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패트릭 네스의 <몬스터 콜스>

영화 <몬스터 콜>  2017년

by 노용헌 Mar 09. 2025

영국 판타지 소설 몬스터 콜스를 바탕으로 원작자 패트릭 네스가 각본작업에 참여하고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이 연출했다. 영상미 외에도, 페르난도 벨라즈퀘즈의 아름다운 사운드트랙이 일품. 밴드 Keane이 'Tears Up This Town' 으로 OST에 참여했다.   

  

묘지 한가운데에 솟은 거대한 주목도 보였다.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교회와 똑같은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나무였다. 코너는 엄마가 말해 주었기 때문에 그게 주목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코너가 어렸을 때 엄마는 주목을 가리키며 열매에 독이 있으니 먹지 말라고 처음 말해 주었고, 작년에도 엄마는 이상한 표정으로 부엌 창밖을 내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저게 주목이야.”

그때 코너 이름이 다시 들렸다.

코너.

코너의 양쪽 귀에 바싹 대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뭐야?”

코너가 말했다. 가슴이 쿵쿵거렸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고 초조했다.

구름이 달을 가려 사방이 컴컴해졌다. 씽하는 바람이 언덕 위에서 코너의 방으로 불어 들어와 커튼을 흩날렸다. 또다시 끼익거리고 삐걱거리는 나무 소리가 들렸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신음하는 소리였다. 세상의 텅 빈 배 속이 밥을 달라고 우르릉거리는 것 같았다.

그때 구름이 지나갔고 다시 달빛이 비쳤다.

주목 위에.

주목이 어느새 코너의 집 뒷마당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그게 몬스터였다.

코너의 눈앞에서, 나무의 위쪽 가지가 모여들어 거대하고 끔찍한 얼굴이 되고, 번득거리며 입과 코를 이루더니, 코너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까지 생겼다.               (P14-15)  

   

그때 몬스터가 입을 열었다.

코너 오말리.

몬스터가 말했다. 뜨뜻한 두엄 냄새가 나는 입김이 코너의 창문으로 거세게 확 불어와 코너의 머리카락을 날렸다.

몬스터의 목소리는 낮고 우렁찼으며 어찌나 깊이 울리던지 코너의 심장이 떨릴 지경이었다.

널 데리러 왔다. 코너 오말리.

몬스터가 벽을 밀며 말했다. 코너 방 벽에 걸린 사진이 흔들리고 책과 전자 제품과 낡은 코뿔소 인형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몬스터야.’

코너는 생각했다. 진짜 몬스터였다. 실제 현실에, 꿈이 아니라 여기 코너의 방 창문에 몬스터가 나타났다.

코너를 데리러 왔다.

하지만 코너는 도망치지 않았다.

사실은 겁에 질리지조차 않았다.

다른 느낌은 하나도 없었고,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낸 뒤로 코너 마음속에서는 줄곧 실망감만 점점 커졌다.

코너가 기다리던 몬스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와서 데려가.”

코너가 말했다.                     (P18-19)     

한 블록, 한 블록 더 가자 코너의 집이 나왔다. 작긴 해도 단독 주택이었다. 이혼할 때 엄마가 요구했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그 집을 엄마와 코너 것으로 해 주고 아빠가 새 아내 스테파니와 같이 미국으로 떠난 뒤에도 그 집에서 나가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 6년 전의 일이었다.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이따금 집에 아빠가 있었던 게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건 아니다.

코너는 집 너머 언덕과 구름 낀 하늘 위로 솟은 교회 뾰족탑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잠든 거인처럼 묘지 위로 솟은 주목도.

코너는 주목을 일부러 뚫어지게 보았다. 그냥 나무일 뿐이라는 것. 기찻길 옆에 늘어선 다른 나무들과 다를 바 없는 그냥 나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무, 그냥 나무일 뿐이다. 언제나 그랬듯 나무이다.

코너가 보고 있던 나무가, 햇살 속에서 거대한 얼굴을 쳐들더니 코너를 보고 팔을 뻗으며 불렀다.

코너.

코너는 순간 뒤로 물러서다가 길 위에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으나 주차된 차 보닛을 겨우 붙잡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다시 그냥 나무였다.                      (P43-44)     

몬스터가 있었다. 맑고 환한 밤처럼 또렷하게, 10미터, 15미터 높이로 솟아, 밤공기 속에서 거칠게 숨을 쉬는 몬스터였다.

“이건 꿈이야.”

코너가 다시 말했다.

코너 오말리, 하지만 꿈이 뭔가? 이거 말고 다른 모든 것들이 꿈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나?

몬스터가 몸을 숙여 코너에게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며 말했다.

몬스터가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몸에서 나무가 끼익거리고 삐걱거리고 벌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또 나무 근육 같은 것 안에서 거대한 쇠밧줄처럼 얽힌 가지가 계속 꼬이고 다 같이 움직이며 내는 힘이 느껴졌다. 두 팔은 거대한 몸통에 이어져 있었고 몸통 위에 몬스터의 머리와 코너를 한입에 씹어 삼킬 수 있는 이빨이 있었다.

“넌 뭐야?”

코너가 몸을 더 세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나는 ‘뭐’가 아니다. 나는 ‘누구’이다.

몬스터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넌 누구야?”

코너가 말했다.

몬스터 눈이 벌어졌다.

내가 누구냐고?

몬스터가 말했다.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누구냐고?

몬스터가 코너 눈앞에서 자라는 것 같았다. 점점 커지고 넓어졌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소용돌이처럼 둘을 감쌌고 몬스터는 팔을 넓게 벌렸다. 그 길이가 어찌나 긴지 두 팔이 반대편 지평선에 닿고, 세계를 전부 다 싸안을 것 같았다.                  (P48-49)    

 

몬스터는 코너가 비명을 지를 때까지 손아귀를 꽉 쥐었다.

난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면 아무 때나 걸어오지 않는다. 내 말을 새겨들어라.

몬스터가 꽉 쥔 손을 풀었고 코너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래서 나하고 뭘 할 거야?”

코너가 물었다.

몬스터는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바람이 잦아들었고 정적이 내려 앉았다.

이제야 눈앞의 문제를 이야기하게 됐군. 내가 걸어온 까닭을.

몬스터가 말했다.

코너는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웠고 긴장됐다.

코너 오말리. 나는 앞으로 또 너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네게 세 가지 이야기를 해 줄 거다. 내가 전에 걸었을 때의 이야기다.

몬스터가 말을 이었다.                    (P53)    

 

나를 걷게 만들 만한 말을 했다. 나는 부당함을 보면 안다.

몬스터가 말했다.

왕손은 다가오는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새 왕비가 내 신부를 죽였다! 새 왕비의 악행을 막아야 한다!”

왕손이 소리쳤지.

새 왕비가 마녀라는 소문이 돈 지 오래되었고 왕손은 백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빤한 사실을 금세 알수 있었지. 게다가 위대한 녹색 사나이가 언덕처럼 우뚝 솟아 왕손 뒤에서 복수를 하기 위해 걷는 것을 보았으니 더더욱 그랬다.

코너는 몬스터의 엄청난 팔다리와 거친 이빨,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기괴한 모습을 다시 흘긋 보았다. 새 왕비가 이 몬스터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해 보았다.

코너는 웃음을 지었다.

성난 백성들이 새 왕비의 성으로 몰려가 돌로 된 성벽을 무너뜨렸어. 방벽이 무너지고, 천장이 내려앉고, 군중은 새 왕비를 침실에서 끌어내어 산 채로 불태우기 위해 화형대로 끌고 갔지.

“잘됐네, 그래도 싸지.”

코너가 웃으며 말했다. 코너는 외할머니가 자고 있는 자기 방 창문을 바라보았다.

“외할머니 문제도 네가 도와줄 수는 없겠지? 아니, 산 채로 불태우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냥 단지.....”

코너가 물었다.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몬스터가 말했다.                     (P82-83)     

왕국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했다. 새 왕비는 마녀이고, 선왕도 결혼할 때 마녀일지 모른다고 의심했지만 새 왕비가 너무 아름다워서 모른 척했다고 했다. 왕손은 혼자 힘으로는 강력한 마녀를 쓰러뜨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분노하여 도와주어야 했다. 농부 딸의 죽음이 빌미가 될 수 있었다. 왕손에게도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 일이었지만, 자기 아버지도 왕국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으니 자신의 연인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농부 딸의 희생이 거대한 악을 무너뜨리는 발판이 될 것이라 했다. 왕손이 새 왕비가 자기 신부를 살해했다고 말했을 때, 왕손은 그 말이 자신에게는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여자를 죽일 필요는 없었어. 사람들이 왕손을 좋아했다며, 그러지 않았더라도 왕손을 따랐을 거야.”

코너가 외쳤다.

사람을 죽인 사람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말은 늘 의심스럽게 들어야 하지. 내가 부당함을 보고 걷게 된 까닭은 왕손이 아니라 새 왕비 때문이었다.

몬스터가 말했다.

“왕손이 저지른 일은 밝혀졌어? 벌을 받았어?”

코너가 충격을 받은 듯 멍하게 물었다.                           (P89)     

몬스터가 마침내 진정하고 말했다.

“그럼 왜 살려 줬는데?”

새 왕비가 살인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코너는 생각에 잠겨 마당을 서성거렸다. 조금 더 돌아다녔다.

“이해가 안 가. 이 이야기에서 그럼 누가 좋은 사람이야?”

항상 좋은 사람은 없다. 항상 나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

코너는 고개를 흔들었다.

“끔찍한 이야기야. 속임수이고.”

진실이지. 진실은 속임수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백성들은 자기들에게 걸맞는 왕을 갖게 되고, 농부의 딸은 억울하게 죽고, 때로는 마녀도 구원을 받지. 사실 그럴 때가 꽤 많아. 알면 놀랄 거다.

몬스터가 말했다.

코너는 다시 자기 방 창문을 흘긋 보며 자기 침대에서 자고 있는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래서 그게 어떻게 나를 외할머니한테서 구한다는 거야?”

몬스터는 몸을 죽 일으켜 세워, 높은 곳에서 코너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를 네 외할머니한테서 구한다는 게 아니다.

몬스터가 말했다.                       (P91)     

코너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고 가슴은 불타는 듯 얼얼했다.

악몽 속 상황과 비슷했다. 세상이 축에서 미끄러지는 부옇고 달뜬 느낌, 그렇지만 지금 이것은 코너 손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지금은 코너 자신이 악몽이었다.

바늘 가운데 가장 가는 초침이 갑자기 부러져 시계에서 떨어져 나와 양탄자 위에 튕기더니 벽난로 재 속으로 사라졌다.

코너는 추를 놓고 얼른 뒤로 물러섰다. 추는 가운데로 축 늘어져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시계가 돌아가면서 내던 윙 하는 소리와 똑딱거리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시곗바늘은 제자리에 단단히 얼어붙은 듯했다.

이런.

시계를 망가뜨렸다.

아마 엄마의 고물 차보다도 더 비쌀 것이다.

외할머니가 죽일 거다. 어쩌면 정말로, 실제로 죽일지도 모른다.

그때 뭔가가 코너 눈에 들어왔다.

시침과 분침이 어떤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12:07

파괴치고는 아주 한심하군.

몬스터가 등 뒤에서 말했다.

코너가 홱 돌아보았다.

몬스터가 외할머니 집 거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물론 몸집이 너무 컸기 때문에 천장 아래에 들어서기 위해 몸을 아주아주 낮게 굽히고 있어야 했다. 가지와 잎은 단단하게 서로 얽혀서 줄어들어 있었지만, 아무튼 여기 있었다.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어린아이가 할 만한 파괴 행위지.

몬스터가 말했다. 몬스터의 숨결이 코너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여기에서 뭐 하는 거야? 내가 자고 있는 거야? 이거 꿈이야? 네가 내 방 유리창을 깼을 때도 깨어나 보니.....”

코너가 물었다. 갑자기 희망이 솟는 걸 느꼈다.

너한테 두 번째 이야기를 하러 왔다.

몬스터가 말했다.                          (P130-131)     

“제 딸들을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무 죄 없는 제 딸들을 보아서라도 도와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목사는 약제사의 집 문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당신 설교 때문에 내 일이 어려워졌소. 치료제를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주목도 주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소.”

약제사가 물었다.

“주목을 가져도 좋습니다. 당신을 칭찬하는 설교를 하겠습니다. 신도들이 아프면 언제나 당신께 보내겠습니다. 원하는 것 무엇이든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제 딸들의 목숨을 구해 주시기만 한다면.....”

목사가 말했다.

약제사는 놀란 얼굴이었다.

“당신이 믿는 것을 모두 포기할 수 있소?”

“딸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포기하겠습니다.”

목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소.”

약제사가 목사 코앞에서 문을 쾅 닫으며 말했다.

“뭐라고?”

코너가 말했다.

바로 그날 밤, 목사의 두 딸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P144-145)    

 

치료의 절반은 믿음이다.

코너는 여전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고 뒤틀렸던 속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엄마는 코너가 조금 누그러진 걸 알아차리고 팔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있어. 우리 집 뒤 언덕에 있는 나무 기억해?”

엄마가 약간 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코너 눈이 동그래졌다.

“흠, 믿기 어렵겠지만 말이야. 이 약은 주목으로 만든 거란다.”

엄마가 코너의 놀란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주목이요?”

코너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오래전에 병이 처음 생겼을 때 주목으로 만든 약이 있다는 글을 읽었어.”

엄마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다. 그리고 또다시 기침을 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오게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내내 우리 집에서 주목을 볼 수 있었다는 게 그저 신기하게 느껴져. 바로 그 나무가 나를 치료해 줄 수 있다는 게 말이야.”

코너 머릿속이 빙빙 돌았다. 어찌나 빨리 돌던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 세상 식물들이란 정말 신비롭지 않니?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식물을 없애기만 하고 있는데 우리를 구해 주는 게 바로 식물들이라니 말이야.”

엄마가 계속 말했다.

“그게 엄마를 구해 줄 거예요?”

코너는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엄마는 다시 웃었다.

“그러길 바라지. 그러리라고 믿어.”

엄마가 말했다.                        (P174-175)

    

콴 선생님이 코너를 교실로 데려다 주었다. 가는 길에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 둘은 코너가 지나가자 복도 쪽으로 물러섰다.

코너가 교실 문을 열자 교실이 조용해졌다. 코너가 자기 책상으로 가는 동안 콴 선생님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코너 옆 책상에 앉은 릴리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코너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온종일 아무도 코너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있다.

몬스터가 한 말이 옳았다.

코너는 더 이상 안 보이지 않았다. 이제 모두 코너를 의식했다. 그렇지만 코너는 전보다 더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있었다.                   (P211)     

엄마가 작은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너한테 솔직히 말하려니 정말 화가 난다. 그렇지만 네가 이걸 알았으면 해, 코너. 정말 중요하니까 내 말 들어. 듣고 있니?”

엄마가 다시 손을 뻗었다. 잠시 뒤, 코너는 엄마에게 손을 내주었다. 하지만 엄마의 손힘은 아주아주 약했다.

“필요한 만큼 화를 내도 돼. 아무도 너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할 수 없어. 외할머니도, 네 아빠도, 그 누고도, 뭔가를 부숴야 한다면, 부디 제대로 속 시원히 부숴라.”

엄마가 말했다.

코너는 엄마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에 언젠가, 이때를 돌아보고 화를 냈던 것에 대해 후회가 들더라도, 엄마한테 너무 화가 나서 엄마랑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던 게 후회가 되더라도, 이걸 알아야 한다. 코너, 그래도 괜찮았다는 걸 말이야. 정말 괜찮았다는 걸. 엄마가 알았다는 걸. 엄마는 안다, 알겠니? 네가 아무 말 하지 않더라도, 엄마는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알아, 알겠지?”

엄마는 이제 줄줄 울고 있었다.

코너는 그래도 엄마를 볼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고개가 천근만근이었다. 코너는 몸 가운데가 꺾인 것처럼 반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그렇지만 코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P222-223)     

“엄마를 고칠 수 없으면 네가 대체 무슨 쓸모가 있어? 바보 같은 이야기나 하고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하고 다들 내가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보게 만들었어!”   

코너가 주먹질을 하며 말했다.

몬스터가 코너를 들어 올려 공중으로 치켜들었기 때문에 코너는 말을 멈추었다.

나를 부른 사람은 너다. 코너 오말리.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것도 너다.

몬스터는 심각한 얼굴로 코너를 보며 말했다.

“내가 널 불렀다면, 엄마를 살리라고 부른 거였어! 엄마를 낫게 하려고!”

코너 얼굴은 붉게 타올랐고 코너도 모르는 사이에 분노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몬스터의 잎이 바사삭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느리고 긴 한숨처럼 나뭇잎을 쓸고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네 엄마를 낫게 하려고 온 게 아니다. 너를 낫게 하려고 왔다.

몬스터가 말했다.                    (P228)   

  

이 순간이 보통 코너가 잠에서 깨는 순간이다.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코너 손에서 빠져나가 떨어지고, 악몽에게 붙들려 심연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이 대개 코너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순간이다. 심장이 어찌나 거세게 뛰는지 심장이 터져 죽을 것만 같은 순간이다. 그렇지만 코너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여전히 그대로 악몽 속이었다. 몬스터가 뒤에 서 있었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몬스터가 말했다.

“여기서 나가게 해 줘, 엄마를 봐야 해.”

코너가 덜덜 떨리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엄마는 이제 여기 없다. 코너. 네가 엄마를 놓았다.

몬스터가 말했다.

“이건 꿈일 뿐이야. 진실이 아니야.”

코너가 헐떡이며 말했다.

이게 진실이다. 너도 그 사실을 안다. 네가 엄마를 놓았다.                (P244-245)

    

“어떻게 둘 다 진실일 수가 있어?”   

사람은 복잡한 짐승이니까. 어떻게 여왕이 좋은 마녀이면서 또 나쁜 마녀일 수가 있는가? 왕손이 살인자이자 구원자일 수 있는가? 약제사가 성질이 고약하면서도 생각은 바를 수 있는가? 목사는 생각이 잘못되었으면서 선할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게 되었을 때 더 외로워질 수가 있는가?

몬스터가 말했다.

“모르겠어. 네 이야기는 하나도 이해가 안 돼.”

코너가 지친 듯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 마음은 하루에도 수백 번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너는 엄마가 떠나길 바랐고 동시에 엄마를 간절히 구하고 싶었다. 너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면서도 마음을 달래 주는 거짓말을 믿은 것이다. 그리고 네 마음은 두 가지를 다 믿는 것에 대해 너를 벌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걸 물리쳐? 마음속의 다른 생각들을 어떻게 물리치냐고?”

코너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진실을 말해서, 지금 네가 한 것처럼.

몬스터가 말했다.

코너는 다시 엄마 손을 생각했다. 자기가 놓아 버린 손.

그만해라, 코너 오말리, 이게 내가 걸어온 까닭이다.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해서 너를 치유하기 위해, 너는 들어야 한다.

몬스터가 부드럽게 말했다.

코너는 다시 침을 삼켰다.

“듣고 있어.”

삶은 말로 쓰는 게 아니다. 삶은 행동으로 쓰는 거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네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코너가 숨을 고르는 동안 한참 침묵이 흘렀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해?”

마침내 코너가 물었다.                     (P254-255)     

그래서 코너는 그렇게 했다.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이자 완전히 진실을 말했다.

“엄마를 보내기 싫어요.”

코너가 말했다.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천천히 타고 내리더니, 이제 강물처럼 줄줄 흘렀다.

“알아, 내 아들, 알아.”

엄마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코너는 몬스터가 자기 몸을 떠받치며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 주는 걸 느꼈다.

“보내기 싫어요.”

코너가 다시 말했다.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코너는 몸을 앞으로 숙여 엄마를 안았다.

꼭 붙들었다.

코너는 그게 오리라는 걸 알았다. 어쩌면 곧 오는 12시 7분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꽉 붙들어도 소용없이 엄마가 코너 손에서 빠져나가는 순간이.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아니야.

몬스터가 여전히 곁을 지키며 속삭였다.

코너는 엄마를 꽉 붙잡았다.

그렇게 해서, 코너는 마침내 엄마를 보낼 수 있었다.                  (P270-271)


매거진의 이전글 디디에르 반 코웰레르의 <언노운>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