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ny afternoon - benny sings
아버지의 드림카는 제너시스다.
내가 기억하는 아주 오랜 기억부터 내가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될 무렵까지 아버지는 카렌스로 나와 언니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엄마와 함께 사무실로 출근했다. 차 시트는 보들보들하고 먼지가 아주 잘 붙는 재질이었다. 뒷좌석에 3명이 탈 수 있긴 하지만 성인 세 명이 타기에는 좁고 어린이 세 명이 앉으면 적당한, 합리적인 크기의 차였다고 기억한다. 아빠의 카렌스는 노란색이 섞인 갈색이었는데 좋아하는 색이 아니었다.
주유소에 가면 LPG, 휘발유의 차이는 모르지만 아빠차는 LPG를 넣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LPG가 연료라는 건 알지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고, 그냥 자동차의 밥이라는 걸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끔 가스 누출로 일가족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뉴스보도를 들을 때면 익숙한 아빠차여도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위기감이 들었다. 당시 위기탈출 넘버원이라는 프로그램, ‘무서운 게 딱 좋아’ 만화가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때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운 좋게 화목한 가정에 태어나서 위기감을 알지 못하는 어린 초등학생은 공포라는 감정을 잘 몰랐고, 그땐 무서운 게 우연한 사고사, 그 정도였다.
아빠는 종종 하교를 마친 언니와 나를 데리고 업체에 납품을 가고는 했는데, 납품업체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는 게 지루해지면 경적을 울리고 싶었다. 옆자리에 앉은 언니의 적극적인 만류로 경적을 직접 울려본 적은 없다. 지금도 그때의 카렌스 경적 소리 같은 건 기억나지 않지만, 요즘 도로 위의 세련되고 경박한 빵- 소리보다 조금 바람 빠진, 정중한 뿽… 소리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언니가 중학생이 됐을 무렵, 아빠의 차는 산타페 2세대였다. 나는 이 차의 외형을 가장 좋아했다. 모서리가 동그란 눈, 동글동글한 덩어리의 형태.
왠지 모르게 포카리스웨트가 연상되는데, 이전 카렌스와 달리 차고도 높고, 뒷좌석에 타려면 발 받침대를 밟고 올라가야 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좀 더 시야가 높아졌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늘 근교로 나가거나 할머니 집, 외할머니 집을 방문하곤 했는데, 외할머니 가는 길에는 늘 어르신 가로수들이 높다랗게 일렬종대하고 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드라이브 코스였다. 할머니 집을 청소하고, 같이 점심을 먹고 tv를 보다가 산타페를 타고 1시간 거리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면 토요일 하루가 지나갔다. 일요일에는 집에서 늦게까지 늦잠을 자거나, 날씨가 좋은 날엔 축제를 찾아 여기저기 쏘다녔다. 봄이면 봄 축제 현장, 가을이면 가을 축제 현장을 가고, 여름과 겨울엔 등산을 했다. 정상까지 올라간 날이면 뒷좌석에 앉아서 금방 잠들었다.
앞 대각선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선글라스를 쓰고 글로브박스에 발을 얹고 두통을 호소했다. 슈퍼나 약국에 들어가 타이레놀이나 게보린을 반투명한 비닐봉지에 담겨있다. 아빠는 종이박스를 열고 타이레놀 두 알을 엄마 손바닥에 건네줬다. 뒷 좌석에 앉은 언니는 생수 뚜껑을 까서 엄마에게 건넸다. 오랜 시간 차를 타고 외출한 해가 쨍쨍한 날은 엄마는 열에 아홉은 편두통을 호소했다. 엄마의 핸드백 속에는 늘 타이레놀이나 게보린이 있었으나, 다 먹은 걸 잊고 두통이 발발하면 기억 속 이날과 같이 약국이나 슈퍼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 생각하기로는 엄마는 구강건강도 선천적으로 약한 편이라, 구강에 관련된 신경통과 편두통이 아니었나 싶다. 애 둘을 데리고 남편과 외출을 하는 날에는 이리저리 신경 쓸 게 많으니 말이다.
아빠는 운전을 굉장히 자주, 오래 하셨다. 그만큼 세차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언니가 중고 아반떼를 몰고 집으로 오면 늘 손수 세차하신다. 언니의 아반떼가 흰색이라 물때가 잘 보이는 편이긴 하지만 내가 봤을 때도 언니의 차는 늘 아빠의 차보다 깨끗하지 않다. 물론 언니도 차를 깨끗하게 쓰는 편이라는 건 알지만, 평생 대부분을 아빠차를 타 본 나로서는 차를 관리하는 게 얼마나 정기적이고 애정 어린 손길이 필요한 일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빠가 제너시스를 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빠의 재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아빠는 늘 우선순위가 가족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사치재에 큰 투자를 한 적이 없다. 지난주에 가족들과 양꼬치를 먹고 집에 가는 길에 아빠가 흘리듯이 말했다.
“나는, 제너시스를 타보고 싶어.”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여러 스파크, 엑센트, 티볼리, 투싼, 쏘렌토, 올란도, 모닝, 산타페, 벤츠 사이에서 아빠가 가지고 싶은 차종을 알게 된 건 드물게 신기한 일이었다. 엄마는 “탈 수 있지, 타. 근데 자기가 안 사잖아. “라고 반응했다.
이건 나의 바람인데 내가 아빠에게 아빠의 드림카를 선물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빠가 살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가족들이 해보고 싶은 것을 채워주느라 바빴던 아빠가 그냥 선물로 누군가에게 툭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