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J.T. Mitchell
Acknowledgments
이 책의 등장에 대해 감사해야 할 모든 사람들 중 일부는, 분명히 내가 충분히 감사할 수 없다. 톰 미첼(Tom Mitchell)은 단지 이 책의 주제가 아니며, 그는 이 책의 모든 기사들의 주요 주제만이 아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나의 지적인 계획과 학문적 경력 전체의 정신적 이동 중이었다. 우리가 2012년 뉴욕 대학교에서 열린 비주얼 컬처 나우(Visual Culture Now) 컨퍼런스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의 주요 임무는 2013년 가을 자그레브(Zagreb)에서 내가 공동으로 조직하고 있던 시각 연구(Visual Studies) 학술 컨퍼런스에 그가 올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두 번 사이에 몇 번 다시 만났고, 그가 크로아티아에 온 후에도 몇 번 만났다. 비록 우리가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그의 책과 기사를 지켜보았지만, 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그를 개인적으로 알고 난 후였다. 다른 경우에도 나는 항상 나의 전문적 관심사와 개인적 선호를 엄격히 구분하려고 노력했지만, 이 경우에는 그 패턴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내가 톰(Tom)을 만났을 때, 나는 그가 이런 책을 읽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이 책을 함께 쓰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떠오르는 다른 모든 것들을 제외하고, 나는 그것에 대해 주로 톰에게 감사하다. 이 책을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영광이다. 내가 또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는 14명의 사람들은, 물론, 이 책의 저자와 기고자들이고, 그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이 중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우리의 상호 노력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새롭게 발견되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겉보기에는 고갈된 주제들에 대한 많은 새로운 읽기가 항상 가능하다는 것과,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준 것에 감사드린다. 나는 또한 나의 제안을 수락하고 출판 과정이 가능한 한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해주신, 나의 출판사인 루트리지(Routlege)와, 편집자인 Felisa Salvago-Keys와 Christina Kowalski에게 감사드린다. 세 명의 익명의 교열자(校閱者)들이 이 책의 원래(initial) 개념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나는 그들이 승인을 해준 것에 감사하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들은, 많은 사람들이 많은 면에서 참여하고 있는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도움을 제공할 것이지만, 그들의 이름이 이 책의 페이지에 다른 방식으로 표시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에게 결국 항상 귀결된다. 이러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역할은 단지 일상적인 일에서 개연(蓋然)적인 지지를 하거나 모든 저자가 조만간 직면해야 하는 의심을 불식시키는 것 이상입니다. 나에게 그런 사람 중 한 명은 나의 아내인 미렐라(Mirela)인데, 나의 인생의 주된 목적이 되어준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의 전문적인 경력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항상 옳은 말을 해주신, 친애하는 동료 바르코 파이치(Žarko Paić)에게 감사드리고 싶고, 나는 15년 이상의 전문적인 동료 관계 동안 그의 지속적인 지원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특히, 내가 알고 있든 없든,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정확한 상황에서 조언과 격려를 해주셔서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그에게 바친다.
K.P.
Introduction
Krešimir Purgar
만일 누군가 철저한 시각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저입니다.
W.J.T. Mitchell’s
그의 가장 최근 책인 –이미지 과학(Image Science)– W.J.T. 미첼은 다소 수사학적인 맥락에서 질문을 던지고, 결국, 이미지 과학은 무엇이며, 결국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즉, 모든 책, 기사, 강의와 대학원생들에게 그는 생애 40년에 걸쳐 헌신하였다. 그 대답이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하드hard"와 "소프트soft" 과학, 자연 및 문화 사이의, 명확하게 혼합된 성격의 어떤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이의 없이 고백한다. 복싱(boxing)과 렌치(wrench)를 비교하면서, 그는 이미지 과학을 이미지를 이해하거나 분석하는 도구("렌치"의 은유)일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간섭하고, 그것들과 접촉하고, 궁극적으로 싸우는 방법("복싱"의 은유)이라고 설명한다. 미첼(Mitchell)에 따르면, 이미지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두 가지 기본적인 유형의 관계에 원인이 있으며 두 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실제적으로 피할 수 없다: 상호 주관적이고 상호 객관적이다. 첫 번째 경우, 이미지는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의사소통 행동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며, 도상 파괴적(iconoclastic)인 제스처, 포르노 또는 다른 종류의 "바람직하지 않은" 그림들에서와 같이, 결국 감정적으로 긴장된 반응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경우, 이미지는 객체 간, 이미지 자체와 이미지가 나타내는 객체 간의 재현적인(representational) 결합을 확립하는 역할을 한다. S이러한 방식으로 볼 때, 이미지 과학은 적절한 조사의 객체(object)만을 다룰 필요가 없으며 합의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 객체에 의해 항상 그 자체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목적(objective)은 이미지와 그 과학의 역설적인 얽힘(intertwining)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 미첼의 많은 글을 통해 어떻게 그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발전했는지 뿐만 아니라, 이미지에 대한 현대 이론화(theorizing)의 주요 변화와 그것들이 문화, 정치 및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영향력 있는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측면–개인적인 성취와 일반적인 학문 분야로서의 향상–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 과학의 학문 분야로서의 질문이 관련될 때, 하나와 다른 하나에 대한 인용(credit)을 동시에 받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언급해야 한다. 이것에 대한 이유는 미첼이 이미지 과학의 기초로 보는 것에서 정확히 찾을 수 있다: 시각 연구나 이미지학(Bildwissenschaft)과 같은, 현대의 시각적 학문분야가 권투 경기(boxing match)에서처럼, 이미지와 시청자(beholder) 모두를 "공격attack"하는 방식인 반면에, 동시에 이미지와 시청자 모두와 일종의 상호 수용 가능한 학문분야의 담론에서 "강화(makepeace)"를 시도하는 방식이다. 시각 연구의 주요 문제인 –토마스 미첼(Thomas Mitchell)이 주로 관련된 학문 분야–는 가장 두드러진 반대자(antagonist)에 따르면, 두 가지이다: 반면에, (예술) 이미지를 분석하는 데 있어 학문 분야로서의 엄격함(rigour)의 부족과, 한편으로는, 과도한 포용력(inclusivity)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심지어 쓸모없이 된 예술과 비예술(nonart) 객체 사이의 차이를 묘사한다. 나는 이것에 대해 조금 더 나중에 논의하겠다. 이 책의 첫 번째 목적은 이러한 "시각적 연구의 문제"가 미첼의 주요 성과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확립된 다양한 분야의 경계에 난기류를 조성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자만(self-sufficiency)의 문제를 다루려는 노력이다. 두 번째 목표는 이미지 과학이 지난 시간동안 온전하게 남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아무리 신뢰할 수 있거나 믿을 수 있더라도, 전제(前提, premise)에 그 자체 기반을 둘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문학과 사회 과학에 대한 미첼(Mitchell)의 다양한 개입이 기호학, 정신 분석 이론 또는 성(gender) 연구 그 자체의 결점을 암시하거나, 이러한 학문 분야가 다른 대상(object)에 적용되었을 때 그가 그것들을 조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미첼은 그들 중 누구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미지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는지 엄격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따라서, 이 책의 세 번째 목적은, -아마 시각 연구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불확실한 학문 분야가 사실 오늘날 우리가 이미지와 다면적인 모습(incarnation)을 다루는 가장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톰 미첼(Tom Mitchell)과 그의 지적으로 자극하는 아이디어가 그의 23권의 책(현재까지)과 수많은 글과 번역(이 책의 끝에 있는 "자원Resources" 섹션에서 바로 언급한다)에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목표 중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개별 목표보다 더 넓은 범위가 중요하다면, <W.J.T. Mitchell's Image Theory: Living Pictures>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미첼의 작업을 비교적 짧은 시각 연구의 역사에 위치시키는 동시에 그의 몇 가지 핵심 용어가 어떻게 우리의 친숙한 이미지 분석 개념을 다시 관련짓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것이지만, 또한 이미지에 대한 현대의 학문이 취할 수 있거나 취해야 할 몇 가지 방향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책의 장들을 읽는 것 -많은 것들이 미첼의 이전 학생들에 의해 쓰여졌다- 그것은 그가 그의 학생들과 독자들에게 물려주었던 다른 종류의 이미지들과 전문용어가 없는 글쓰기 스타일에 대한 극도로 넓은 지식의 범위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이 책의 페이지에 전하려고 한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미첼이 사진과 그것들의 학문분야 또는 분과학문(indisciplinary) 이론에 대해 갖는 구체적인(specific) 방법이다. 내 생각에, 그의 첫 번째 잘 알려진 책인, <도상학Iconology> (1986)은, 단지 이미지/텍스트 관계에 대한 자극적인 통찰력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향후 수십 년 동안 학문분야의 경계를 완화하고 예술 역사, 문학 이론,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성(gender) 연구 사이에 존재했던 엄격한 분류(division)를 완화하는 일종의 "학문 분야로서의 이완(弛緩)"을 지적인 시장(market)에 소개한다. 어떤 사람은 특히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가 그의 <포스트모던의 조건La Condition postmodern> (1979)에서 과거의 "위대한 서사(narrative)"의 종말을 선언한 후, 그리고 할 포스터(Hal Foster)에 의해 편집된 <반미학:포스트모던 문화에 관한 에세이The Anti-Aesetic: Essays on Postmodern Culture> (1983)과 같은, 1980년대 초의 몇몇 영향력 있는 책들의 출판 이후, 지적인 아이디어의 방임적 행동(permissiveness)의 이러한 과정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단지 인문학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많은 학문 분야에 관련이 있는(interdisciplinary)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훨씬 쉬워지는 문화적 환경을 만들었다. "포스트모던 전환"과 관련된 과정이 문화, 특히 시각적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포스트모던 전환(postmodern turn)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동안에 존재했고 수행된 일련의 관행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는 또한 30년 동안 점차 분과학문(indisciplinary)적 형태를 띠는 시각 연구의 상승(ascent) 방법론과 관련이 있다. 내 생각에, 시각 연구로 알려지게 될 것의 맥락을 형성하는 데 있어 1980년대의 또 다른 책의 중요성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오마르 칼라브레스(Omar Calabrese)가 1987년에 쓴 네오바로크 시대(L’età neobarocca).
칼라브레스(Calabrese)에게는 회화적(pictorial) 전환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상기시키는 회귀성(回歸性, recurrent)의 수사(修辭, trope)가 한 가지 있다: 과잉(excess)이라는 개념이다. 네오 바로크(neo-baroque) 패러다임은 칼라브레스가 말하는 과잉이 "과잉의 표현에서 표현의 과잉으로 변형"되어지므로 회화적(pictorial) 전환과 비교될 수 있다.
회화적(pictorial) 전환은 중요한 범위에서 철학적이고 이론적으로 이미지의 과잉을 받아들인다. 미첼은 이탈리아 기호학자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일종의 걱정과 불안으로 문화적 세계(universe)의 절박한 변화를 예측한다. 칼라브레스는 어떤 시대의 바로크 정신이 예술과 문화에서 실제 바로크 표현보다 앞선다고 주장한다; 그런 다음 회귀성(回歸性)의 시각적 패러다임이나 스타일의 관점에서 마침내 받아들이거나 표준적으로 하기 위해서 과도한 형태를 취한다. 마찬가지로, 미첼(Mitchell)은 회화적 전환의 첫 번째 징후(symptom)를 명확하게 보이는, 과도한 양의 이미지에서도 아니고 형식 구조의 중요한 변화에서도 식별할 수 없다. 그는 이미지가 전혀 없어야 할 곳에서 그것의 첫 번째 징후를 본다: 언어와 철학에서. 따라서 그 시대의 시각 이론의 구성적인 복잡성에서 중요한 역할은 –노먼 브라이슨(Norman Bryson)과 미케 발(Mieke Bal)과 함께, 그중에서도, 미첼 자신의– 시각적인 주제에 착수했던 문학 이론의 학자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비록 브라이슨(Bryson)과 발(Bal)이 소위 새롭고 비판적인 예술 역사를 위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준 대단히 영향을 미치는 몇몇 텍스트들을 저술했지만(가장 좋은 예는 그들의 글 "기호학과 예술 역사Semiotics and Art History"이다), 이 성취는 새롭고, 더 일반적이고, 더 포괄적인 이미지 과학의 확립에서보다, 예술 역사의 이론적-기술적 범위의 확장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현대적인 관점에서 과거의 예술 작품을 설명하고, 현대 청중과 현대 이론의 필요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종류의 수단(기호학, 정신 분석, 성gender 연구)로 간주되는 것을 오래된 학문 분야에 도입했다.
하지만, 미첼이 제안했듯이, 이 새로운 관점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의 본질적으로 변화된 패러다임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충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접근 방식은 회화적 전환을 고려해야 했다. 그의 도상학과 <그림 이론Picture Theory>에 대한 접근(intervention)은 당시 발(Bal)과 브라이슨(Bryson)이 하고 있던 것과 정반대였다; 즉, 미첼은 "언어학적 전환"과 이론의 거대 서사(master-narrative)로서 언어에 기반을 둔 그것의 방법들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술사를 "언어화"하려는 시도를 강력하게 거부했다. 이 서론에서 우리가 나중에 보게 될 것처럼, 책 전체를 통해, 미첼은 "텍스트에 의한 학문 분야에서 파생된 방법으로 예술사를 이식화하는 것보다", "언어의 제국(帝國)을 공격하기"를 원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그의 세계관(Weltanschauung)이었고, 그것은 그가 토론에 세 가지 중요한 것들을 가져올 수 있는 확고한 근거가 되었다: (1) 현실 그 자체의 일종의 조절(modulation)로서의 새로운 이론적 장치; (2) 이미지, 텍스트 또는 미디어와 같은 겉보기에 중립적인 개념을 다시 개념화하기 위해 현존하는 문학의 다시 읽기; 그리고 (3)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가 의미와 감정의 생산에서 이미지의 "첫번째임(the firstness)"라고 불렀던 입장으로 이미지를 되돌린다. 예술사학 분야 내의 변화만으로는 그림(picture)에 대한 문제를 지적 논쟁의 전면에 내세울 수 없었을 것이며, 예술사학과 이미지에 대한 일반 과학 사이의 상이(divergent)한 관심이 점점 더 명백해졌음을 증명하는 또 다른 예는, 위에서 언급한 에세이집, 반미학(The Anti-Aesthetic)이다. 포스터(Foster)의 책에 기여한 사람 중 한 명은 저명한 근현대 예술 이론가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였으며, 그의 글 제목은 "확장된 장(場)에서의 조각(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이었다. 이 글을 통해 그녀는 새롭고 다른 종류의 담론을 연 학자들(발Bal과 브라이슨Bryson도 속해 있다)의 그리 크지 않은 커뮤니티에 확실히 합류했었다. 예를 들어, 그녀는 1969년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에 의해 유카탄(Yucatán)에서 공간 개입으로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한가운데에 세워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고전적인 승마상과 연결되는-그녀의 예에 따르면- 기존의 역사적 목적인(目的因, telos)이 매우 있을 법 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세기 말 로댕(Rodin)의 발자크(Balzac)와 지옥의 문(Gates of Hell)에서 예술 역사학자들에 의해 조각의 자연적 상태로 이전에 간주되었던 것은 이미 "기념물(monument)의 논리의 한계를 넘어, 부정적인negative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 – 일종의 무장소성(sitelessness), 또는 무거처성(homelessness), 장소의 절대적인 상실."이다 크라우스(Krauss)에 따르면, 1950년대 동안 이 "무장소성(sitelessness)"은 인식론적 기반을 힘껏 연구했고 결국 풍경/비풍경 및 건축/비건축이라는 확장된 분야의 조각을 고려하는 복잡한 개입(intervention) 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실행은 특히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칼 안드레(Carl Andre), 데니스 오펜하임(Dennis Oppenheim) 등의 작업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크라우스가 그녀의 에세이에서 사용한, 확장의 개념은 문화 전반이 아닌, 모더니즘의 확장된 영역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녀가 예술을 위해 구상한 확장은 새로운 형식적, 공간적 획득의 측면에서만 의미되었고, 이는 조각이 예술적 비전의 확장된 영역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지 문화적 수용의 확장된 영역이 아니다. 따라서 예술사의 목적인(目的因, telos)은 –1970년대에 필리베르토 메나(Filiberto Menna)가 능수능란하게 제시한 것처럼- 두 개의 "현대 예술의 분석적인 경계"에 이어 새로운 영감의 원천을 수용하기 위해 편리하게 조절되었고 "예술적 숭고함"의 적응된 어떤 개념들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포스터(Foster)의 책에 대한 크라우스(Krauss)의 개입(intervention)을 언급하는 것은 내가 현대 예술의 궤도 안에서 어떻게 "확장된 조각 분야"가 이해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녀의 평가에 본질적으로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지만(부분적으로 나는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는 반-미학에서 제시된 예술과 문화 이론의 종류가 현대 이미지 과학과 유사한 것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잘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1985년 암스테르담에서 예술사를 전공하는 대학생으로서 여름 여행 중에 구입하여 읽었던, 이 책의 중요성과 귀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시각적 연구"라고 부르는 학제간 또는 비학제적(nondisciplinary) 담론의 유형은 이 책이 진전시키고 있던 학문의 전통에 근본적으로 신세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방금 표현한 의견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이 시각 연구의 학문 분야를 확립하는 데 미첼(Mitchell)의 역할을 더 잘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또한 반-미학을 언급한다. 그들 중 한 명은 호주의 학자 로스 우드로(Ross Woodrow)인데, 그는 몇 년 전에 말했다:
미첼(Mitchell)의 도상학(Iconology)의 중요성은 "시각 문화, 시각 리터러시literacy, 이미지 과학 및 도상학" 연구의 시작 텍스트로서 그것에 대한 그의 최근 평가와 어울리지 않으며, 확실히 그것은 "시각 문화와 새로운 예술 역사와 같은 개념들이 루머rumor에 지나지 않았던" 1980년대 중반에 쓰여졌다는 그의 주장과 어울리지 않는다.
우드로(Woodrow)는 미첼의 진술이 "다른 곳은 아니더라도, 호주Australia의 진보적인 예술 학교에 있는 모든 예술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미첼의 도상학에 접근하기 훨씬 전에 할 포스터(Hal Foster)의 선집 <반미학The Anti-Aesetic> (1983)을 읽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사실처럼 들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도상학의 20세기 방법론적 의미를 전복시킨 미첼의 성취를,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인정하면서, 우드로는 문제의 책–도상학: 이미지, 텍스트, 이데올로기–이 언어, 역사 및 암시allusion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몇 개의 선 도표(line diagram)를 제외하고는, 실제적으로 삽화(illustration)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호주의 저자는 1980년대 동안 예술 수업에서 가장 크게 조사된 에세이 중 두 편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에 대한 루이스 마랭(Louis Marin)과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벨라스케스(Velázquez)의 그림 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에 쓴 것이라고 말하고, "새로운 예술사"라는 용어 하에 이미 진행 중인 것에서의 영향의 탁월함을 아마도 특정 다른 텍스트들(그리고 미첼의 도상학이 아닌)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만약 그것이, 어느 정도, 우드로(Woodrow)가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한편으로는, 다른 한편으로는 톰 미첼(Tom Mitchell)은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다. 비록 나는 미첼의 도상학에서 시각 연구의 초기 학문 분야의 상황을 반드시 파악할 필요는 없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 저자에 의해 예술사의 진전으로 제공되지 않았다. 예술사학자들이 특히 그 정신에 의해 역점을 두어 다루었다고 느꼈는지 여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고, 이는 예술사학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현대 세계의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학문 분야로서(disciplinary)의 기반에 의해 "질문되었던", 1980년대 초의 지적 풍토와 관련이 있다. 그 변화는 성스러운 예술의 영역 밖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의 엄청난 확산에 의해 야기되었고, 그 과정에 대한 이해는 마이클 박산달(Michael Baxandall), 노먼 브라이슨(Norman Bryson), 스베틀라나 알퍼스(Svetlana Alpers), 키스 먹시(Keith Moxey)와 같은 저자들에게 어떻게든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미첼의 도상학, 그리고 그의 <그림 이론Picture Theory> (1994)은, 그러므로 "순수pure" 또는 "고급" 예술의 우월성과 배타성이 일상 문화의 전문적 심상(心象, visuality)에 앞서 바뀌고 있다고 느낀 인문학 내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학제간(disciplinary) 형성의 변화를 촉진한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 결과로 훨씬 더 큰 규모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일어났으며, 마가렛 디코비츠카야(Margaret Dikovitskaya)에 의해 간결하게 공식화되었다:
다른 추론적인 실행과 관련하여 예술의 우월성을 거부하면서도 시각의 감각적이고 기호학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춘 학문은 더 이상 예술사라고 할 수 없다-그것은 시각 연구라는 이름을 가질 만하다.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영미권(독일어권 국가에선 이미지학(Bildwissenschaft) 뿐만 아니라)에서 번성했던 시각적 연구는, 포스트구조주의의 해체주의적 방법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저명한 유럽 예술사학자들의 방법론에서 확고한 근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연구는 초기에는 주로 이질의 형성으로 보였다. 호르스트 브레데캄프(Horst Bredekamp)는 독일의 이미지 과학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와 같은 예술 역사가들에게 얼마나 깊은 빚을 지고 있는지 납득이 가게 설명했었다; 이 빚(debt)은 분명히 학제간(interdisciplinary) 범위의 관점에서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주로 모든 이미지의 기능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바르부르크), 매우 구조화된 방법론(뵐플린), 그리고 움직이는 이미지의 초기의 기술(파노프스키)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을 입증함으로써 정의되었다. 브레데캄프(Bredekamp)의 "간과된 전통? 이미지학(Bildwissenschaft)으로서의 예술 역사"의 독창적인 글의 결과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것은 현대 예술사의 다른 계보를 오늘날 픽처 스토리(Bildgeschichte) 또는 이미지학(Bildwissenschaft)으로 알려진 더 포괄적인 "과학science"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있어서 그것의 창시자(progenitor)들을 매우 진지하게 제시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둘째,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들의 저명한 전임자들의 길을 (어떤 식으로든) 따르려는 시도가 대부분 무시되었던, 현대 시각 연구 학자들의 모든 노력을 뒷받침하는 데 덜 성공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브레데캄프(Bredekamp)는 특히 미국 예술사학자들이 유럽의 학문적 맥락에 수많은 종류의 다른 통찰을 도입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간과(oversight)를 엄청난 실패(failure)로 보고 있다. 그는 그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비록 영어권에서는 물론 이미지학(Bildwissenschaft)로서 예술사를 대표하는 데이비드 프리드버그(David Freedberg)와 같은 많은 예술사학자들이 있지만, 그중 인상 깊은 사람은, 예를 들어, 바바라 스태퍼드(Barbara Stafford)와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는 더 이상 일반적인 예술사학자가 아닌, 이단적인(heretical) "시각 연구자"로 인식되고 미첼(W.J.T. Mitchell)은 건축가(builder)가 아니라, 다리의 연소자(urner of bridges)로 여겨진다. 이런 종류의 진영(陣營, camp)의 사고는 양쪽 모두에게 재앙적이고 – 대서양(Atlantic) 양쪽의 예술 역사에도 그렇다. 시각 연구를 예술사에서 분리하고 이 학문 분야(discipline)의 더 전통적인 구성원들이 귀중한 작은 섬으로 후퇴하는 것은 픽처 스토리(Bildgeschichte)로서의 예술사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예술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각-문화(비예술) 경험의 영역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유명한 1996년의 저널 10월 77호에 "시각 문화에 관한 질문서"가 출판된 후. 다양한 "간섭interfering" 이론의 협력의 과정이 명백히 통제 불능이 되었을 때 특히 분명해졌다. 2008년에 마커드 스미스(Marquard Smith)에게 준 할 포스터(Hal Foster)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이 질문서(questionnaire)는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와 포스터(Foster) 자신에 의해 "조작"되었고 그 이야기에 따르면, 크라우스와 포스터가 "당시 프레임화된 시각 연구의 특정 측면에 대한(1996)" 막연한 느낌에 의해, 영감을 받은 도전(provocation)으로 의도되었다. 현재 일반적으로 그들이 매일 그들에게 차별 없이 제공되는 선택의 단순함(simplicity)에 압도되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예술을 판단하고 이해하고, 배우기 위한, 사람들의 능력에 위협이 되는 시각 연구의 최근 생겨난 학문 분야의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10월October>의 편집자들이 "질문서"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문서(questionnaire)가 있은 지 12년 후에 개최된, 스미스(Smith)와의 인터뷰에서, 할 포스터(Hal Foster)는 당시, 지적인 다툼(quarrel) 이상의 것이 오늘날과 같이 위태로웠다고 인정한다:
예술사와 시각연구에도 변증법이 있는데, 후자는 전자를 가속하는 반면, 전자는 후자를 엄격하게 유지한다. 그것이 바로 학제간(interdisciplinary) 작업, 즉, 진정으로 "상호inter"이고 "학문 분야disciplinary"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쨌든 나는 예술사와 시각연구가 그 때 야기된 것만큼 상반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나는 예술사 안에 시각 연구를 위한 자원(resource)이 있다고 느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0월>의 이슈는 두 가지 주요 관심사에 의해 주도되었다. 첫 번째는 시각 연구가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강박관념(fixation)에 의해, 너무 많이 받아들여지는 방식이었고, 이 강박관념(fixation)은 진보적인(advanced) 예술에서 오랫동안 의문을 제기했다. (어쩌면 우리가 "시각visual"에서 "가상virtual"으로 너무 빨리 선을 그었을 수도 있지만, 시각 연구(Visual Studies)가 우리에게 그렇게 한 것처럼 보였다.) 두 번째는 인류학적 전환과 잠재적 결과로서 예술의 기억 차원(次元)의 위축과 관련이 있다.....
아마도 한편으로는 예술사 사이의 오해들 –그것이 몇 세기 동안 주장해온 상태인, 시각 인공물(人工物)들을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마스터-학문 분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훨씬 더 새로운 "무질서(indiscipline)"인– 시각 연구들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실제로 문화의 시각 영역에 대한 "감시 영역(turf policing)", 또는 이러한 오해가 사실상 주로 이데올로기적인지 여부에 의해 유발되었다. 전자가 그렇다면, 그녀가 시각 연구가 현대 문화를 "주로 시각"으로 간주하여 비판을 받고, 그림적(pictorial) 측면을 분리하고 어떻게든 매일 문화가 만들어지는 다른 모든 방식을 폄훼할 수 있다고 주장할 때 미케 발(Mieke Bal)은 아마도 옳을 것이다. 미케 발(Mieke Bal)은 회화성(pictoriality)의 이러한 탁월함(primacy)을 "시각 본질주의(essentialism)"라고 언급하고, 시각 연구가 애초에 대안을 제공했어야 했던 시각 연구가 역설적으로 "예술사의 편집증적 방면에서" 이러한 본질주의를 발견했다고 주목한다. 만약 그것이 시각(visual)의 영역을 두루 살피는 데 어떤 특정한 학문 분야(discipline)가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발(Bal)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것이 어떤 분야인지는 아마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고, 왜냐하면 오늘날 학문분야(disciplinary)로서의 경계나 감시 영역(turf policing)은 학문 분야(discipline), 예술(art)과 시각(visual)과 같은 용어에 대한 개인적인 이해에 매우 의존하기 때문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본질주의(essentialism)의 의미는 실제적으로 쓸모없게 된다.
나는 이것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겠다. 본질주의(essentialism)는 사람이 본질적(essentially)으로 이미지, 동물, 인간의 뇌 또는 인간 활동의 다른 측면을 다룰 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구체적인 활동이 그것들 중 어느 것에 대한 더 나은 이해로 이어진다면 말이다. "나쁜bad" 종류의 본질주의는 한 사람의 접근법이 분석이 시작되기 전부터 예측할 수 있었던 결과로 항상 이어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전제(前提, premise)에 기초할 때 발생하지만, 미케 발(Mieke Bal)이 가졌던 것처럼, "시각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순수한 가정(purity-assuming) 컷"에 초점을 맞출 때이다. 이러한 "나쁜" 종류의 본질주의는 이데올로기라고 더 적절하게 불러야 하며, 나는 시각 연구가 정치적, 학문분야(disciplinary)적 또는 사회적 정체성(identitarian)적 선호가 의도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쉽게 여겨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몇몇 새로운 개입(intervention)이 가장 논쟁하고 있는 특징(feature)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놓지만, 시각 연구는 실제로 시각(visual)에 본질적으로 관심이 있다.
예를 들어, 니콜라스 데이비(Nicholas Davey)는 최근 시각 연구에서 본질주의의 일종의 역방향을 지적했는데, 그는 "개체 발생학적(ontogenetic) 오류"라고 말했다. 그것으로 그는 이 학문 분야(discipline)를 디자인된 객체(object)와 예술작품(artwork)의 개체발생학적(ontogenetic) 특성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특징(distinction)을 방치하도록 이끄는 시각 연구의 기초 원칙들의 집합을 언급하고, 이것은 "시각 문화 내의 연구의 다양성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미적 경험 내의 급진적인 비평의 가능성을 혼란케한다"고 하는 태만(failure)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가 말했듯이, "해석학(hermeneutical)의 미학은 시각 문화의 연구에서 위태로운 것을 밝히는 데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해석학(hermeneutical)의 미학은 디자인된 객체와 예술 작품 사이의 시각적 담론 내에서 중요한 존재론적 특징(distinction)을 만드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데이비(Davey)는 학문 분야로서의 시각 연구가 이러한 본질적인 특징을 무시하고, 결국 유감스럽게도 예술의 개념 자체를 붕괴(dissolution)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이 주장으로 데이비(Davey)는 2002년에 등장한, 그의 독창적인 글 <시각화: 시각 문화의 비판Showing Seeing: A Critique of Visual Culture>에서 미첼(Mitchell)이 언급한 시각 문화의 연구 주변에 존재했던 이전의 모든 "두려움과 오류들"을 매우 간결하게 포함하고 다시 한번 표현한다. 이 글에서 그는 <10월>의 "시각 문화에 관한 질문서"와 직접 논쟁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미첼이 예술 역사가들과 관련 커뮤니티의 다른 구성원들을 가장 잠재적이고 가장 역설적인 불안, –즉 이미지에 대한 두려움(fear)과 대면시킬 필요성을 느낀 것은 분명하다. 분명히, 우리는 여기서 예술 작품으로서의 그림(picture)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이든 아니든, 모든 이미지가 무차별한 시각 연구의 장(場, field)의 늪에 빠져들면, "우리가 알고 있던 예술의 청산(liquidation)"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미첼(Mitchell)이 도움을 얻은 새로운 이미지 과학에 대한 모든 신화와 오류가 전통적으로 다른 삶의 영역과 학문적 관심 사이의 경계를 깨는 것에 대한 불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예를 들어, 고급 예술을 대중 예술로부터, 단일 매체를 혼합 매체로부터, 역사를 인류학으로부터 분리하는 것과 같이– 본질주의에 대한 논의와 근본적으로 반본질주의적(antiessentialist)이고 분과학문(indisciplinary)에서의 시각 연구의 태도가 현대 이론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는지를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미첼(Mitchell)이 그의 후속 글 중 하나에서, "시각 미디어는 없으며 모든 미디어가 혼합된 미디어"라고 주장할 때 놀라운 일이 됩니까? 이 주장은 이 책이 적절한 찬사를 주는 시각 연구에 내재된 많은 학문 분야로서의 확장 중 또 다른 하나로 선집에 편집될(anthologize) 가치가 있기 때문에, 확실히 그렇지 않다. "시각 미디어는 없다"에서, 미첼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결과로서, 순수한 미디어는 고사하고, 순수한 시각 예술에 대한 어떤 생각도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첼은 여기서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와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가 싸운, 하이모더니즘(high-modernist) 전투를, "미디어의 순수성과 특수성을 주장하고, 하이브리드 형태를 거부하며, 혼합 매체와 '예술 사이'에 놓여 있는 모든 것들은 비본래성(inauthenticity)이고 평범한(second-rate) 미적 상태가 될 운명의 ‘연극theater’ 또는 수사(修辭, rhetoric)의 한 형태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오neo) 아방가르드 본질주의-오늘날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이는-에 지배적이었던 이론적 주장을 수용하고 싶다면, 미첼은 해법(solution)을 제안한다: “오늘날 예술 역사학자들에게, 가장 안전한 결론은 순수하게 시각적인 예술 작품의 개념이 혼합되고 하이브리드 미디어의 훨씬 더 오래 지속되는 전통에서 벗어난, 일시적인 이형(異形, anomaly)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논리적인 질문이 뒤따른다: 이 전투는 무엇을 위해 싸웠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왜 순수한 미디어(매체)가 필요할까요? 우리가 의미를 창출하는(meaning-generating) 과정을 밝히기 위해 예술 이론이나 예술 역사를 정말로 "해체"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시각 연구가 그 과제(assignment)에 가장 적합한 사람인가요?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미첼이 실제로, 학제성(disciplinarity), 시각성(visuality) 또는 매체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이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객체(object), 현상, 사건이다. 달리 말하면, 만약 우리가 결국 하나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미첼의 "이미지 이론"은, 현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무력하게 체계화되지 않은 그림(picture)을 구조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훨씬 더 복잡한 개별 사례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시각 연구에 대한 미첼의 제안은 그가 항상 밝히게 될 구체적인 현상으로부터 분석을 시작하는 한, 인문학의 다른 모든 분과가 사용하는 방법론과 정확히 반대이고, 그 후에야 어떤 종류의 체계적인 구조(또는 의도적인 결여)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그가 1992년에 <예술 포럼Art Forum>에 게재된 글에서 발표했던 유명한 "그림의 전환pictorial turn"은 바로 그때 등장한 두 권의 중요한 책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판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나는 1991년에 출판된, 영어 번역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의 상징적 형태(Symbolic Form)로서의 관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1년 전에 출판된, 조나단 크레리(Jonathan Crary)의 <관찰자의 기술: 19세기의 비전과 현대성에 대해>이었다.
그의 글의 첫머리에서, 미첼은 20세기에 등장한 텍스트성(textuality)과 담론의 다양한 모델이 이미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에 의해 "언어학적 전환linguistic turn"으로 분류되었지만,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에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고, 다시 한 번 복잡한 관련 변화(transformation)가 인간 과학의 다른 학문 분야와 공공 문화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그가 "그림의 전환pictorial turn"이라고 부르고 싶은 변화(shift)이다. 하지만 그는 정확히 어디서 <그림의 전환pictorial turn>이 일어나는 지를 보았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것의 주요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판단이 있습니까? 만약 미첼(Mitchell)이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면 (독자가 보통 찾았을 것이다), 그러면 시각 연구는 아마도 이론적 장치(apparatus)와 이념적 의제(agenda)를 가진 또 다른 학문 분야가 되었을 것이다 – 대상 그 자체에 따라서가 아니라 일종의 학문 분야의 "참여의 규칙"에 따라 연구의 대상(object)을 만든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림의 전환>의 특정한 증상이나 대상이 이 두 책에 구체적으로 있고, 미첼은 당시 전반적인 사건의 알레고리(allegory)로 보았다-시각성(visuality)에서 새롭게 한 관심의 상징으로서.
사람들은 이 두 권의 책(그 중 하나는 반세기 전 에세이의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것)의 출판이 패러다임적인 것(paradigmatic)을 제외한 모든 것이며, 어떤 이론도 그 사실에 만 근거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한 의견에 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논문(thesis)에 반대한다: 개념적 문제로서의 <그림의 전환>의 목적은 결코 적절한 이론이 되지 않고, 지식의 본체를 구성하거나 누군가의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대신, 이론적으로, 내가 책의 후반부에서 제안할 것처럼, 그것은 –미첼의 비판적 도상학(iconology)의 전체 프로젝트와 함께– 일종의 "문화적 증상학(symptomatology)"으로 간주되었다. 이 <그림의 전환>의 목적은 문화의 어느 영역에서 그것이 발견되든, 거대한 기술적 변화와 감지 할 수 없는 문화적 증상을 모두 찾아냄으로써 사람들의 행동의 변화를 "단지only" 주목하는 것이었다. "이론"과 "학문분야discipline"는 훨씬 나중에 나왔지만, 다시 말하지만, 일반적인 사용 지침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고정된 기준(reference)을 가진 교과서 지식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설명적인 보기(seeing)의 비학문분야(nondisciplinary)로서의 수단의 형태이다 – 이것이 기본적으로 현재 시각 연구이다.
이러한 종류의 프로그램적 탈학제화(de-disciplinarization)는 역설적으로 미첼의 가장 프로그램적인 텍스트로 판명된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림의 전환Pictorial Turn”. 그 글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림의 전환>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때묻지 않은 모방(mimesis), 표현의 복사 또는 상사(相似, correspondence) 이론, 또는 그림의 "존재"에 대해 새롭게 한 형이상학(metaphysics)으로 돌아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오히려 시각성(visuality), 장치, 제도, 담론, 신체 및 형상성(figurality)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으로서 그림의 포스트언어학적, 포스트기호학적 재발견된 것이다.
매우 이질적인 영역의 질문(enquiry), 예술적 표현, 미디어 플랫폼, 이데올로기와 학문분야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서의 그림"의 개념은 그 자신의 이론적 작업의 본질과 그림 분석의 특정한 관점에서 평가될 필요가 있는 어떤 것이든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관대해야 하는 학문분야(discipline)의 본질에 대한 미첼의 "정치적political" 진술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확립되고 방법론적으로 "입증된approved" 학문분야로서의 규칙을 적용하는 대신, 미첼의 방법은 다양한 예술적, 미디어, 정치 및 사회적 현상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일종의 방법론의 조사 아래 그것들을 "주문형on demand"으로 입력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의 시종일관된 반(反)학문분야(antidisciplinary)의 진행(procedure)을 통해, 그리고 수많은 대상(object)과 사례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분석된 후에, "뒤집어 놓은reversed" 종류의 이론이 뒤따른다: 그중 하나는 선험적(先驗的)인 이론적 전제(前提, premise) 대신 관찰과 평가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의 최고의 재구성(reconstruction)은 미첼 자신의 작업과 자주 연관된 가장 중요한 용어로 생각하는 것을 요약한, "이미지 과학의 네 가지 기본 개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가 말했듯이,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네 가지 기본 아이디어"를, 미첼이 직접 제안했었다. 이 용어들은 다음과 같다: 그림의 전환, 이미지/그림, 메타픽처metapicture 및 바이오픽처biopicture. 독자들은 이 책에서 미첼이 그것들을 사용하는 다양한 설명뿐만 아니라, 그것들 모두에 대한 수많은 언급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방법론적 관심을 위해 이러한 개념들은 미첼(Mitchell)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이는 –몇 년 동안 실질적으로 사용된 후에야– 비로소 "근본적인 개념"으로 분류될 수 있는 다양한 보기, 읽기 및 쓰기 과정의 지시(indication)일 뿐이다. 그것들은 완전히 발전된 이론적 개요(overview)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지만, 검증된 분야(field) 증거의 재구성 모델로 간주된다. 이 네 가지 외에도, 수년간 더 많은 것들이 등장했으며 이미지 분석의 적절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토테미즘totemism/페티시즘/우상주의idolatry, 이미지/텍스트, 또는 영화(living picture)의 개념은, 그 자신의 경험을 "비판적 도상학(iconology)"이라고 부르는 미첼의 특징적인 주장은 말할 것도 없고, 이는 이미지의 새롭고 일반적인 과학의 구성(構成, constitution)을 직접 가리키고 있다.
이미지 과학의 존재론적 기반으로 보이는 것을 적절하게 다루기 위해서, 우리는 톰 미첼(Tom Mitchell)이 그의 텍스트 "학제성(Interdisciplinarity)과 시각 문화"에서 선택한 시각 연구의 이미 근본적인 무(無)학제성(indisciplinarity)을 상기해야 하고, 그는 거기서 우리가 "상-하" 학제성 사이에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고,, "비교적이고 구조적인 형성은 모든 학문분야가 관련된 무엇보다 중요한 시스템 또는 개념적 전체성을 아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고," "새로운 이론적 대상과 그에 수반되는 주장들을 가진 정치적 프로젝트에서 임시 변통으로 만들어지고, 그것들은 지식 프로젝트이지만, 다소 명백한 도덕적, 정치적 의제도 가지고 있는" 성별, 성적 관심(sexuality), 민족성 연구의 "강제적인compulsory" 학제 간 특성의 종류이다. 이 주제에 대한 최근의 재평가된 아이디어에서, 그는 위의 범주 중 어느 범주에 속하든, "학제성(Interdisciplinarity)은 기업 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에 대한 것만큼 학문 분야에 협박할 뜻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엄격한 규범성(normativity), 생산성, 독창성의 오래된 학문분야로서의 가치들과 해석적(explanatory)인 힘을 더 높은 수준으로 재설치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뒤의 주장은 미첼이 2002년 다소 애매한 진술에서 "시각 연구는 시각 문화의 연구이다"라고 처음 명확하게 말했을 때, 이미 볼 수 있었던 하나 또는 다른 학문 분야의 현장(trench)에서 매우 확고한 입장을 취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꺼리는 것을 무심코 드러내고, 그것은 다음과 같이 곧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역사와 같은 주제를 괴롭히는 모호함을 피하는데, 그 현장(field)에 있어서 그리고 그 현장에 의해 포함된 것들은 같은 이름을 가진다. 물론, 실제로, 우리는 이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나는 시각적 문화가 현장과 그 내용 모두를 대변하도록 하고, 그 맥락이 의미를 명확하게 하도록 하는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나는 본 권의 7장에서 이안 베르스테겐(Ian Verstegen)의 통찰력에 따라, 이러한 진술이 시각 연구를 일반적인 무(無,in) 학문분야(disciplinary)로서의 계획으로 특징짓는 미첼의 "놀라운 부정(disavowal)"으로 읽혀질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그가 인정받아야 할 상당한 이론적 개념에도 불구하고, 이 컬렉션collection의 저자들이 보여주듯이, 미첼의 이미지 과학 또는 도상학(iconology)은 꽤 많은 수의 사전 설정된 핵심 용어들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이미지 개념의 존재론에 그것으로서 기초한다. 이미지 개념에 대한 기초를 둔 존재론적 기반의 부족은 시각 연구 내에서 개별 리서치 프로젝트와 이론적 개요의 범위를 엄청나게 넓혔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학문 분야(discipline)의 역설적인 성격은 <시각 연구> 학자들이 한편으로는 연구 영역을 구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구의 주요 대상을 정의하려는 시도에서 발전한 이중적인 유사한 과정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2008년 시카고에서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에 의해 조직된, <Stone Summer Seminary> 동안, 학문 분야(discipline)와 그 대상이 결코 서로 불평하지 않고 엄격하게 분리된 일련의 문제들을 계속 다룰 수 있는, 이 병행론(parallelism)을 해결하기 위해 주장되었고, 그것은 –만일 이미지에 대한 본질적 또는 실재론자(essentialist) 질문에 답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다른 종류의 이미지가 존재론적 기반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일종의 분류학적(taxonomical) 그리드grid를 만들어야 한다. 시각 연구가 결코 유사한 작업을 교차시킬 수 없는 이유는 정확히 근본적으로 반(反)본질주의자 입장 때문이다.
<Stone Summer Seminary> 동안, 대담자 중 한 명인, 고트프리트 뵘(Gottfried Boehm)은 매우 직접적인 질문을 했다: “이미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역사가 필요합니까?”. 미첼이 어떻게든 동시에 보였던 반응은 일반적인 이미지 과학으로서의 그의 도상학(iconology)의 전체 프로젝트와 그의 개인적이고, 근본적인 반(反)존재론적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만약 도상학이 이미지의 존재론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면, 그것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항상 역사화(historicize)하고, 항상 맥락에서 떼어놓고 고찰하고(decontextualize), 항상 시대착오(anachronize)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어들은 –적어도 정신적으로, 만일 축어적이 아닌– 그의 <므네모시네 아틀라스Mnemosyne Atlas>에서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가 시도한 첫 번째 <bildwissenschaftliche>를 분명히 상기시킨다. 미첼이 거의 25년 전에 프로그램적(programmatically)으로 말한 것처럼, 그것들에 대한 나의 감각은, 우리가 "시각성(visuality), 장치, 제도, 담론, 신체, 그리고 형상성(figurality)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으로서의 그림"과 지속적으로 협상하지 않는 한, 시대를 초월한 예술 작품이든, 잡지에서 단순하고 가치 없어 보이는 오려낸 것(cutout)이든, 어떤 시각적 인공물의 궁극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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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첼의 전문적인 경력의 바람직한 기간과 그의 학문분야(disciplinary)로서의 영역 모두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뿐만 아니라 그의 성취 중 가장 중요한 것들 중 일부에 정당성을 부여할 접근법을 결정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는 거의 예외 없이, 이 책을 위해 미첼의 대학원생이거나 그의 주요 작업들을 모국어로 번역함으로써, 대부분의 경우 이미 미첼의 연구에 깊이 관여한 경험이 있는 학자들과 젊은 학자들로부터의 독창적인 에세이를 의뢰하는 것을 결심했었다. 나는 여기서 미첼과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낸 학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그들은 그의 개념을 직접적인 대화에서 논의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조사하고, 논쟁하고, 그래서 –일단 그들이 발표했다면– 이러한 개념들이 더 명확하고 이론적으로 더 적절해지도록 도와준다. 사실상 이 책에 기고한 모든 사람들이 미국 학자와 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독자들이 볼 수 있듯이, 그들 모두가 항상 그의 전제와 결론(argumentation)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출판되기 전에 영어로 글이 실리지 않아야 한다는 규칙이 의도적으로 깨진 경우도 있었지만, 바라건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를 바란다. 이 범주에는 미첼과의 두 가지 인터뷰가 있다: 하나는 1996년에 앤드류 맥나마라(Andrew McNamara)에 의해 수행되었고(5장), 다른 하나는 10년 후에 아스비외른 그뢴스타드(Asbjørn Grønstad)와 외빈드 보그네스(Øyvind Vågnes)에 체계화되었다(10장). 두 인터뷰 모두 대화의 파트너가 자신의 이전 평가를 직면하게 하고 어쩌면 다른 각도에서 더 비판적으로 다루게 하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을 입증(立證)한다. 세 번째 인터뷰는 2013년과 2016년 사이에 미첼이 참석한 다양한 컨퍼런스의 점심 시간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크레시미르 푸르가르(Krešimir Purgar)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 세 가지 인터뷰의 포함(inclusion)을 정당화하는 위에서 언급한 학술적 주장과는 별개로, 그들은 학술적 책의 특징이 없는 친밀함(intimacy)과 근접성의 특별한 묘미(flavor)를 이 책에 제시한다. 게다가, 그들은 독자들에게 미첼의 사고와 주장의 발전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하고 (자동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것으로서 평가하기 위한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서 출판되기 전에 이 책에서 영어로 실린 유일한 비판적인 텍스트는 티모시 어윈(Timothy Erwin)의 장(章), "도상학의 변화하는 패턴: 20세기의 미첼에게 7가지 질문"이다(이 책의 1장). 사실, 이 글은 원래 1988년에 <Works and Days> 저널에 다른 제목으로 실렸다. 여기에 그것을 포함하는 이유는 당신이 원한다면, 그것이 결국 미첼의 비판적인 도상학, 또는 시각 연구로 알려지게 될 것을 더 진지하게 다루는 첫 번째 평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티모시 어윈(Timothy Erwin)은 30년 전에 기존의 학문 분야(disciplinary)와 예술 간(interartistic) 연구에 도전했던, 그의 생각의 급진적인 새로움(novelty)을 이해한 미첼의 첫 번째 비판적인 독자 중 한 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에 특히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은 어윈(Erwin)이 미첼에게 그의 글 말미에 던진 7가지 질문들이고, 그래서 현재 책 전체에 걸쳐 존재하는 일종의 유사한 대화체(interlocutory)의 차원을 시작했다. 비록 미첼(Mitchell)이 같은 이슈에서 질문에 답했지만, 오늘 다시 제안하고 디지털 문화, 생정치학(biopolitic) 및 세계화(globalization)가 가져온 근본적으로 변화된 관점에서 다시 평가하는 것은, 이제 직접 대답할 필요 없이 필연적으로 예상치 못한 통찰력을 가져올 것이다.
미첼(W.J.T. Mitchell)의 <이미지 이론>은 미국 학자가 남긴 결과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 이미지의 일반적인 과학으로서 비판적인 도상학을 발전시키는 것; (2) 시각, 이미지 및 미디어 연구의 얽힘(intertwining)의 추론(推論, corollary)으로 발전한 일종의 포스트학제성(postdisciplinary) 또는 무(無)학제성(indisciplinarity) 맥락을 만드는 것; 그리고 (3) 순수하게 시각에 인접한 주제에 대한 그리고 그 분야에 이론적인 담론을 부추기는 것. 제1부에서, 네 명의 저자들은 미첼의 이미지 이론의 상황을 묘사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논의하고, 그것에 직면하고, 그것을 "도상학적으로 적절하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맥락과 연관시킨다. 예를 들어, 2장의 첫머리에서 프란체스코 고리(Francesco Gori)는 "이미지란 무엇인가? 미첼(W.J.T. Mitchell)의 <그림 이론Picturing Theory>"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일반적인 이미지 과학은 미첼이 비판적인 도상학(iconology)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비판적'이라는 형용사는 엄격한 의미의 '도상학'과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 그림과 조각에 문학적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철학적 연구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비판적 도상학은 예술적 이미지와 문학적 예술작품(oeuvre)을 고려할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이미지와 담론에 대한.... 연구를 열어준다.
그것은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유일한 관계를 넘어, 모든 매체에 걸친 이동(migration)을 연구"하는 학문분야(discipline)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고리(Gori)는 특히 미첼의 이미지 개념–존재론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상관적인 근거–을 고려하고 결국 미첼이 이론적으로, 학문분야의 질문들이 어떻게 특정한 종류의 삶과 그림의 애니미즘(animism)으로 변형되는지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들에 초점을 맞춘다; 또는, 반대로, 미첼이 그림 이론을 만드는 대신, 자신의 이론을 "그림으로 그리는pictures" 방법이다.
제3장과 제4장에서 조지 스유니(György E. Szőnyi)와 크레시미르 푸르가르(Krešimir Purgar)는 미첼의 비판적 도상학의 형성에 다른 관점들, –스유니(Szőnyi)의 에세이의 계보적, 푸르가르(Purgar)의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들은 독자들에게 "아직도 '언어학적 전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는 제목의 에세이 "이미지의 언어"의 첫 컬렉션에서 궤적(trajectory)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문화적 표현"(Szőnyi) 또는 "문화적 증상"(Purgar)으로서 도상학에 이르는 모든 방법인, 그 내용은 이미 이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고, 오래된 학문 분야의 핵심 용어 중 극소수만이 살아남았다. 스유니(Szőnyi)는 그 발전을 꼼꼼하게 보여주고, 그는 전통적인 학문 분야의 방법론의 해체가 일어나고 있는 특정한 사례들을 지적하고, 도상학뿐만 아니라 예술사와 기호학에서도, 다른 기호sign 체계와 예술과 비예술 그림들 사이의 형이상학적 구분(divide)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다른 모든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푸르가르(Purgar)의 장(章)은 미첼이 "공룡", "양", "황금 송아지(Golden Calf)"까지도 비판적인 도상학의 이론적 도구로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형이상학적 구분을 확실하게 극복한다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도구들은 미첼(Mitchell)의 여러 책에서 체계적으로 사용되어 유연한 무(無)학문분야(disciplinary)(또는 시각 연구)로서의 도상학이 "주문형(on demand)"으로 발전된 다양한 작업 방법론들로 구성된 시각 이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한 방법을 나타낸다.
제2부에서, 저자들은 시각 연구와 관련하여 학문분야와 제도적 관심사를 고찰한다. 1990년대 동안, 새로운 비판적 관행의 확립은 일반적인 학계 커뮤니티에서의 그것의 위치와 다음 해에 하나의 "학파school"를 다른 것과 구별하기 시작했던 특정한 방법론 측면에서 모두, 매우 맥락-의존적인(context-dependent) 것으로 입증(立證)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첼의 역할은 충분히 강조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지 과학이 점진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동안에 세 개의 주요 축(axis)을 분리할 수 있다; 혹은, 날카롭게 표현하자면, 유럽 대륙(continent)에서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명명되고 다루어진 새로운 시각 이론의 초기 몇 년 두드러졌던 세 가지 주요한 대립(confrontation)이 있다. 첫 번째 요점은 영미 학계 내에서 시각 연구의 학문분야로서(disciplinary)의 확립이다; 두 번째는 주로 독일 이미지학(Bildwissenschaft) 내의 유럽에서,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던 것과의 학문분야로서의 관계이고, 이는 미첼이 고트프리트 뵘(Gottfried Boehm)과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와의 지속적으로 소통한 것을 포함했다; 세 번째 요점은 미첼이 대서양(Atlantic) 양쪽에서, 주장하고 논쟁적인 특정한 입장을 얻었던 것을 통해 오래 지속되는 과정을 다룬다. 이 세 가지 측면 모두 미켈레 코메타(Michele Cometa)에 의해 6장에서, 매우 유익한 맥락화(contextualization)가 제공되었다. 그의 통찰력으로부터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과정이 시각 연구의 역사에서 모두 유사한 사건으로 조사될 뿐만 아니라, 함께 볼 때에만 네 번째 중요한 점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미첼의 이미지 과학의 개방적인 용어는 이미지/텍스트에서 <그림의 전환pictorial turn>, <생그림biopicture>들에 이르기까지,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구성될 것이다. 코메타(Cometa)의 개요는 시각 연구가 제도적으로 탁월했었고, 방법론적으로 발전했으며, 상호 의존적인 과정에서 용어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학문분야로서 독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7장에서 이안 베르스테겐(Ian Verstegen)은 시카고 대학의 다양한 활동을 했던 1980년대에 이미 간파했었던 학문분야의 영향(trace)에 주목하면서, 시각 연구들에 대한 일종의 "고고학archeology"을 제공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시각 연구를 위한 공식적인 시카고 학파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소위 라오콘 군상(Laocoön group)에서 더 평이한 배치(arrangement)가 한동안 존재했고, 그 후 미첼의 미디어 이론에 대한 세미나에 중심을 두고, 그중에서도, [조엘] 스나이더, [제임스] 엘킨스와 한스 벨팅(당시 시카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를 포함한 시카고 미디어 이론 학교(CSMT)가 있었고, 비판적 조사(Critical Inquiry) 편집 위원회의 원동력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만으로도 빠르면 1970년대에 많은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독특한 마찰(friction)을 목격했다는 것을 감지하기에 충분할 것이고, 비록 그렇게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성(commonality)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말이다. 베르스테겐(Verstegen)은 시카고 대학의 학문적 맥락에서, 미첼이 그의 일관된 "반근본주의(antifoundationalism)"와 그의 경력의 모든 단계에서 조심스럽게 자란, 강한 "상대주의(relativism)"로 유명해졌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하지만, 이미지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모든 이미지가 동등하게 생성되는" 것에서보다 더 직접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베르스테겐(Verstegen)은 주장한다. 그의 관점에서, 사람들은 조사(enquiry) 대상의 가능한 의미를 전제하지 않는 이론을 추구할지-미첼을 따르는지- 아니면 덜 다원적이고 더 제한된 이미지 감각을 받아들여야 할지-미첼이 가지 않은 길-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어쨌든 옌스 슈뢰터(Jens Schröter)가 8장에서 논의했듯이, 시각 연구를 아마 덜 명백한 유사성을 가진, 매체학(Medienwissenschaft)과 함께, 독일어권 국가에서 번성했던, 이미지학(Bildwissenschaft)의 "인접한neighboring" 현상과 연결시키는 중요한 딜레마 중 하나이다. 반면에, 루카 바르기우(Luca Vargiu)가 9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시각 연구와 이미지 과학의 가장 저명한 옹호자들 사이의 태도가 명확한 논쟁은 –톰 미첼(Tom Mitchell)과 고트프리트 뵘(Gottfried Boehm)이 분명히 한 것– 이탈리아의 매우 유능한 대담자(interlocutor)들을 포함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프랑스와 다른 나라들은 시각적 현상에 대해 같은 민감성을 공유하지만, 단어/이미지 관계 또는 일상어(vernacular) 이미지에 대한 연구이든, 현대 미디어에서가 아니라, 이러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곳에서 이미지 학문(scholarship)의 변화를 감지했었다 – 우선 첫 번째로, 중세(medieval) 연구들. 미첼의 도상학의 변형이 어떻게 그의 광범위한 주제에 의해 일반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의해 다루어졌다고 느껴지는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마이클 앤 홀리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자기 만족감(complacency)을 흔들어 놓았는지 읽는 것은 2부 전체에서 매우 흥미롭다.
루카 바르기우(Luca Vargiu)는 한스 벨팅(Hans Belting)이 이미지학(Bildwissenschaft)의 형성에서 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을 보다 객체 지향적인 학문분야로 언급하고 있지만-시각 연구와는 반대로, 이미지의 이데올로기적 맥락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 그는 중세(medieval) 연구에서의 진보가 "병행론(parallelism), 유사성, 그리고 지식의 다른 영역과의 교환을 넘어, 이 학문분야 내에서 더 강하고 더 의미 있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고, 바꾸어 말하면, 시각 연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넘어선다. 이렇게 볼 때, 한스 벨팅(Hans Belting)이 이미지학(Bildwissenschaft)의 의제(agenda)를 확립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미지 인류학은 미첼이 대서양 반대편에서 하고 있던 것과 일치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아마도, 우리는 미첼의 학제성(interdisciplinarity) 유형이 " 나란히 존재하는 명확한 선택사항option"이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고 있던, 독일 매체학(Medienwissenschaft)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 현상인, "학문분야 제도regime의 불안정화와 안정화의 수행적(遂行的)인 과정의 측면 또는 단계"라는 슈뢰터(Schröter)의 전제와 결론을 따를 준비가 더 되어 있을 것이다. 슈뢰터(Schröter)는 독일어 버전이 "시각 문화와 유사하다"고 입증하는데, 이는 그것을 정의하는 용어인, "미디어"가, "잘 정의된 이론적 대상보다 오히려 불확실하게 명명하기" 때문이다(미첼이 "학제성과 시각 문화"에서 말한 것처럼).
제3부는 사진 이론, 문화사, 정치 과학, 퀴어queer 연구와 같은 다양한 영역의 네 가지 사례 연구를 제공하고, 일종의 미첼의 방법론(연구 대상과 관련하여 항상 "친절gentle"하지는 않았던 방법론)의 유산을 보여주며, 따라서 기존 지식의 해체 과정들과 새로운 인식론적 실천을 위한 명확한 경로를 모두 드러낸다. 더욱이, 제3부의 기고는 모두 미첼 자신이 다룬 특정 주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이미지 과학과 그 옹호자(proponent)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인하고 분석한 훨씬 더 광범위한 문화 현상에 대한 특별한 감성(感性, sensitivity)을 입증한다. 이것은 아마도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측면일 것이다: 지식을 사용하여 새로운 통찰력을 얻고 동시에 방법론이 지식을 만드는 과정에 도전하도록 하는 방법. 이 전략은 토마스 스터블필드(Thomas Stubblefield)의 11장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데, 그가 미첼이 어떤 종류의 본질주의(essentialism)를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것이 어떻게 거꾸로 된 본질주의, 또는 반결정론(antideterminism)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설명할 때, 주관성(subjectivity)의 힘에 대한 그 자신의 진심 어린 믿음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그는 미첼에게, 특정 매체(이 경우에, 사진)에 명확한 기술적 정체성(identity)을 부여하는 것은, 주어진 매체의 "존재"를 그것이 작용하는 사회 세계로부터 분리시키는 것과 같아서, 그것의 기술적 결정의 단일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스터블필드(Stubblefield)는 때때로 –특히 디지털 문화와 디지털 사진에 관한 한- 주관성의 힘은 필연적으로 그것이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바로 그 일련의 규칙을 조건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즉, 디지털이다.
다소 "우상파괴적인(iconoclastic)" 전제(前提)를 바탕으로 하지만, 미첼의 글의 가장 큰 뉘앙스의 본질을 이해하는 깊은 감각을 가진, 12장은, 한나 히긴스(Hannah Higgins)가 그림(picture)과 시각성(visuality)의 광경으로 우리의 압도적인 심취(infatuation)에 대한 음향(sonic)적인 대안을 분별하는 것이다. 미첼의 소리(sound)에 대한 은유를 따라, 그녀는 정확히 말해서 우리 사회의 이미지는 피하거나 파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주로 시각적 수준이 아니라, 그들의 의사소통 기관의 다른 수준에 더 민감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고맙게도, 그가 글을 쓸 때, 이미지 개념의 중심에 소리를 위치시키는 대안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미첼 자신이다:
나는 제안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니체 철학의 의미에서 이 ... 우상들을 다루고, 망치(hammer)로 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박살낼 수는 없는 도상(icon)으로 – 또는 더 나은 것은, 비판적인 반영의 소리굽쇠(tuning fork)이다.... 나의 관점에서 우리는 스펙터클의 이미지를 들어야 하고, 그것들을 부수는 꿈을 꾸지 말아야 한다.
히긴스(Higgins)는 결국 하나가 있다면, 이미지의 굉장한 힘에 대한, 니체의 소리굽쇠(tuning fork)의 이 이미지가 우리의 대안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의 두 가지 최종적인 해석은 이미지가 반드시 핵심적인 관심사가 아닌 문화의 다른 측면에서 명확하게 보이는 미첼의 이미지 이론의 분기(branching)로부터의 한 가지 전제에서 비롯된다. 13장에서, 맥심 보이디(Maxime Boidy)는 미첼이 정치 철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도상학에는 정치 철학이 있다고 말한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 자크 랑시에르(Gustave Le Bonand Jacques Rancière)의 통찰력 사이에서 덧붙이면, 다른 것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푸생(Poussin)의 그림 <금송아지를 경배함The Adoration of the Golden Calf>이 어느 정도 "포퓰리즘 민주주의populist democracy"의 시각적 렌더링을 확립한다고, 주장하는 미첼 이미지 이론에서 보이디(Boidy)는 정치 단체(political body)의 원래 외형을 묘사한다. 죄악(sin)으로서의 포퓰리즘은 사람들이 진정한 (하느님의 말씀) 대신 잘못된 이미지를 숭배(veneration)하는 것을 묘사하는, 고전 우상숭배의 완벽한 현대적인 예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보이디(Boidy)는 우리가 유명한 미첼의 메타픽처(metapicture)를 "포퓰리스트populist" 민주주의 충격(impulse)의 긍정적인 묘사로 볼 수 있는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14장에서 존 폴 리코(John Paul Ricco)의 기고는 동일한 메타이론적(metatheoretical)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미첼은 퀴어queer 연구 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이미지 과학은, 어떤 면에서는, 동성애(queer)적이다. 리코(Ricco)는 미첼(Mitchell)의 이론이 본질적으로 어떤 이미지의 발가벗음(nakedness)과 관련이 있으며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을 보여주는 것showing showing"과 "보는 것을 보여주는 것showing seeing"으로 기능할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지 과학은, "자기 현시(exhibitionism)의 과학"이 될 것이다. 나는 확실히 "미첼이 지난 30년 동안 반복해서, 우리의 관심attention을 불러온 것은 바로 이 '야성wildness'과 이미지의 광기"라는 리코(Ricco)의 말에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