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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May 03. 2024

태양의 서퍼.

child - mark

꿈이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에 꿨던 꿈을 이루는 과정 중에 겪은 한 번의 실패가 궤도 밖으로 벗어나버린 완전한 이탈이라고 생각했다. 꿈의 상실이 빚어낸 결과였다. 나는 이유를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왜 나는 안 되고 쟤는 된 건지. 이유를 알게 되면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그에 대답을 노력과 능력에서 찾았고, 내가 가진 한계를 탓했다.

탓하는 건 그때 한 번이면 족한데, 나의 부족에 대한 후회나 자책은 메아리처럼 저 산봉우리에서 다른 산봉우리로, 그리고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오르던 산등성이를 타고 다시 내려오면서 나는 ‘이제 정상까지 못 갈 바에는 산은 쳐다보지도 않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래, 노력해 봤자.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될 텐데 뭐 하러 그렇게 고생하고 살아, 적당히 내 몸 챙기면서 잠도 잘만큼 자고, 인생도 즐겨야지.


염세적이고 회의적으로 변한 나는 노력보다 운이 생을 좌우한다고 믿게 됐다. 사회에서도 능력주의의 환경 형평성에 대한 책이 나왔고, 괴로움에서 벗어날 즈음엔 나는 이미 불공평한 세상에서 무얼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고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그리 나쁜 일도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추구하는 바가 꼭 있어야 하고, 그걸 향해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부모 밑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 내내 내가 가져야 할 단 하나의 꿈에 대해 늘 진지하게 생각하며 노력해 왔다. 어렴풋이나마 가지고 있던 그 꿈이 늘 옳다고 믿으면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내가 상상하며 그려온 삶의 궤적이 뒤틀리는 경험을 하고 보니 내가 가진 꿈에 대한 믿음이 그거밖에 안 됐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 간절함, 내가 가진 간절함의 크기가 남들보다 작다는 사실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대체 꿈이란 게 뭔데,

나는 꿈이 없는 친구들을 보면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 관심 가질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들 그리 무표정하게 심심하게 누워있는 거야. 아무거나 골라잡아도 꿈이 있게 되는 건데 왜 삶을 낭비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가진 꿈이 가장 형식적이고 별거 아니란 걸 깨닫고 나니 나도 꿈이란 걸 찾지 못한 사람에 불과했단 걸, 가장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범하고 싶었으나 평범하고, 꿈을 꾸고 싶었으나 늘 검은 꿈만 꾸고, 그게 꿈이라고 믿는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꿈이 없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부모를 실망시키기 싫은 아이였을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더 이상 큰 뜻을 두고 노력할 일이 없어졌다.

될 대로 되라지. 불안감 속의 느슨함을 마음껏 누렸다. 인생의 파도타기를 즐기기보다 깊이 잠수하는 걸 배우게 됐다.


가끔은 큰 파도를 잡아탄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웠다. 짜증 났다. 내가 잡지 못한 파도 위를 시원스럽게 타고 균형 잡는 사람들. 세상엔 멋진 서퍼 투성이다.

속으로 한번 크게 넘어져봐라, 그런 생각도 했다. 정말이지 흉내를 잘 내는 서퍼도 언젠가는 끝이 나는 파도 끝자락에서 넘어졌으니까.

세상엔 어차피 다 흉내쟁이들 뿐이야. 그런 흉내쟁이들은 운이 좋은 것이지, 대부분이 다 그래. 노력을 하긴 하지만 늘 끝이 있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역시 진짜는 없지… 생각했다.


어떻게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할지 난감했다. 언제까지나 혼자만의 세상에 깊이 잠수해 있을 수는 없었다. 내 몸은 5년간의 느슨함으로 좋게 말하면 편안한 상태인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부교감신경이 항진된 상태였다. 전신 근육을 활용해 발차기를 하며 기포를 만들었다.

마침내 수면 위로 나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 코 끝의 시큰함이 고통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꼭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럴 때면 다시 적어도 수면 위에 동동 떠있기라도 하자는 결심을 한 순간을 되새겼다.

가장 멋진 서퍼를, 태양보다 환한 후광을 가진 매력적인 서퍼를 발견한 그 순간을.



꿈꾸는 사람의 눈은 아름답다. 입에 발린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정말 말 그대로 초롱초롱하고 밝게 빛난다. 자신이 발견한 이상을 좇고, 하루하루의 목표를 되새기고, 신념을 가지고 추구하는 사람은, 그 기운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진다. 말로, 행동으로, 손짓으로, 발걸음으로, 온몸으로.

모두가 생각하는 서퍼의 이상적 자질은 단지 시선만 끌었을 뿐, 정말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태도였다.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해낼 수 있다는 걸 믿게 되기까지 어떤 순간들을 보내게 된 걸까.

상황이 늘 그에게만 긍정적인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늘 한결같은 태도로 노력할 수 있을까.

어떻게 늘 삶에서 좋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건지..

그 믿음이 궁금해졌다. 솔직히 살다가 헛발 디디면 ‘그래. 그럴 줄 알았지. 정말 그런(꿈꾸는) 사람은 없어, 안 그런 척할 뿐이지 다들.’이라고 받아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서퍼는 계속해서 첫 번째 파도를 올라타고 있고, 균형을 잡으며 완벽한 코어를 뽐내고 있었다. 10년째.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위안 삼으며 살던 내가 왜 그렇게 무기력하고 슬펐는지, 그 답을 알려줬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왜 그렇게 나는 좌절한 건지. 노력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건데 그걸 잊고 있었다. 아무리 물을 먹고 힘이 빠져서 몸이 무거워져도 바라는 게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걸 믿는 게 삶의 무한동력이 된다. 번아웃이 올 수도 있지만, 언제든 다음 파도를 잡아타면 된다.


더 이상 흉내쟁이들을 비웃지도 않는다. 몰라서 그러는 건데, 그게 뭐 어때서.

흉내조차 내지 않고 가라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묻지도 않는다. 인생의 목표 같은 거 원래 없는데 왜 주눅 들어있어야 하는 건가.


내가 가진 꿈이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일 뿐이더라도 언젠가는 정말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그날, 최선을 다하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있는 게 요즘 삶인 것 같다.

하면 된다는 걸 믿고, 하고 싶은 걸 하고 해야하는 것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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