 밝혔다.     

  

그렇다고 작가의 대본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조윤희 실장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장미희가) 패션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더욱이 안 해봤던 캐릭터로, 옛날부터 현재까지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시대와 그에 걸맞은 패션까지 (장미희도) 직접 참여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디테일도 세세하게 다 공유하면서 진행했습니다”라며 배키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장미희가 쏟은 노력을 언급했다.      


‘흑기사’ 장백희 캐릭터는 기성복으로 해결될 수 없는 수많은 극적 요소들을 함축하고 있다. 그만큼 스타일 콘셉트를 잡고 상황 상황에 맞는 디자인을 찾아내야 하는 스타일리스트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조윤희 실장은 이를 위해 협찬에 제작은 물론 장미희 개인 소장 옷까지 가능한 모든 것을 총동원했다. 이뿐 아니라 현장에서 옷매무새를 완결하는 스타일리스트 최세나 팀장의 역할도 크다는 것이 조윤희 실장은 물론 장미희의 전언이었다. 이처럼 ‘흑기사’ 베키 스타일은 서로를 잘 아는 여자들이 모여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비주얼 시대인 21세기인 현재, 흑기사는 역할 몰입을 위해서는 배우에게 연기력은 물론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패션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셀러브리티터로서 패션력이 아닌 극 중 캐릭터가 돼야 하는 배우로서 패션력은 연출가, 작가, 의상 담당자 모두가 작품을 위해 대화하고 최적의 해결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함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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