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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an 10. 2020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20. 사진에서의 거리두기(Verfremdungseffekt)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 중에서 핵심적인 것이 ‘거리 두기’ 이다. 독일원어 Verfremdungs-effekt는 낯설게 만듦과 효과를 뜻하는 합성어이다. 전통극과는 달리 서사극에서의 거리두기는 배우가 전통적으로 등장인물에 동화되어 감정을 느끼고 연기를 하는 메소드 연기와는 달리 그 행동이나 상황을 낯설게하고, 관객에게 비판적 사고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사진을 촬영하거나 사진을 감상할 때의 거리두기란 어떤 의미일까?  

     

1)사진가와 피사체의 거리 

사진가는 현장에서 대상을 촬영할 때 사진가와 대상간의 거리는 작가의 시점에 따라서 존재한다. 근경, 중경, 원경의 위치 외에도, 렌즈의 선택에 따른 피사체와의 거리가 존재한다. 까르띠에 브레송은 표준렌즈만을 사용해 왔다. 표준렌즈에서의 인간의 눈이 가지는 화각과 시각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광각렌즈나 망원렌즈를 사용하게 되면 우리 눈이 가지는 거리감은 카메라의 거리감으로 바뀌게 된다. 광각렌즈는 원근감이 왜곡, 과장되고, 피사체와의 거리 또한 가까워진다. 망원렌즈는 원근감이 축소되고, 피사체와의 거리는 멀어진다. 빌 브란트(Bill Brandt)의 누드 작품은 인체의 한 부분을 대담하게 클로즈업하거나 광각렌즈의 왜곡된 모습으로 초현실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의 사진은 촬영기법에서 일정한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방법은 기본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사진가와 사진에 찍히는 피사체인 사람의 과감없는 일정한 거리감을 특징으로 한다. 피사체의 고정된 시선(정면을 똑바로 향하고 있는 모습)과 일관된 거리감은 객관적인 정보로서 피사체를 의식적으로 대한다. 그의 사진은 1920년대 독일의 유형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정공법(正攻法)이란 말을 사용한다. 피사체와 사진가의 적당한 거리, 정공법을 가지는 것이 과연 객관적인 표현인지는 고민해야할 주제이다. 사진가는 피사체의 감정, 내면에 너무 깊숙이 감정이입하게 되면 오히려 그의 생각에 매몰되어 표현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너무 멀리 떨어져서 접근하는 방식 또한 상당히 방관자적인 입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피사체의 내면이든, 사진가의 내면이든 어떤 접근방식, 어떤 태도와 거리가 적당한지는 사진가에게 항상 되묻게되는 질문이다.    

  

물리적인 거리의 공간 외에도 심리적인 거리가 존재한다. 친숙한 대상(타자)이라 할지라도 낯설게 볼 수 있다. 낯설게 봄으로써 그 대상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가 연기를 통하여 맺은 관객과의 관계는 정서를 바탕으로 한 감정이입적 동일시의 관계가 아니라 무대 위의 사건을 하나의 관찰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냉정한 관찰자 또는 사고하는 현자'로서 연극을 보는 관객과의 관계인 것이다. 브레이트의 말처럼, 낯설게 보기를 통해서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랄프 깁슨


1972년 깁슨(Ralph Gibson)의 데자뷰Deja Vu1)는 낯설게하기의 한 예이다.    


1) http://www.ralphgibson.com/1972-deja-vu.html 


위의 깁슨의 신문을 보는 사람의 사진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평소 우리가 늘 보아왔던 장면이지만 낯설게 보게 만든다. ‘Dejavu(데자뷰)’란 분명히 처음 가본 곳인데 그 장소를 언젠가 와본 경험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거나 처음 경험한 일인데도 처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데자뷰(기시감)’라고 부른다. 브레히트의 ‘낯설게하기’는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적절한 거리를 ‘거리취하기’이지만, 일정부분 낯설게 봄으로써 깁슨은 초현실적인 심리를 표현한다.      


2)사진작품과 관객과의 거리 

사진 작품과 관객과의 거리는 작품의 프린트된 크기에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거대 프린트로 작업한 작품은 일정부분 멀리 떨어져서 감상하게 되고, 작게 프린트된 작품은 가까이서 보게 될 것이다.     


색면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는 자신의 그림을 보는 이상적 거리를 ‘45Cm’ 앞이라고 말한다. “작품의 바로 앞에 서면 색채들의 관계는 사라지고 경계가 무너진 채 하나로 뭉개진 색 덩어리가 관객을 엄습하며, 관객은 그 전체적 효과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작품의 디테일을 보기 위해선 가까이 다가서야 할 것이고, 전체적인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 멀리 서 봐야 할 것이다. 그림을 보는 거리는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작품이 주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관객의 마음과 일치하는 지점이 적당한 거리가 아닐까.


관객은 “아! 지금 내가 영화를 보고 있구나!” 라고 놀라면서 영화의 몰입에서 깨어난다. 이것이 브레히트적 소외효과(소격효과)다. 이처럼 사진작품은 관객에게 말을 건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냐고. 무엇을 느꼈냐고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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