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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an 10. 2020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9. 사진으로 생각 드러내기

많은 장면들과 피사체들에서 최상의 시점, 최상의 조명이라는 개념은 가능한 한 많은 시각적 정보를 화면에 담는 것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하다는 것은 심각한 단점을 가진다. 이미지가 분명하게 해독될수록 보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런 사진은 대부분 흥미롭지가 않다.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보는 사람의 몫’이다. 사진을 해독하는 것, 즉 이미지의 암호를 푸는 것은 보는 이가 즐길 몫이다.1)


1) 사진가의 마인드, 비즈앤비즈


일본의 유명한 사진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이자와 고타로는 사진을 ‘찍는 즐거움’뿐 아니라 ‘보는 즐거움’ ‘읽는 즐거움’ ‘모으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요즘 유행하는 셀카봉처럼 찍는 즐거움도 있지만, 넘쳐나는 사진들은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읽는 즐거움을 준다. 과연 사진은 자신의 느낌을 담아내고, 생각을 표현하고,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는 것인가?      


1. 찍는 즐거움

카메라를 들고 어디든지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소유한 것 같은 착각속에 무언가를 찍어대고 있다. 수잔 손택은 여행은 과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사진에 담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총이나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는 그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을 중독시키는 환상적인 기계이다” 손택이 말처럼, 카메라의 공격성은 특히 사람을 주제로 촬영을 할 때 많이 느끼는 감정이다. 사람을 찍는 사진을 찍는 행위는 상당히 공격적이기 때문에 사진에 찍히는 피사체와의 교감은 더욱더 중요하다. 작품의 구도 설정 등 촬영에 방해가 된다며 금강송 소나무를 멋대로 베어낸 사진작가의 공격성은 찍는 즐거움에서 벗어나 인위적이고 억지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2. 보는 즐거움

디지털이 대중화되기 전 사진가들은 카메라에 필름을 장전하고 거리를 나가 촬영을 하면서 찍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리고 어떻게 이미지가 필름에 찍혔을지 상상하면서, 당시의 느낌을 고스란히 암실로 가지고 와 현상 바트에서 상이 점차 나타나면서 프린트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찍는 즐거움도 있지만, 프린트 과정에서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보는 즐거움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현실의 장면을 프린트된 종이로 다시 그 이미지를 보는 즐거움은 ‘사진을 본다’라는 체험의 일부분이다. 디지털이 대중화되면서 미술관이나 사진집을 통해서 보았던 사진을 이젠 스마트폰, 태블릿과 PC를 통해서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많은 사진을 접한다. 이미지를 '본다는 것Way of Seeing'이 단지 감각 기관에만 제한된 행위가 아니며 가치 판단이 배제된 중립적인 행위도 아니라고 존 버거는 말한다. 우리는 단지 관심을 끄는 것만 보고 선택적으로, 자신이 경험한 지식으로 판단하고 바라본다. 보는 방식은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곰브리치가 ‘보는 사람의 몫’이라고 말한 것처럼, 각기 다른 입장과 다른 처지에서 보게 되기 때문에 다양한 봄Seeing이 존재한다.       


3. 읽는 즐거움

사진가는 사진을 통해서 무언가를 전달하고 자신의 느꼈던 감정을 관람하는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것은 사진가의 세계관의 표현일 것이다. 어떤 사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등을 통해 사진가의 의식세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진을 ‘읽는’ 즐거움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진에 담겨진 정보, 내용을 읽는 것이다. 모든 사진은 직접적이고 사실적이라 하더라도 해석을 필요로 한다. 어떻게 사진을 바라보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사진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기호학자인 바르트는 광고사진에서 세가지 부분을 지적한다. 언어적 메시지, 명시적 메시지, 암시적 메시지가 그것이다. 사진의 메시지는 시각적이며, 그 명시적 메시지 외에 암시적 메시지는 해석되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표면에 드러나는 것(외연)보다 깊은 의미(내포)를 암시하고 상징하기 때문이다. 사진가는 자신의 사진에서 무엇을 드러내려 하는가? 그 의도, 의미를 읽는 것 또한 즐거움이 아닐까.  

    

영화 촬영법에서 ‘드러내기’는 카메라를 움직임으로써 관객이 무언가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연속된 장면을 말한다. 카메라는 천천히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또는 위아래로 움직여서 관객이 예상하지 않았던 배우나 어떤 것을 드러냄으로써 장면의 의미를 변화시킨다. 거기에는 항상 놀랄만한 요소나 예상치 않았던 요소가 있으며, 그것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방법을 책임지는 사람은 감독이다. 그것은 조종되어 작동한다. 관객은 빠져들며, 카메라를 통해서 보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볼 수가 없다. 드러내기는 영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강력하고 극적인 장치이며, 그것은 관객이 정확하게 어디를 얼마나 오래 보게 만들 것인가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볼 ‘장소’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는’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연속 장면이 너무나 길 때 보지 않듯이).2)


2) 사진가의 마인드, 비즈앤비즈


사진에서 사진가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도를 담아내려 할 것이다. 의미뿐만 아니라 구도나 구성에 있어 드러내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수직과 수평이 맞은 기존의 프레임과는 달리 프레임을 기울여서 촬영한 메리 엘렌 마크의 사진(아래)을 보자. 그녀는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기울이고 있다.    

 

                               메리 엘렌 마크


1989년 인도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나무를 껴안고 있는 남자의 모습뿐만 아니라 뒤의 초점이 흐린 인물의 모습까지 담아내고 있다. 사진가는 의도적으로 기울이면서 뒤의 인물까지도 프레임안에 담아내면서 둘의 관계까지도 암시하고 있다. 프레임은 선택적인 수단이며, 공간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확장의 수단으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촬영을 할 때, “어떻게 찍으면 이 프레임 안의 이미지가 최상의 그림이 될지 생각한다. 어떻게 찍으면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낼지 고민한다.”고 말한다. 사진가는 자신의 프레임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녀는 “사진으로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사진으로 삶의 의미와 비중을 드러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내용 있는 이미지를 잡지에서 보길 원한다. 요즘은 그런 사진이 드물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을 찍고 싶다. 사진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잘 모르겠다. 실제로 사회 변화를 몰고 온 사진은 몇 장 안된다”고 말하면서, 유명한 사진가들의 작업을 보면서 그 위대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라고 조언한다.    


사진에서 인간 정신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사진은 인간의 외형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육체 - 옷을 입거나 벗고 있기도 하고, 폭력이나 수술로 혹은 X-레이에 노출되어 내부를 드러내기도 하는 물질적 형상으로서의 육체만이 사진에 나타날 뿐이다. 영혼, 생각, 감정, 정신 이러한 것들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로는 담아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진에서 정신적인 것들을 읽어내고 느끼고 감동 받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자라나면서 우리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고 느끼고 있으며 정신과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음성 언어나 신체적 신호를 인지함으로써 알게 된다. 우리는 타인의 눈, 입, 얼굴의 모양, 근육의 긴장상태, 팔다리의 움직임 등을 통해, 다른 사람도 '정말로' 생각하고 느끼고 있다는 표시들을 읽어 나간다. 이 표시들은 타인의 정신적 본질에 이르는 단서들이다. 사진을 읽어내는 능력은 이러한 상호 인지능력으로부터 나온다.


삶은 부단히 흘러가는 과정이다. 서로를 바라볼 때, 우리는 육체의 기호들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하고 흘러가는 것을 본다. 사진에서는 이 움직임들이 정지되어 있다. 이 두 가지 것들-삶은 흘러가는데 사진은 정지되어 있다는 사실은 사진을 한계 짓는다. 그러나 동시에 이 한계는 사진을 인간 정신의 아주 특별하고 강력한 표현 도구가 되도록 만들어 준다. 단지 한 장의 사진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만으로 추론하고 인지해야 한다는 것은 사진의 한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진 이미지의 '멈춰진 상태'라는 가능성은 사진에 강력하고 잠재적인 힘을 부여한다. 그것은 연속적인 삶의 흐름 속에서는 쉽게 인식할 수 없던 영혼, 정신을 추출해내 고정시켜 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반복해서 정지된 이미지를 볼 수 있으며, 종종 이 이미지가 보여주는 정신의 깊은 층위까지 꿰뚫고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정신이라는 전기적 특성은 이미지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저장된 사진 이미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대답하기를 기다리는 긴장, 혹은 부담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긴장은 우리를 사진으로 끌어들이고, 사진 속에 드러난 것들과 정신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도록 한다.3)


3) World Press Photo-This Critical Mirror


                  도로시 랭

                                    윈 블록


도로시 랭(Dorothea Lange)의 유명한 ‘이주민 어머니(Migrant Mother)’의 사진(위)을 보면, 미국의 경제공황시기의 고통 받는 이주민의 아픔을 그들의 표정과 모습으로 너무나 잘 느낄수 있다. 그녀의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는 현실의 장면에서 인간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윈 블록(Wynn Bullock)의 실험적인 사진이다. ‘사진을 찍을 때 사실상 내가 하는 일은 사물에 대한 해답을 찾는 작업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또한 그는 ‘숲속의 어린이’란 사진에서 실험적으로 무언가를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직선적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스틸 사진을 가지고 이와 같은 효과를 내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관객이 사진에 다가와 잠시 들여다보다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하고, 최종적으로 첫눈에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어떤 것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사진이 좀 더 흥미롭고 기억에 남지 않을까? 놀라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영화 촬영법과 스틸 사진을 결합한 연작으로 유명한 안토니오니의 ‘욕망’(Blow-Up)이라는 영화가 있다. 데이비드 헤밍스가 역을 맡은 사진가가 공원에서 촬영한 네거티브를 계속 확대하면서 숲 속에 숨어 있던 살인의 증거를 발견한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나 관객 역시 그가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4)


4) 사진가의 마인드, 비즈앤비즈


1966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욕망이라는 영화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영화속 주인공인 사진작가 토마스는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원 제목처럼 확대(Blow-Up)해서 보았더니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사실이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사진을 찍는 Adam Magyar5)라는 사진가가 있다. 그의 사진 이미지는 컴퓨터에서 마우스를 이미지에 올려놓으면 부분 확대된 사진을 볼 수 있다. 또한 살가도의 ‘세라 페라다’의 금광 노동자들의 사진은 확대해서 보아야만이 그 하나하나의 정보들이 드러난다.  


5) http://www.magyara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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