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시간과 공간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예술이다. 사진은 카메라의 셔터와 조리개의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느린 셔터와 빠른 셔터는 시간의 속성을 보여주고, 열린 조리개와 닫힌 조리개는 공간의 속성을 반영한다.
1.시간
시간은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의식하는 개인들의 각기 다른 경험에 의해서 서로 다른 시간을 인지한다. 시간을 의식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철학자들이 논의한 시간은 과연 어떨까? 플라톤이 이해한 시간은 ‘수에 따라서 천체가 규칙적으로 순환하는 운동’, 혹은 ‘측정되는 지속’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시간은 ‘무한히 다가오는 지금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사물의 운동으로 지각되는 헤아리지는 수’를 일컫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해한 시간은 영혼이 ‘기억하고, 기다리고, 목격하는 시간’으로 인간 내면에 있는 ‘시간적 흐름’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시간의 흐름은 아직 없는 미래에서 현재를 거쳐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로 흐르는 일련의 ‘아니 있음에로의 흐름’인 것이다. 후설은 이 점에 착안해서 시간의 흐름을 의식할 수 있는 이유를 규명하려 했다. 그의 탐구에 의하면, 우리가 시간을 의식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외부의 시간적 흐름을 지각할 수 있는 내재적 시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풀어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적어도 ‘시간이 지속한다’는 점에서는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시간이 지속한다’, ‘시간이 흐른다’, 이는 (1)‘흐르는 시간’, 곧 ‘일상적 시간’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고 정지된다는 것은 비일상적인 일이다. 정지된 시간은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을 의미하고,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시간’은 인간행위를 요구하고, 의미를 가지기도 하며, 주관적으로 의식되기도 한다.
위(왼족)의 그림은 뒤샹의 1912년 제작된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이다. 움직이는 물체의 경우 정지된다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일 수 있다(오른쪽의 할스만의 사진처럼). 스포츠 사진의 경우 빠른 고속셔터로 운동감있는 인물의 표정을 잡아내는 것은 우리의 시선의 보지 못하는 장면을 포착한다. 현실은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사진가는 그 현실의 순간을 정지된 순간으로, 푼크툼의 사진으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정지된다는 것, 의식이 멈춘다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그 철학적 고뇌는 하이데게에 있어서 존재의 의식으로 확대된다. 현존재의 실존은 자신의 있음이 스스로에게 가장 본질적이며, 가장 근원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근원적인 시간의식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존재의 본래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점을 각인시켜준다. 하이데거의 ‘내던져진 존재’는 죽음과 직면하는 존재자의 시간의식이다.
Philippe Halsman `달리 원자론(Dail Atomicus)`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때의 시간을 ‘영원한 현재’, (2)‘정지된 시간’으로 만든다. 사진가는 현재의 시간에만 머물고 있고 현재적이며, 박제(剝製)적이다. 존재와 시간이라는 사진의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사진을 시간에 대한 형이상학으로 풀어간 롤랑 바르트는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의 용어로 풀어간다. 정지된 시간은 푼크툼처럼 화살처럼 꽂히는 순간이다. 사진 속에서 푼크툼은 마치 화살처럼 사건의 현장을 떠나서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충격과 아픔, 상처를 정지된 시간 속에서 느끼게 한다. 위의 필립 할스만의 사진은 초현실주의자인 달리를 초현실적인 정지된 순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을 인식하는 존재자는 존재와 분리되지 않는 것이 레비나스는 이것을 과감히 분리시킨다. 그는 이 분리가 이루어지는 상태를 불면(不眠)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주체는 자신의 신체를 가지며 자신의 있음을 의식할 수 있는 존재이다. 불면에 빠진 주체는 그저 있는 존재로 주체적인 존재양식을 펼쳐나갈 수 없다. 이러한 주체는 외부에서 닥쳐오는 것들을 그저 수용할 뿐이다. 존재자 없는 존재가 다시 주체로 바로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면(睡眠)이 필요하다. 수면을 통해 충분히 휴식한 주체는 주체로서 그저 있다는 사실 위에 홀로 서게 된다. 이때가 레비나스가 말하는 시간의 시작점이다.
레비나스가 매 순간마다 만나는 세계는 낯선 시간이다. 주체는 낯설게 보기를 통해서 매순간을 ‘향유’할 것이다. 주체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초현실적인 시간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기도 한다.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 실재세계와 가상세계의 관계는 모호해지고 혼돈스러워 주체에게 언제나 (3)‘낯선 시간’으로 다가온다.
william-klein
위의 사진은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이다. 수많은 시간속에 사람들은 중첩되어 있고, 심지어 화면 중앙의 인물은 아웃포커스로 초현실적인 시간속의 상상의 인물처럼 묘사되고 있다. 갑자기 들어선 인물, 때론 섬찍하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주체의 기이하고 낯선 모습으로 사진가를 당혹스럽게 한다.
지금까지 시간은 공간적 사물(주체, 존재)이 운동하는 텅 빈 그릇이었다. 시간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무한히 직선적으로 흐른다. 그 속에서 과거가 사라지면 그 순간 현재가 시작된다. 시간의 흐름에서 매순간은 어느 순간이나 동일한 것이다. 사라진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주관적 의식의 기억에 흔적으로 남을 뿐이다. 이것이 데카르트, 뉴톤의 절대적 시간 개념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시간의 개념을 새롭게 이해하고자 한다. 그는 사물과 시간의 관계를 전도시킨다. 그에게서 사물이란 시간의 축적일 뿐이다. 인상파화가에서 사물이 실체적 존재가 아니라, 순간적 인상들의 복합체이듯이 들뢰즈에게서 사물이란 시간적 흐름의 복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는 사라져 주관적 의식 속에 남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현존한다. 그것은 현재 속에 축적되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래 또한 현재와 더불어 현존하면서, 주관적 의식속에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주관적 의식속에 자리잡는 (4)‘심리적 시간’은 내면의 감정으로 드러난다. 심리적 순간의 ‘심리적 시간’은 ‘결정적인 순간’보다 더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된다. 과거가 현재에 축적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는 미래로서 이미 과거에 있었던 것이다. 매 순간 ‘과거 현재 미래’라는 ‘누적적 시간’의 형식을 보여준다. 이런 시간 형식의 교차를 통해서 시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서 과거인가 하면 현재이고 현재인가 하면 미래이다.
Josef Koudelka
체코의 정치적 상황과 짚시들의 삶의 흔적을 따라 기록한 쿠델카(Josef Koudelka)의 사진속에는 이러한 시간이 응고되어 있다. 손목의 시계는 멈춰 있지만 거리와 풍경은 과거 현재 미래의 누적된 시간이다. 또한 작가의 심리적인 시간이 녹아 있다. 지금까지는 사진 한 장속의 담겨진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 시간의 연속성: 시퀀스Sequence
우리는 전시회나 책을 통해서 여러 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한 장의 사진의 시간성은 연속적으로 다음 사진으로 진행될 때 시퀀스Sequence라 불리울 수 있다. 마치 영화처럼, 몇 개의 쇼트(shot)가 모여서 하나의 의미 있는 장면이 되고 하나의 장면은 신(scene)으로 구성된다. 시퀀스란 한 개 또는 몇 개의 쇼트에 의해 구성된 신이 한 개 또는 여러 개가 모여서 표현되는 하나의 에피소드의 단위이다. 쇼트나 신이 시각적 단위라면 시퀀스는 이야기의 내용적 단위라고 할 수 있다. 몇 개의 시퀀스가 연속해 나감으로써 영화는 전개되고 전체 스토리가 구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 편의 영화는 가장 기본 단위인 쇼트의 촬영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그러나 시각적인 감각을 얻기 위한 분석작업에서는 촬영의 역순인 시퀀스의 분석에서부터 시작한다.
2.공간
사진은 프레임의 예술이다. 사각 프레임은 공간은 제한하기도 확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공간속에서 살고 있고, 그 공간을 사진에 담고 있다. 공간에 대한 인식은 사진에서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프레임속에서 공간은 네가지 기본적인 공간 유형으로 나눌수 있을 것이다. 아래 간단히 제시된 그림들은 공간이 구성되는 네 가지 방법을 묘사하고 있다.
1)첫 번째 그림은 깊이가 있는 공간을 보여준다. 영상은 2D화면 위에 존재할지라도 가상의 심도를 가지고 있다. 몇 가지 세로 측면들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의 소실점을 가진 원근법, 모양 변화, 크기 차이, 질감의 확산, 색의 분리, 톤의 분리 그리고 위아래의 위치 등이다. 전경의 배우가 화면 안에서 수직적으로 걸을 때 카메라는 크레인 다운 하고 달리 인 할 것이다.
2)두번째 그림은 평면적 공간이다. 벽은 정면이고 세로 측면이나 집중되는 라인들이 없다. 배우들은 같은 수평면에 위치하게 된다. 그들은 같은 크기이고 같은 질감의 디테일을 가졌고 어떤 움직임도 화면 안에서는 평행을 이루게 될 것이다. 카메라의 줌이나 달리는 정면에 있는 벽면과 평행을 이루며 움직일 것이다.
3)세번째 그림은 제한된 공간을 보여준다. 이 숏에서 심도의 단서는 크기의 변화, 질감의 확산, 위아래의 위치 그리고 톤의 분리 등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정면의 평면적인 표면만 있을 뿐이지 입체적인 세로 측면은 없다. 제거된 세로 측면의 표면은 제한된 공간을 생성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4)네번째 그림은 모호한 공간을 보여준다. 복도의 조명이 꺼져 있다. 약간의 산란광이 계단을 비추고 있고 두 배우가 어둠 속 어딘가에 있다. 이 숏은 상당히 모호하다. 왜냐하면 숏 안에서 공간적 관계와 실재 크기를 언급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복도 어느 곳에 카메라가 있는 것일까? 어떻게 문을 닫을 수 있나? 카메라가 뒤집어졌나? 등 시각적 모호성이 공간적 단서들을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1)
1) 비주얼 스토리, 커뮤니케이션북스
공간은 프레임된다. 프레임은 공간을 구성하는 디자인의 기본 요소이다. 열린 공간이 될지, 닫힌 공간이 될지는 사진가가 어떻게 프레이밍 하는지에 달려 있다.
■ 공간의 연속성: 180도 체계, 행동축 axis of action, 중심선 center line
영화에서 180도 체계는 공간을 명료하게 공간을 명료하게 묘사한다. 관객은 극중인물이 어디에 위치하고 어떤 인물과 관계하는지를 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스토리 사건에 관계하여 극중인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관객이 안다는 사실이다. 명료하게 전개되는 한 신의 공간은 방향감각을 혼란시키지 않는다. 이로써 우리는 늘 이 180도 선의 어느 한쪽에만 있게 될 것이다.
휴스톤은 180도 체계에 따르는 두 개의 다른 일반 원리를 사용한다. 첫째는 정사/역사(shot/reverse shot)의 유형이다. 일단 180도 선이 설정되면 우리는 먼저 축선의 한쪽 끝을 볼 수 있고, 이어 전후로의 커트를 통해 다른 쪽을 볼수 있다. 두 번째는 ‘시선의 일치(eyeline match)'이다. 이를테면 쇼트A는 외화면의 무언가를 보고 있는 인물이고, 이어지는 쇼트B는 그 인물이 보고 있는 대상물이다. 따라서 구 쇼트는 모두 보는 사람과 대상물을 동시에 제시치 않는다. 이는 단순한 개념이지만 위력은 막강하다. 시선의 방향성이 강력한 공간적 연속성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행위의 일치(match on action)'이다. 이때 요구되는 것이 행위의 일치로서, 이는 두 쇼트 사이의 분절이 횡단하는 움직임의 연속이 정확하게 이어지도록 해주는 편집기법이다. 시선과 신체의 방향설정을 통해서, 편집은 공간적 관계들을 완전히 일관되도록 유지시킨다.
영화에서 공간은 장면화이다. 프랑스어로 장면화(Mise-en-scene)는 ‘사건을 무대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처음엔 연극연출의 기법에 적용되었다. 미쟝센을 통제함으로써 감독은 카메라 전방의 사건을 무대화한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사진은 프레임안에서 작가는 구성한다. 아래 루이스 쟈네티에 의한 미장센 분석은 사진가 또한 생각해볼 문제이다.
루이스 쟈네티에 의한 미쟝센 분석에 있어서 15가지 요소
1. 중요성․영향력. 그 쇼트에서 시각적으로 가장먼저 매료당한 부분은? 그 이유는?
2. 조명. 그 쇼트는 하이키를 사용했는가? 로우키를 사용했는가? 강하게 대비시켰는가? 이들을 혼합하였는가?
3. 쇼트와 카메라의 거리 공간. 어떤 종류의 쇼트인가? 연기지점에서 카메라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
4. 앵글. 관객과 카메라는 대상을 올려다보는가 내려다보는가? 혹은 카메라가 눈 높이를 유지하고 있는가?
5. 색상. 중심 색상은 무엇인가? 돋보이게 하는 것들이 있는가? 색상으로 상징되는 것이 있는가?
6. 렌즈/필터/필름. 이러한 요소들이 촬영 대상을 어떻게 왜곡시키거나 해석하는가?
7. 보조 대비. 중심에 집중한 후에 주로 눈길을 머물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8. 밀도. 얼마나 많은 영상 정보가 쇼트에 들어 있는가? 정보에 대한 구성은 엉성한가, 보통인가, 혹은 매우 상세한가?
9. 구도. 그 2차원 공간은 어떻게 분활 되어 구성되어 있는가? 배경에 깔려있는 디자인은 무엇인가?
10. 형식. 열려있는가 닫혀있는가? 그 영상은 임의적으로 화면요소를 고립시키는 창을 암시하는가? 혹은 영상요소들이 잘 배열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무대아치를 암시하는가?
11. 프레이밍. 꽉 짜여져 있는가 느슨한가? 배우들이 움직일 공간이 없는가 혹은 방해받지 않고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가?
12. 깊이. 그 영상은 몇 개의 평면 위에 구성되어 있는가? 원경과 전경은 중경에 대한 해석이 있는가?
13. 배우의 위치. 프레임의 어느 곳에 배우들이 위치하는가? 중앙인가? 윗부분인가? 아랫부분인가? 가장자리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14. 연기 자세. 배우들은 카메라에 대해 어느 쪽을 보고 있는가?
15. 배우들의 공간 위치. 배우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공간이 있는가?2)
2) 비주얼 스토리텔링, 커뮤니케이션북스